마을 잔치의 끝자락
선거 유세날은 마을 잔칫날
해방이 되고 처음 시작된 우리나라 선거.
시골 작은 마을에서 살던 어린 제게는 참 신기한 풍경이었죠. 6.25 전쟁통 와중에도 선거가 치러졌고, 휴전 이후 50년대는 정말 선거가 많았어요. 거의 매해, 늦어도 한 해 걸러 한 번씩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의원 선거가 이어졌습니다.
제가 살던 곳은 충청남도 공주의 면 소재지 마을이었어요.
작은 마을이지만 면사무소, 우체국, 파출소, 국민학교 등이 모여있는 우리 마을을 중심으로, 여러 산골 마을이 구석구석 뻗어있었죠. 원래부터 우리 마을에 오일장이 서는 날은 인근 작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날이었습니다.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 제 기억 속 선거는 잔치였습니다.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마을 분위기가 들썩거리기 시작하는데, 특히 그 기간 동안 우리 마을에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꼭 선거유세를 했어요. 제가 졸업한 국민학교 운동장은 유세장이 되고, 오일장이 열리는 시장통 전체가 잔치판이었습니다.
선거캠프는 만물상
장날 아침이 밝기 무섭게, 나팔을 불고 장구, 북, 꽹과리를 신나게 두들기는 선거 운동원들이, 산골 마을 구석구석까지 훑고 다니면서 시끌벅적하게 분위기를 띄웁니다.
“오늘 장기면 장날입니다. 장기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유세가 열립니다. 모두 오셔서 장도 보고 유세도 구경하세요.”
그 시절 영화나 서커스 공연을 홍보하는 모습과 똑같았어요.
다른 점이 있다면 “유세장에 오시면 점심식사도 무료로 드립니다!”라는 말이 더해진다는 거죠. “장도 보고, 유세 구경하고, 점심도 드세요. 일석삼조!” 요즘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지만 그때는 대놓고 그랬습니다.
조용하게 생활하던 시골 마을 사람들에게, 오일장과 국민학교 운동장 선거유세는 그 자체로 푸짐한 볼거리이면서 먹거리였습니다.
온 마을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 유세를 구경하고나면 남녀노소 할 거 없이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식권을 나눠줍니다. 물론 공짜로요. 그 식권을 가지고 장날 시장통에 있는 아무 밥집이나 들어가면 잘 차려진 밥상이 나옵니다. 남자들에게는 막걸리 술상까지 나오고요.
이렇게 인심이 흐드러진 흥겨운 풍경이다보니, 제 기억 속의 그 시절 선거판은 잔치판일 수밖에 없었답니다.
일명 ‘막걸리 선거’라고 불리던 웃지 못할 모습이었죠.
며칠 지나면 ‘고무신 선거’가 더해집니다.
저녁부터 한밤까지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집당 고무신 두켤레씩을 줍니다. 남자 고무신 하나, 여자 고무신 하나, 세트로요. 과부나 홀아비 집은 한 켤레만 주고요. 마구잡이로 뿌리는 게 아닙니다. 허술하지 않아요.
선거가 거듭되면서 나중에는 품목도 아주 다양해지더군요. 선거캠프 차량은 만물상입니다.
잔치의 끝자락, 선택의 아침
시집을 가고 첫 국회의원 투표일 아침의 일입니다.
출근을 하려는 남편을 시아버님이 부르시더니 묻습니다.
“아범아, 너는 오늘 어느 당 후보를 찍을 셈이냐?”
“그건 왜요?”
“자유당에서는 고무신을 받았고, 민주당에서는 빨랫비누를 받지 않았겠냐. 받은 값은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양쪽에서 다 받았으니 우리 나눠서 찍자. 네가 찍을 당을 말해주면, 나는 공평하게 다른 당을 찍어주려고 그러지.”
충청도 사람들은 의뭉스러워서 받아먹는 거 따로, 찍는 거 따로라는 말이 유행했었는데, 꼭 그렇지도 않구나 싶더군요.
의뭉스러워 본들 새가슴 못 버리는 촌사람들. 가난해도 선비로 대접받던 시아버지께서 저러실 정도면, 왜 막걸리와 고무신을 뿌리는지 납득이 가더라고요.
듣고 있는 저도 웃음이 나왔는데, 제 소리 없는 웃음과 달리 남편은 크게 소리 내서 웃더니 아버지를 한참 설득하더군요.
“그 사람들에게 우리가 뭘 달라고 한 적도 없잖아요. 자기들 마음대로 갖다준 거 받았다고 그 값 해줄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되고요. 저도 아버지도 괜찮은 후보, 찍고 싶은 후보 찍으면 됩니다.”
설득이 잘 안되시는 듯, 계속 입맛을 다시며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 하시는 시아버님에게 비밀선거를 강조하며, 신신당부 설득을 하던 남편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지던 그 시절, 투표 당일 아침의 기억입니다.
마을 잔치의 마지막엔 선택의 고민을 해야 했던 그 시절 순박했던 시골 사람들. 지금 돌이켜보면 안쓰럽기도 하네요.
그래도 흥겨운 시절입니다. 마을 잔치는 계속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