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 불 때기
몰래 친정 나들이와 아기 포대기
제게는 잊을 수 없는 날짜, 1960년 3월 1일.
시골 작은 동네에서 좁은 신작로를 마주한 집으로 시집을 갔어요. 불과 5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하지만 아무리 가까워도, 층층시하 시집살이 새댁에게 친정은 멀기만 한 곳이었죠. 시어머니 허락 없이 잠시라도 친정에 다녀온다는 건 불가능한 시절이었으니까요.
처음엔 그걸 잘 지키고 살았는데요. 시집살이가 일 년쯤 지나고 첫 아이도 낳고 난 후, 시어머니께는 아무 말 없이 친정을 몰래 자주 드나들곤 했죠. 워낙 친정이 지척인지라.
아마도 시댁에서는 다 알면서도 그저 못 본 척, 모르는 척하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시어머니께서 왠지 못마땅해하신다는 느낌을 받았고, 뭐라고 말씀은 안 하셨지만, 저는 은근히 눈치를 보면서도 살짝살짝 친정 나들이를 계속했죠.
결국 사고가 터졌습니다. 어느 날 저녁, 아기를 업은 채 또 친정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아기 포대기를 깜빡 친정에 두고 왔네요. 다음 날 아침, 시어머니가 저를 부릅니다. 어정쩡하게 아기를 안은 채 말씀하시길.
“애를 업으려는데 아무리 찾아도 포대기가 안 보이는구나.”
당황한 제가 대답을 못 하고 머뭇거리자,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큰 소리를 내십니다.
“혹시 친정에 두고 온 게냐? 왜 이리 집안에 질서가 없는 건지 원.”
늘 허락 없는 친정 나들이를 못마땅해하시던 차에 꾸중을 작심하신 것 같았어요.
"조심하겠습니다" 하며 고개 숙이고 넘어가야 했을 일인데, 저도 모르게 제 입에서는 거짓말이 나오고 있었죠.
“앞집 영희네 놀러 갔다가 그만 두고 왔네요. 지금 다녀올게요.”
그러고는 얼른 친정에 달려가 냉큼 가져와서 드렸어요. 시어머니께서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고, 저는 뭔가 찜찜하면서도 그렇게 잘 넘긴 줄로만 알았죠.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다음 날 아침 시어머니가 앞집 영희 엄마를 빨래터에서 만났네요.
시어머니가 대뜸 묻더랍니다. 혹시 우리 며늘아기가 그 집에 가서 포대기를 두고 왔다가 어제 다시 가져간 일이 있냐고. 영희 엄마는 그런 일 전혀 없다고 했다지요.
애꿎은 동네 사람들 앞에서 화를 잔뜩 내고 돌아온 시어머니한테 저는 뒤지게 혼났습니다. 이제는 몰래 친정 나들이한 죄에 시어머니에게 거짓말한 죄까지 더해서 말이죠.
거짓말은 하루 만에 들통났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호된 꾸지람을 오래 들으면서도 시어머니 볼 면목이 없는 부끄러움이 더 컸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 좁은 마을에서 그런 임시변통 거짓말이 통할 거라고 생각한 제 어리석음을 탓할 수밖에요.
그 뒤 얼마 동안 시어머니의 차가운 시선이 계속됐어요.
당연히 이제 친정 나들이는 엄두도 낼 수 없게 됐는데, 거기에 더해 하루하루 지나면서 그것보다 더 큰 스트레스가 은근히 쌓입니다.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고소하다는 듯, 한쪽으로는 안타까운 척, 제 쪽으로는 웃음을 참는, 두 표정으로 시어머니와 저를 번갈아 쳐다보는 시누들의 모습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늦은 오후, 시어머니가 보리쌀을 크게 한 바가지 퍼서 저녁을 지으라며 제게 건네시더니, 시누 셋을 데리고 “우리는 밭에 옥수수 따러 간다.” 하시며, 네 모녀가 함께 산책 나가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문을 나서더군요.
보리밥 불 때기 해보셨나요?
그 시절 끼니 짓기, 특히 보리밥 하기는 정말 힘든 일이었어요.
열한 명 대식구가 먹을 보리쌀을 먼저 절구에 찧어야 합니다. 그 시절 보리쌀은 거칠었기에 절구를 찧어 낱알을 매끈하게 만든 후, 아궁이 위 가마솥에 안칩니다.
나뭇가지를 분질러 모으는 건 그나마 나은데, 엄청나게 많은 보릿짚을 계속해서 몰아넣어야 하죠. 그렇게 아궁이에 서너 번은 넘게 불을 때며 보리를 삶노라면, 그게 왜 그리 힘들던지요.
요즘 사람들은 물론이지만, 아마 웬만한 요즘 젊은 노년들도 잘 모르실 겁니다.
그날도 그렇게 매운 연기와 씨름을 하며 보리밥을 짓고 있는데, 혼자 있는 갓난아기가 울기 시작하더니 점점 그 울음소리가 커지네요. 집에 아기와 저 말고는 시아버지뿐이셨는데, 아기 울음소리가 너무 커지자, 제게 말씀하십니다.
“애기 운다. 가서 애기 봐라.”
아기만 울었던 건 아니에요. 매운 연기 때문인지, 네 모녀의 냉대 속에 혼자 이 많은 보리밥 짓기가 서러워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눈물을 흘리느라 간신히 한마디 대답만 했죠.
“밥은 어쩌고요.”
애는 자지러지듯 우는데 저는 가마솥에 불만 계속 때고 있으니 “네 어미와 지지배들은 다 어디 간 게냐?” 하시는데, 이미 속으로 불뚱가지가 잔뜩 난 저는 아무 대답도 안하고 그저 자욱하게 뿌연 연기 속에서 불만 계속 땠습니다.
속으로는 ‘박복한 아기, 울다 죽기밖에 더하겠나’ 하면서.
옥수수 먹기와 보리쌀 삶기
불을 대신 때주는 것도 아기를 대신 달래주는 것도 아니면서, 시아버지도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 슬쩍 시아버지 얼굴을 살피니 울그락불그락하십니다.
하는 수 없이 서둘러 불 때기를 마친 후 방에서 아기를 들쳐업고 나왔어요. 서둘러 반찬을 만들고는 상을 펴서 밥을 푸고 있는데, 네 모녀가 광주리 한가득 옥수수를 이고 들어옵니다.
화가 제대로 난 시아버지가 기다렸다는 듯 시어머니에게 호통을 치십니다.
“늙은이가 지지배들 데리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갓난애 딸린 새 아이 혼자에게만 저녁을 덜렁 맡겨놓고는.”
호통이 길어지자, 시어머니도 볼멘소리로 대꾸하시네요. 저를 흘깃 쳐다보며 하시는 말씀.
“시누 없는 년은 밥도 못 해 먹겠네.”
그 말에 고개를 숙인 채 상을 차리던 제가 혼잣말로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네요.
"시누 년들 없으면 보리라도 적게 삶겠지."
그런데 용케도 그 말을 알아들은 시누 한 명이 시어머니한테 바로 일러바치네요. 순간 가슴이 철렁하면서 '또 큰 소리가 나겠구나!' 긴장하고 있었는데, 더는 아무 소리, 아무 일도 없이 그날 저녁이 지나갔습니다.
다음 날 오후, 시어머니가 말없이 혼자 옥수수를 삶으시더니, “어멈아, 같이 먹자.” 하며 부르십니다. 또 혼내시려는 건가 했는데, 뜻밖에도 시어머니가 제 눈치를 보며 오히려 저를 달래시는 겁니다. 요즘 힘드냐는 둥, 친정에는 별일 없냐는 둥 하시며.
잠시 후 시누들에게, “저녁때가 돼가는구나. 너희들 어서 보리쌀 삶거라” 하시고는, 다시 저를 보며 말씀하시길.
“너는 어서 방에 가서 아기 젖 먹여야지.”
그제서야 포대기와 거짓말 사건이 다 묻히면서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벙어리 시집살이만 하고 살다가 무심코 속마음을 드러냈던 저는 속으로 그랬답니다. 시누들이 없다면 밥이라도 조금 할 텐데... 했던 제 말이 영 못 할 말은 아니었구나 싶으면서 속이 다 시원하더라니까요.
그날 이후, 집에는 다시 이전과 다름없는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는 제 몰래 친정 나들이도 다시 시작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