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먹은 남편의 찐만두

투박하지만 은근했던 보살핌

by 꼭두

몰래 먹은 남편의 찐만두

투박하지만 은근했던 보살핌


첫 아이 때의 행복


식구 많은 시댁에 큰 며느리로 시집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아이를 가지게 됐어요.


입덧이 심해 시름시름 누워있는 저를 쳐다보며 출근한 남편이, 퇴근길에 찐만두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남편은 저를 위해서 뭐든 챙겨오면 어른들 눈을 피하는 방법이 있었어요. 우리 신혼방은 큰길을 향해 창이 나 있습니다. 그날도 남편은 만두를 겉옷에 돌돌 말아 우리 방 창으로 던져주고 집에 들어오려 했는데, 밖에서 창 안을 들여다보니 어린 시동생들이 우리 방 가득 놀고 있는 걸 봤네요.


남편은 무려 8남매의 큰아들이고, 시동생, 시누이들을 모두 합하면 자그만치 7명이랍니다.


어쩔 수 없이 만두를 엉거주춤 뒤에 감추고 들어와 책상 밑에 슬쩍 밀어 숨겨놓고는, 한참 동안 신문만 뒤적이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하네요.


"이제 너희들은 그만 건너가 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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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먹어 더 맛있던 찐만두


시동생들이 다 건너가자 그제서야 감추어둔 찐만두를 꺼내 제 앞에 펼쳐주며 "어, 이거 다 식었네. 어여 먹어." 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뜻밖의 찐만두를 받아 들고는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는데, 정말 어찌나 맛있던지, 몇 개 먹다 말고 저도 모르게 남편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트렸답니다.


시집살이의 힘겨움이 모두 없어지는 느낌이었고요. 한참을 그렇게 행복한 눈물을 흘리고 나니, 입덧도 싹 다 나은 것 같더라니까요.


임신 기간 동안, 원래 말수도 적고 행동도 진중한 편인 남편으로부터의 투박하지만 은근했던 보살핌이 행복했고, 드디어 그 첫 아이를 출산해서 온 식구들의 사랑을 받는 것도 행복했지만, 가장 큰 행복은 남편의 아침 출근 모습이었습니다.


출근 준비를 마친 남편은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아이 앞에 한 번 쪼그려 앉으면 도대체 일어날 줄을 모르는 거예요. 마치 할 일 다 잊어버린 사람처럼.


보다 못한 제가 "출근 안 해요?" 하면 그제서야 허둥지둥 집을 나서곤 했죠. 여전히 아이에게는 눈을 떼지 못하면서 말이죠.


충청도 느려터진 양반의 답답함


두 번째 아이와 만난 건 남편과 함께 서울살이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어요. 그 시절은 낳아봐야 알게 되지만, 첫째는 딸이고 둘째는 아들이었죠. 아들을 가진 건 공주였지만 태어난 곳은 서울이고요.


우리 아들은 누가 "네 고향이 어디니?" 하고 물으면 그때마다 내키는 대로 답하더군요. 대부분 "공주인디요." 때로는 "서울입니다."


시골 시댁의 대가족을 떠나 서울에서 우리만의 살림을 시작할 때는 얼마나 행복할지 정말 두근두근했었는데, 막상 살아보니 비교되는 행복도 있더라고요.


고달프고 힘든 시집살이지만, 그런 아내를 챙겨주려고 어른들 눈을 피해가며 도둑 사랑 해주던 남편과의 삶이 더 행복했던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복에 겨운 나머지 별소리 다하는 새댁이죠?


오죽하면 이런 일도 있었어요. 두 번째 아이를 가졌을 때 추석이 됐는데, 홀몸이 아닌 저는 서울집에 있으라 하고 혼자 시댁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편이 하더라구요. 난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무조건 나도 갈테야." 마치 좋은 곳 나만 떼놓고 갈까 무서워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말이죠.


첫 아이 임신 때, 시댁 우리 방에서 누구도 몰래 먹었던 찐만두가 그리웠던 거죠. 더구나 시댁 바로 앞집에는 친정엄마도 계시잖아요. 시골집은 추워서 안된다 하며, 저를 달래던 남편의 모습이 어찌나 답답하던지요.


원 저렇게 아내 속도 모르는 답답하고 느려터진 충청도 양반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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