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 감기는 꿀단지

야속한 이야기

by 꼭두

산모 감기는 꿀단지

야속한 이야기


밥 먹는 사람 따로, 시중드는 사람 따로


시집을 가서 겪은 저희 시가의 매 끼니 식사 풍경은요.


큰방에서 시아버님, 시어머님, 장남인 제 남편, 당시 세 살 아기였던 막내 시누이 이렇게 넷이 드시고, 8남매 중 나머지 시동생들, 시누이들과 며느리인 저 일곱 명은 작은방에서 밥을 먹었죠.


며느리인 제가 온전히 앉아 밥을 먹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밥 더 가져오너라.”


“국 더 가져오너라.”


“물!”


“소금!”


두 개의 방에서 요청하는 식사 시중 심부름을 수시로 들어야 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그냥 부엌 부뚜막에서 심부름 대기 상태로 쪼그리고 앉아 밥을 먹는 경우가 더 많았어요. 아예 그게 더 편하더라구요.


어느 날, 이걸 아버님께서 보셨어요. 제 밥 먹는 모습을 보시자마자 어머님한테 소리를 치시네요.


“왜 새아기만 혼자 부엌에서 밥 먹게 하는 거요?”


호통을 치며 화를 내시는데, 괜히 제가 얼마나 무안했는지 모릅니다.


독한 시절, 독한 사람들


그해 늦은 여름에 제가 임신을 하고 겨울이 됐는데, 그만 독한 감기에 걸리고 말았어요. 우리 집 부엌은 아늑하지도 않고 북풍이 심하게 불어대는 곳이니, 언제 감기에 걸려도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산모는 감기약을 먹으면 안 된다!” 하시며 파 뿌리에 엿을 넣어 달여주셨죠. 제가 혹시 다른 약을 먹을세라 제 곁을 계속 감시하셨어요. 장남인 제 남편에게도 "절대 약은 못 먹게 해야 한다!" 신신당부하시더군요. 연로한 시부모님은 5대 종가의 대를 이을 건강한 새 손자를 무척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는, 마음 한편으로 약을 못 먹는 게 참 야속했어요. 새벽같이 아침을 지으러 나오면, 최소 5분 이상은 아픈 기침을 하고 나서야, 밥을 지을 수 있었으니까요. 임산부 새댁의 고달픈 아침 짓기 현장이었죠.


요즘에는 임산부도 먹을 수 있는 감기약을 처방해 준다죠? 당시엔 산모에게 '어떤 약도 절대 불가!'라는 금기가 있었을 때니 어쩔 도리가 없었죠. 우리 시댁뿐 아니라 제가 살던 고향에선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던 풍습이었습니다.


가문을 이어 나갈 새 식구 잉태라는 엄청난 일을 기꺼이 하는 중인 어린 새댁. 하지만 그녀도 애지중지 커온 소중한 여인인데, 그 남의 집 소중한 딸에게만 그 고통을 홀로 겪게 하던, 참 독한 시절의 독한 사람들.


그렇게 겨울을 지나고 3월에 아기를 낳을 때까지 족히 6개월 동안 떨어지지 않는 감기를 앓아야 했는데, 출산을 하고 나서도 계속 기침이 멈추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이제 아기를 낳았으니 감기약을 먹겠다 말씀드렸더니, 젖을 통해 그 약을 아이도 먹게 되니, 아이 젖을 먹이는 동안은 여전히 안 된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또 봄 내내 계속 기침을 하며 아이를 키웠어요. 세월이 흘러 아이 백일이 되어서야 기침이 멎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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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 감기는 꿀단지?


그때 제가 배부른 모습으로 동네 우물터에 물을 길러 다닐 때마다 기침을 참 많이 했어요. 그걸 늘 바라보던 동네 어르신들이 혀를 차며 제게 해준 말씀이 있습니다.


“산모 감기는 꿀단지야. 절대 안 떨어지지.”


그 당시에는 어지간한 집 안방마다 꼭 있는 것이 꿀단지였어요.


어른들 보약 내지 군것질로 절대 떨어지지 않아야 하는 게 꿀단지였거든요. 제 고향에서만 쓴 어록인지는 잘 모르지만 오랜만에 생각나네요. 집에서 꿀단지가 절대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산모 감기도 치료가 안 되는 게 당연하다는 그 말.


"산모 감기는 꿀단지"


임산부는 임신부터 모유 수유가 끝날 때까지 어떤 약도 먹을 수 없다는 시대의 문화와 마을의 풍습. 거기에 꿀단지의 풍습이 합쳐지면서 만들어낸 말이겠죠?


하지만 ‘산모 감기는 꿀단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당시나 지금이나 제게 드는 생각은, 뭔가 그 풍습을 합리화하고 당연한 듯 만들려는 야속한 말이 아니었을까 한답니다.


좋은 말도 많이들 하셨잖아요. "아이는 온 마을이 함께 키운다" 같은.


그럼 이렇게 하셨어야죠.


"산모 감기는 온 마을이 함께 앓는다" 이렇게요. '꿀단지'가 아니고요. 약을 못 먹어야 하면, 그 아픔이라도 같이 해야 한다는 어록을 만들어서 어린 산모를 위로해 주셨어야 하지 않나요?


산모도 아이도 온 마을의 행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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