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시누 추석비심

이 집의 사람이 될 운명

by 꼭두

막내시누 추석비심

이 집의 사람이 될 운명


새 옷은 일 년에 딱 두 번


지금은 거의 잊혀진 단어 중에 ‘설비심, 추석비심’이란 말이 있습니다. 필요하면 수시로 새 옷을 사 입는 요즘 시절에야 거의 쓸 일 없는 말이기 때문이겠죠.

‘설빔, 추석빔’이 표준어인데 제 고향 충청도에서는 ‘비심’이라 불렀어요.


하지만 제가 자라던 시절에 새 옷을 입을 수 있는 날은 일 년에 두 번의 명절, 설날과 추석뿐이었습니다.


5, 60년대 그 시절 원단들은 품질도 낮은 면직들이라 잘 헤어지고 수명도 짧았답니다. 명절에 해 입은 새 옷도 여기저기 터지기 시작하면서 금방 낡아요. 아이들은 덕지덕지 기운 옷을 입어가며 다음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죠.


추석이 최고예요.


먹을 거 많죠. 일도 안 하죠. 무엇보다 엄마가 새 옷을 해주시거든요.


남자아이에게는 양복 디자인의 반제품을 장에서 사다가 소매와 기장을 수선한 후 단추를 달아 완성해 주시고, 여자아이를 위해서는 원단을 사다가 한복 디자인의 치마와 저고리를 새로 만들어 주십니다.


제가 19살 처녀일 때, 우리 집 앞 건너에 7남매를 기르던 집이 있었습니다.


그 집 둘째 딸과 제 여동생이 친한 친구여서 저도 잘 알고 지내던 집이었죠. 그 집 어머니가 아주 늦은 나이에 8번째 자식으로 막내딸을 낳았는데 심각한 난산이었습니다.


출산 후 심하게 앓아눕게 됐고 동네 사람들은 아마 그 산모가 다시 일어나기는 힘들 거라고들 하셨어요.


어머니가 못다 마친 막내딸 추석비심


몇 달이 지나 추석이 다가오던 어느 날. 여동생을 찾으러 그 집에 가게 됐습니다.


동생은 친구와 놀러 나가고 없는데, 앓아누워 계신다는 그 집 어머니가 광목 끈으로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앉아 한복 원단을 자르고 계시더군요.


그 모습이 어찌나 시름 맞아 보이던지, 제가 “아픈 몸으로 무슨 바느질을 하시는 거예요?” 하니,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간신히 대답하시길 “죽기 전에 내 손으로 세 딸 추석비심 삼아 한복을 해 입히고 싶어 그러지.” 하십니다.


마침 이웃집 아주머니가 오셨는데 그분을 보며 힘들게 사연을 이어가시더군요.


그 집 일가친척들은 그랬대요. 제 어미를 이리 힘들게 하는 딸년이라며, 그 막내딸을 툼벙에 갖다버리라고 그리 구박을 했다죠.

'툼벙'도 '웅덩이'의 제 고향 사투리입니다.


하지만 그 어머니, 가쁘게 답하십니다.


“내가 아파서 젖도 제대로 못 먹였는데, 저게 그 구박 속에서도 그래도 명이 길어, 저렇게 추석이 오도록 잘 자라고 있으니, 추석비심은 지어줘야 하지 않겠어.”


그날의 풍경이 추석이 될 때까지 어찌나 제 눈에 밟히던지요.


추석날 그 집을 찾아 살며시 들여다봤습니다. 새 한복을 입은 첫째 딸과 둘째 딸은 보였는데, 막내딸이 새 옷을 입은 건 볼 수가 없었어요. 기운이 딸리셔서 마지막 차례였던 막내딸 추석비심은 시작만 하고는 채 완성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뭔가 제 마음이 많이 안타깝고 허전했어요. 그 뒤로도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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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가 마친 막내시누 추석비심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저는 22살의 과년한 처녀가 됐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집의 장남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막내딸을 낳고 오랫동안 앓아 지내셔야 했던 어머니는, 거짓말처럼 건강을 회복하신 후 제 시어머니가 되셨고요. 당연히 그때의 막내딸은 제 막내시누가 됐답니다.


결혼 후 첫 추석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그 무렵, 가까운 공주 유구면에 큰 직조공장이 생기면서, 제 고향에도 비단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직까지는 인조 비단이었지만 이전의 면직 원단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좋은 품질과 형형색색의 이쁜 실크 원단들이 말이죠.


신랑 월급날 특별히 부탁해 유구면의 비단을 사 왔어요.


그 비단으로 세 시누이의 한복을 정성껏 만들었습니다. 그 한복을 지으면서 3년 전 그날, 세 딸의 한복을 눈물 속에 지으시던 시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고요.


지금은 제 시어머니가 되신, 그때 그 어머니가 완성하지 못한 막내시누의 추석비심을 내 손으로 마치게 되다니 싶으면서, 정말 감회가 남다르더군요.


추석날 차례를 마친 후, 내가 만든 추석비심 한복을 입고 신나게 뛰어나가는 세 시누이를 보면서, 제 마음이 어찌나 흐믓하던지요. 속마음 한켠으로 ‘어쩌면 나는 이 집의 사람이 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싶었으니까요.


우리 막내시누가 우리 시댁 딸 중에서 제일 이뻐요. 지금까지도.


물론 우리 시댁을 통틀어 제일 인물 좋은 건 제 남편이고요.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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