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과 수놓기

못 말리는 사주팔자

by 꼭두

하이힐과 수놓기

못 말리는 사주팔자


수놓기로 벌어들인 하이힐


6.25가 휴전되면서 별별 유행이 많았어요.


그중 하나가 하이힐이었죠.


하이힐이 너무 신고 싶어서 하게 됐던 게 수놓기였어요. 수놓기를 부지런히 해서 쌀 한 가마니 값을 벌었고, 그 돈으로 마침내 하이힐을 사 신었죠. 엄마 몰래요.


하지만 그 일은 처음에 불과했어요. 그게 시작점이 되어 본격적으로 수를 놓기 시작했고, 결국 제 처녀 시절의 주 직업이 되고 말았답니다.


당시 벽걸이용 수가 가장 유행이었어요. 검은 원단에 금사실을 가지고 한자로 ‘청산명월(靑山明月)’이라고 수를 넣었죠. 효령대군의 글씨라고 하더군요. 마치 효령대군과 저의 손끝이 닿는 듯한 손맛이 왜 그리 짜릿하던지.


이어서 십자수가 크게 유행했어요.


벽걸이용의 횃댓보는 물론이고 방석, 상보, 베갯잇 등 여러 가지를 수놓으면 제법 돈이 됐고 그 재미가 쏠쏠했는데, 그 일을 오래 하다 보니 결국에는 엄마가 죄다 알아버렸네요.


251110「엄니」하이힐과수놓기2.jpg


"발바닥에 불 끌 새가 없다"


우리 엄마가 호령하시길, 당장 그만두라더군요.


시집 안 간 처녀가 먼저 시집가는 신부들을 위해서 혼수를 만들어주면 자기 복을 다 주는 거고, 그러면 정작 자기는 복이 없어진다는 게 이유였죠.


그러거나 말거나 난 너무 재밌는 수놓기를 계속했는데, 어느 날 엄마가 날 시집 보내려고 점집에 가서 내 혼인 점을 봤는데, 제 시집살이 사주가 아주 팍팍하게 나왔다네요.


점쟁이가 말하길 "발바닥에 불 끌 새가 없고, 사흘 갈 길을 하루에 가야 하고, 짧은 지팡이가 항상 바쁘게 뛰어야 한다"라면서, 한마디로 이 처녀 사주는 너무 바빠서 고단한 팔자라 했다더군요.


그 말을 듣고 온 우리 엄마가 제게 소리소리 지르며, "네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겠냐, 이게 다 네가 남의 수놓기를 해서 나온 사주다" 하시면서 당장 바느질을 때려치우라고 하시는 거예요.


당시 제 생각엔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정말 미치겠더라구요.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 이해해 보면, 첫딸 곱게 키워 우아하게 시집보내는 꿈만 꾸고 있었는데, 딸인 저는 천둥벌거숭이로 크고 있으니, 우리 엄마는 엄마대로 미칠 지경이었겠죠. 생각해 보면 참 궁합 맞지 않는 모녀지간이었던 겁니다.


못 말리는 게 사주팔자라더니


요즘 같으면 딸의 소질 있는 특기 살려서 오히려 키워줄 만도 하련만, 그 시절 부모들이야 무조건 부모 뜻에 맞도록 딸의 간절한 바람쯤이야 억누르며 키우던 시절이었어요.


하지만 전 이렇게 재밌고, 돈도 되는 수놓기를 왜 못 하게 하는지, 당시 제 심정은 정말 가출이라도 해서 엄마 없이 내 맘대로 살고 싶더라니까요.


하지만 못 말리는 게 팔자라고 했던가요.


시집가고 서울 올라온 제가 어쩌다 보니 결국에는 한복집 여사장이 됐고, 은퇴한 지금도 가끔 손이 심심할 때마다 남의 집 혼수 한복을 짓곤 한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점쟁이가 용하게 제 사주를 맞춘 거다 싶기도 해요.


한복 짓는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정말 정신없이 바빠져서, 밥 먹을 새도 없이, 잠잘 틈도 없이 일만 해야 했으니까요.


처녀 시절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 못 하게 하는 엄마를 참 미워했었는데, 저도 딸을 키워 시집보내고 또 엄마를 떠나보내면서 생각해 보니, 딸자식 험하고 힘든 꼴 안 보기만을 바라던 엄마 마음을 내가 더 헤아렸어야 한다는 후회, 많이 했답니다.


늘그막 철들기라고나 할까요?


251110「엄니」하이힐과수놓기6.jpg 2020년 5월, 제 손으로 마지막 지어준 제 두 손녀의 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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