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처녀 산나물길의 산해진미

호띠기 불며 걷던 산나물길

by 꼭두

봄처녀 산나물길의 산해진미

호띠기 불며 걷던 산나물길


나물 뜯는 봄처녀 시절


봄나물 뜯는 철이 짧은 것처럼 나물 뜯는 봄처녀도 그 시절이 짧았답니다.


10대 꽃처녀들이 작은 무리를 지어 나물뜯기인지 봄나들이인지 분간 없이 신나게 산으로 들로 다니다 20살 무렵이 가까워지면, 부모님께서 이제 그만 나다니고 조신하게 집에서 신부 수업이나 하라고 하십니다.


짧으면 3년, 길어야 5년의 나물 뜯는 봄처녀 시절이 막을 내리는 거죠.


산나물이 나기 시작하는 봄이 오면 집마다 봄처녀들이 산길을 찾아 나섭니다. 그날 먹을 나물을 뜯어오기도 하지만, 잔뜩 뜯어서 생으로 혹은 데친 후 잘 말립니다.


그렇게 ‘묵나물’을 만들어서 1년 내내 먹는데, 특히 이듬해 정월대보름에 먹을 나물거리를 만들어 놓는 게 봄처녀들의 가장 큰 소명이었어요.


돈도 귀하고 사 먹을 곳도 쉽지 않았던 그 시절, 작년 봄에 봄처녀들이 캐놓은 산나물을 잘 말려서 저장해 놓았다가 대보름에 이웃끼리 나눠 먹으며 온 동네 들썩이는 나물잔치를 하던 때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하우스나물도 있는 요즘, 사시사철 나물을 사다 먹으면 그만인 지금 분들에게는 아마도 보기 힘든 풍경일 겁니다.


251106「엄니」봄처녀산나물길의산해진미3.jpg


"봄 보릿고개 때는 산길을 걷는 게 먹을 게 있다"


제대로 된 산나물을 뜯으려면 가까운 야산이나 들녘이 아닙니다.


제 고향은 충청도 외진 곳에 있는 깡시골 마을인데, 그곳에서 다시 깊은 산을 찾아 보통 20리 길을 걸어갑니다. 사람 손이 많이 타지 않은, 깊은 산에서 만나는 산나물이 진짜거든요.


아침 일찍 집을 나선 후 두 시간 정도를 걸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산봉우리 주변에서 취나물과 고사리, 골짜기에서는 다래순과 오이순 등 정신없이 갖은 나물을 뜯다가,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산을 내려와 집으로 돌아오면 어스름 초저녁 무렵이 되곤 했죠.


나물 뜯으러 가는 날은 봄처녀 나들이날입니다. 우리 봄처녀 동무는 저를 포함해서 모두 7명이었죠. 7명 모두가 산나물길을 걸을 때도 있지만 보통 그중 5~6명 정도가 함께 걸었죠.


한 친구가 쑥떡을 쪄오면 다른 친구는 쑥밥 도시락을 싸 옵니다. 아카시아 꽃떡과 아카시아 꽃밥도 그날이면 자주 싸가던 먹거리였어요. 한참 동안 나물을 캐고 뜯다가 끼니때가 되어 산속에 그 먹거리들을 펼쳐놓고 먹노라면 산해진미라는 말이 저절로 입에서 터져 나옵니다.


요즘 먹거리와 비교하면 그저 소박한 차림일 테지만 깊은 산중에서 함께 먹던 그 맛깔나는 들녘 음식의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해요.


산나물길 산해진미는 그것만이 아니에요.


산길을 걷다 보면 작년 가을에 파랗게 열렸던 멍가열매가 빨갛게 무더기로 익어 있습니다. 가을에 먹어보면 시고 떫기만 한데 봄에 따먹는 빨간 멍가열매 맛은 최고죠.


쭉 뻗어 올라온 찔레순도 삼삼시원한 맛에 꺾어 먹고요. 잔대풀을 만나면 잎은 나물로 뜯지만 잔대뿌리를 캐 먹으면 도라지뿌리보다 훨씬 맛있습니다. 달콤쌉쌀한 맛이 일품이지요.


그 시절 어른들이 하시던 말이 있어요. "봄 보릿고개 때는 없는 친정 가는 것보다 오히려 산길을 걷는 게 먹을 게 있다". 그때도 느꼈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맞는 말입니다.


251106「엄니」봄처녀산나물길의산해진미2.jpg

시집가는 길


지금껏 제 친정엄마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숨겨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제 산나물길은 제 시집가는 길이었답니다.


제가 주로 나물 캐러 가는 산은 장군봉이라는 정상이 있는 은골이라는 산이었는데, 중간에 농골이라는 중턱이 있고 그곳에 저수지가 있었어요. 그곳은 동네 봄처녀들 또래의 젊은 총각들이 수영을 겸해 자주 천렵을 다니는 곳이었죠.


자연스럽게 은골을 가다 보면 농골에 천렵 온 총각들을 만나 지나치곤 했는데, 어느 날 제 오빠가 그 무리에 끼어있었고 수영을 하다가 저를 보고는 “잘 다녀와라.” 하면서 소리를 지르더라구요.


그러다 보니 그 총각들도 모두 우리를 쳐다보게 됐고 저도 그들을 쳐다보게 됐는데, 그 총각무리 중 제 눈에는 그야말로 빛이 나는 젊은 청년 한 명이 눈에 띄더라구요.


가슴이 조금 두근거리긴 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죠. 당시는 동네에서 처녀 총각이 눈 맞아 연애라도 하면 집안 망신이라고 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리고 한참이 지났는데 어느 날 오빠가 뜬금없이 제게 이런 얘기를 해요. “걔가 네 얘기를 자꾸 한다. 그놈 왜 그러지?”.


마치 운명처럼 남몰래 연애가 시작됐어요.


훗날, 결국 남편이 된 그 청년이 저와의 첫 만남에서 한 첫 마디가 뭐였냐면요. 그날 나물 뜯으러 가는 봄처녀 중에 저만 눈에 보이더래요. 저도 바로 대답했죠.


“당신만 빛이 나던걸”.


아마 우리 둘 다 그날 서로에게 눈이 멀었었나 봐요. 결혼을 하고 나서도, 제게는 봄처녀 산나물길, 남편에게는 총각들 천렵길, 같은 길이었기에 만날 수밖에 없었던 그 길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했지요.


아련한 그리움 속 산나물길


그 산나물길에서 만났던 남편도 제 곁을 떠난 지 오래고, 함께 그 길을 걸으며 산나물을 뜯던 봄처녀 동무들도 대부분 하늘길을 떠나 지금은 저 말고는 딱 한 명의 봄처녀만 남아 있습니다.


물 잘 오른 버드나무 껍질 벗겨 호띠기 불며 걷던 산나물길 기억이 정말 아련합니다. 욕심 많은 제가 그날 잔뜩 뜯어 온 나물 보따리를 풀어놓으면 "우리 딸 욕봤구나" 하며 머리 쓰다듬어 주시던 아부지 기억도 생생하고요.


단 한 번만이라도, 아니, 꿈속에서라도 동무들과 함께 그 산나물길을 다시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젊은 청년으로 빛나던 남편의 모습도 다시 만날 수 있겠죠.


혹여 제 기억 속 산나물길이 가물가물해지는 날이 오더라도, 그 길을 찾는 그리움은 더욱 깊어져 있을 테지요.


251106「엄니」봄처녀산나물길의산해진미1.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