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보고 싶어요”

기차 구경 봄소풍

by 꼭두

"기차를 보고 싶어요"

기차 구경 봄소풍


기차 타고 가는 소풍? 기차 보러 가는 소풍!


「충청도 공주군 장기면 도계리」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마을입니다.


지금은 세종시가 됐지만, 그 시절 우리 마을은 공주읍에서 20리 떨어진 그야말로 외진 시골이었어요. 몇 년 전 드디어 KTX 공주역이 생겼다는데, 제가 결혼을 하고 서울로 떠날 때까지 기차라고는 구경도 할 수 없었던 곳이죠.


6.25 전쟁이 터지고 휴교했던 장기국민학교가 이듬해 다시 교문을 열었습니다.


저는 4학년이었죠.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저희에게 물었습니다.


“얘들아, 이번 봄 소풍은 4, 5, 6학년이 함께 가기로 했다. 특별히 좀 먼 곳도 갈 수 있는데, 가고 싶은 곳 있는 사람?”


아이들이 머뭇거리고 있는데, 제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번쩍 들고는 큰 소리로 말했어요.


“기차를 보고 싶어요!”


당시 우리들 소풍은, 마을 근처의 낮은 산이나 계곡으로 30분 정도 걸어가 점심 먹고 놀다 오는 그야말로 나들이 수준이었어요.


버스라고는 하루에 한두 번 지나가는 촌마을에서 먼 소풍을 간다는 건 언감생심이었던 시절입니다. 5, 6학년 수학여행은 돼야 버스를 타고 공주 갑사나 부여 백마강을 갈 수 있었죠.


또한 우리에게 기차라는 건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시절입니다.


‘쇠망아지’, ‘쇠괴물’이라고 부른다는 기차.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생긴 놈인지, 우리는 모이기만 하면 아무도 보지는 못한 기차 얘기를 했었죠.


느닷없이 기차를 보고 싶다는 제 말에 우리 반 아이들이 발칵 뒤집혔어요. 모두 한목소리로 외쳤답니다.


“기차 보여 주세요.”


“기차 보러 갈래요.”


우리의 소원은 기차 구경


“그건 안된다. 기차를 보려면 조치원역까지 가야 하는데 너무 멀어.”


조치원읍까지는 비포장도로 40리 길입니다. 버스를 타는 소풍이란 건 없었던 때고요.


게다가 그 정신없는 6.25 전쟁통에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 먼 길을 간단 말입니까. 안 될 일이죠. 당황한 선생님이 단호하게 안 된다 하셨지만, 아이들의 하소연은 멈출 줄을 모릅니다.


“제발요.”


“기차요.”


한참을 저희와 씨름하던 선생님이 휴전을 선언하시더군요.


“아이고 얘들아,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4, 5, 6학년. 한 학년에 두 반씩 모두 여섯 반.


알고 보니 기차를 보고 싶다는 소망은 우리 반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소문이 돌면서 학교 전체가 떠들썩해졌어요. 그저 떼쓰기가 아니라 아이들의 간절함을 느낀 여섯 명 담임선생님들은 며칠 동안 회의와 고민을 계속했다죠.


그리고 마침내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줄 비책을 찾아냈습니다. 며칠 후, 대단한 선언을 하듯 말씀하시더군요.


“장군봉으로 간다. 그곳에서는 기차가 보일 거다.”


‘장군봉’은 우리 마을에서 가장 높은 산입니다. 서울 남산보다도 훨씬 더 높은 장군산의 장군봉.


“그 대신 걸어가는 길이 멀고 험할 뿐 아니라 기차도 아주 멀리에서 보일 거야. 그래도 좋으냐?”


저희는 일제히 박수와 함께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괜찮아요.”


“좋아요!”


“만세~”


장군봉 고지를 점령하라


드디어 소풍날이 됐습니다. 변변한 고명도 없는 소박한 김밥을 싸 들고 희망찬 기차 탐험 소풍 길이 시작됐어요.


장군봉까지는 10리가 훨씬 넘는 산길. 100명이 채 되지 않았지만 길게 두 줄로 이어진 저희의 행렬은 마치 군인들의 행군처럼 힘차게 위로 위로 걸어 올라갔죠.


선생님 말처럼 험하고 먼 탐험길. 장군봉까지 족히 두 시간을 걸어야 했지만, 누구 하나 힘들다고 하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오전 기차가 조금 전 지나가고 말았구나. 지금부터 점심을 먹고 자유롭게 놀아라. 오후 기차가 지나갈 때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 테니, 그 즉시 이 자리로 모이면 된다.”


선생님이 멀리 철길을 가리키는데, 솔직히 제 눈에는 저게 철길이라는 건지 그냥 산속 오솔길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당시 선생님들이 간신히 마련해 낸 묘안이, 조치원역을 출발해서 대전역을 향해 지나가는 기차를 먼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는 가장 높고 가까운 곳을 찾은 건데, 사실 제대로 보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어요.


자유롭게 흩어져 놀고 있으라는 선생님 말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럴 수 없었어요.


그 자리에 모두 모여 앉은 채, 순식간에 도시락을 먹고는 행여 기차 보는 그 순간을 놓칠세라 호루라기 울릴 때만 기다리며 꼼짝도 안 하고 있었죠. 그 모습을 본 선생님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시더니 다시 말씀하시네요.


“제발 흩어져서 놀고 있으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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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 철길을 구불구불 달려 나간 철구렁이


드디어 장군봉 정상에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목을 길게 뺀 우리들 앞에서, 선생님이 산 너머 또 산 너머 가물가물한 산 아랫자락을 가리키며 말하십니다.


“내 손끝 쪽을 보렴. 저게 기차다. 잘 보이니?”


너무 멀어서겠지만, 솔직히 아무리 눈을 찌푸리며 봐도 기차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끝내 못 보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던 그 순간, 한 아이가 외쳤습니다.


“저기 구렁이 한 마리 지나간다!”


아, 저도 간신히 보이는 것 같습니다. 굽이굽이 건너건너 산 밑에 시커멓게 구렁이 같은 놈 하나가 좌우로 꿈틀거리며 지나가고 있네요.


“구렁이다.”


“나도 보인다.”


아이들의 탄성 소리도 잠시, 선생님이 말하길 기차가 다 지나갔답니다. 우리 소원을 들어주어 뿌듯하다는 듯, 흐뭇한 표정으로 이제 집에 가자고 하십니다.


너무 짧은 순간이었고, ‘내가 뭘 보기는 본 건가’ 싶으면서 솔직히 많이 허탈했고, 아이들 속마음도 사실 다 비슷해 보였는데, 그래도 겉으로는 ‘우리는 기차를 봤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오빠들이 난리가 나서 제게 묻네요.


“기차가 어떻게 생겼던?”


거만한 표정으로 답해줬죠.


“별거 아냐. 그저 가늘지만 제법 긴 시커먼 철구렁이 한 마리라고 생각하면 돼.”


짧은 제 대답에 오빠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한 번도 기차를 본 적 없는 오빠들은 그저 입맛만 다실 뿐이고 제 표정은 의기양양한데,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지가 크게 웃으며 말씀하시길.


“그래, 철구렁이 맞다!”


선생님의 마음, 우리들의 자랑


진짜로 가까이에서 기차를 보게 된 건, 그날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지나 제가 스무 살이 다 되던 무렵입니다.


평소 거의 갈 일 없던 조치원읍에 심부름을 가게 돼서 버스를 타고 있는데, 한 건널목 앞에서 갑자기 요란한 종소리가 울리더니 버스도 사람도 멈춰서더군요.


잠시 후, 전 그게 철길인 것도 처음 알았고, 눈앞을 지나가는 거대하고 길게 이어진 차량이 기차라는 것도 처음 보았습니다. 창문을 위로 열고 밖을 보는 사람들이 칸칸마다 빼곡한데 정말 장관이더군요. 정작 저는 그때서야 알았죠.


‘아, 구렁이가 아니었구나!’


기차를 처음 탄 건 그날로부터 다시 한참의 세월이 지나, 제가 결혼을 하고 남편과 함께 서울로 살림을 차리러 떠나던 날이었습니다. 제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서울이라는 아주 먼 곳으로 간다는 게 실감 나던 하루였죠.


처음 보는 사람이 마주 앉아 있는 게 참 어색하다는 거. 기차 안을 돌아다니며 작지 않은 목소리로 오징어, 계란, 사이다를 파는 승무원들이 있고 그게 참 맛있다는 거. 서울까지 무려 네 시간이 넘도록 기차가 달리는데, 천안역에서 40분 연착을 하면 사람들은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 한 봉지씩을 사고, 가락국수 한 그릇씩을 먹는다는 거.


첫 기차 여행에서 모든 걸 알게 됐죠. 또한 기차와 함께하는 먹거리는 모조리 너무너무 맛있다는 것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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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 눈앞에 나타났던 첫 기차의 기억.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그날의 장기국민학교 봄 소풍은 정말 진기한 일입니다.


유적지나 문화재가 있는 곳, 아니면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가는 소풍이 아니라, ‘기차 구경 소풍’이란 걸 들어라도 보신 일 있습니까? '철마는 달리고 싶다'로 유명한 임진각의 6.25 마지막 증기기관차 같은 거 말고, 같은 시대를 달렸지만 그저 시골 산길을 무심히 지나가는 기차를 보러 가는 아이들의 소풍. 아마 그때 우리들의 소풍이 처음이자 마지막 아닐까요? 그걸 선동해서 성사시킨 게 저고요.


지금도 느껴집니다.


먼발치에서나마 아이들에게 기차를 보여주려고, 마을에서 제일 높은 산봉우리에 우리를 데려가서 아득히 먼 철길을 가리키던 선생님의 마음.


지금도 생각납니다.


솔직히 ‘내가 보기는 본 건가’ 긴가민가했고, 속마음은 허망했지만, 겉으로는 의기양양하게 웃음 지으며 “선생님, 고맙습니다” 하고, 만나는 사람들한테마다 "우리는 기차를 본 사람들이다" 하며 자랑하던 우리들 모습을요.


6.25 전쟁 속 1952년. 모든 게 아름답고 모두가 행복했던 우리의 봄 소풍. 지금도 자랑하고 싶은 소중한 추억입니다.


딱 하나, 기차를 구렁이라 했던 것만 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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