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나홀로 하루」 두 번째
셋방살이 떠돌이의 사연
안녕? 나 꼭두.
이번 주부터 나하고 세 번씩 만나는 거 다들 아시지? 화요일과 금요일 두 번에서, 화요일 수요일 토요일 세 번으로.
그를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가 많아져서 난 좋긴 해. 그러다 연재 약속 놓칠까 겁나서 말렸을 뿐.
내 길동무가 요즘 바쁜가 봐. 늘 텅 비어 있던 그의 캘린더 앱이 지난 주에도 이번 주에도 하루마다 뭔가 약속이 적혀있어.
덕분에 이전처럼 그와 호젓하게 둘이서 그가 살던 이야기, 요즘 사는 이야기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그와 수다 좀 떨었어. 그가 지금 살고 있는 집 이야기로.
지나가는 말인 양 먼저 찔러봤지.
"이 집으로 이사는 왜 왔더라?"
어쩔 수 없었던 거 잘 알면서.
아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안 나오는 말을 괴성으로 키워 온 지가 꽤 됐고, 이웃들의 민원에 쫓기듯 이사 다닌 세월이 얼마더라?
벌써 15년째네. 나름 화려했던 한강변 60평 아파트 기어이 팔아먹고, 셋방살이 떠돌이 신세 된 지가.
"민원 대단했지. 참 인심들 야박하더라."
세상이 거꾸로 간다니까. 처음 아들의 자폐 치료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듣는 말이 뭔 줄 알아? 자폐부모의 행동매뉴얼 1장 1절에 이렇게 적혀있어.
'네 자식이 자폐를 앓고 있단 걸 널리 알려라. 그러면 선한 이웃들이 틀림없이 너를 도와주리라.'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
영화 '말아톤'에서 초원이가 행인에게 맞고 피 흘리며 엄마 대신 외치는 말이야. 초원이가 남들에게 오해받을 행동을 할 때마다, 엄마가 사람들에게 늘 하던 말을 따라 한 거지. 이 영화의 명대사라고들 해.
선한 이웃? 명대사? 개가 웃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해. 민원은 어찌어찌 대화가 돼. 그런데, 이전 집주인이 뭐라 했는지 알지? 왜 아들이 장애라는 걸 숨기고 이사 왔냐더라. 알면 절대 안 받았대. 난 자랑을 안 했을 뿐이야.
이번에 나 가고 나면 아들 혼자 살 곳 찾으러 전국의 장애인 거주시설을 찾아 헤매고 있잖아. 그러다 만난 그곳의 전문보호사라는 사람, 난색을 표하며 하는 말이 가관이더라.
딱한 사정이라 조언해 주는 건데, 자폐장애라는 말은 숨기고 신청하라네. 정 부득이하면 발달에 다소 장애가 있다고만 하래. 지적장애 뒤에 숨으라는 거지.
행동매뉴얼? 천만에. 현실은 금지매뉴얼인 거지.
사람들이 이 지경이야. 유일 보호자인 자신이 떠나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왜 마지막 선택이 동반자살로 몰리는지 짐작이나 되니?
요즘은 언론에서도 그런 기사 싣지도 않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 세상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우리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이 친구 또 말문 터졌다. 아들 얘기만 나오면 말이 많아지는 양반.
좁은 시장통 속 낡은 2층집
"어허 이 친구, 내가 모르면 누가 알겠냐? 그런데 내가 궁금했던 건, 네가 왜 사람들에게 당신과 아들이 살고있는 집을 스스로 귀곡산장이라 부르는지 그거였어. 내게 화내지 마."
이번엔 민원 때문이 아니고, 그 집주인 말이 하도 기가 막혀서 또 집을 찾으러 나섰어. TV 거의 안 보고 사는 내가 종종 보는 다큐 알지? '나는 자연인이다'.
볼 때마다 생각해. 저런 곳 가서, 늘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내 손 벗어난 아들이 맘대로 뛰어다니고, 맘껏 소리 지르며 살게 하고 싶다고. 나도 아들도, 도와주기는커녕 어떻게든 몰아내려는 사람들 눈치 안 봐도 되는 곳.
하지만 실제로 현실은? 그런 곳 없더라. 암만 뒤져봐야 값도 서울과 별 차이 없거나 오히려 비싸고. 말 그대로 오지 들어갔다가는 아들 산속이나 물속으로 실종시키기 딱 좋겠더만.
"또 서울에서 헤맬 수밖에 없었겠다."
부동산 여러 곳을 찾아, 아들 사정 얘기도 하면서 지하든 옥탑이든 관계없으니 사람들이 신경 안 쓰는 조용한 집 좀 찾아달라 했지만... 서울에서 어디를 간들 앞집 뒷집 옆집이 없겠냐고?
그날도 지친 다리를 끌고 돌아다니다 지친 목소리로 "이만 들어갈게요." 하자, 여기저기 전화를 하더니 나를 다른 업소로 끌고 가더라.
그곳 중개인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음흉한 미소를 짓네. '드디어 왔구나. 당신 딱 걸렸어.' 하는 표정으로.
"임자가 오셨네요. 거기가 안 나가서 제가 얼마나 애를 먹었는데 드디어..." 하고는 나를 데려가는데, 평소 내가 종종 다니던 전통시장으로 들어서네?
'뭐지?' 싶던 순간, 골목에 또 골목을 꺾어들자, 아니 그 속에 집이 있었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딱 그 짝일세.
점포들로 빼곡한 재래시장 골목 한복판에 주택이라니. 그 골목에 딱 네 채의 집이 'ㄷ' 자로 모여있는데, 문제는 주저앉아 있는 철대문하며 겉모습부터 도통 정이 안 가.
사람 피할 곳을 찾고 있는데 사람 북적거리는 시장골목 한복판에, 한눈에 보기에도 낡아 보이는 저 겉모습까지, 왜 이 중개인이 낮은 임대가격에도 이 집이 나가지 않아 머리가 아프다고 했는지 충분히 짐작하겠더라고.
"그냥 갑시다. 안 봐도 될 것 같네요."
또 웃는다, 이 사람. 다시 그 음흉한 웃음.
"아 글쎄, 일단 보세요. 한번 보기만 합시다."
2층집인데 내가 살게 된다면 2층. 계단을 오르는데 틈이 다 갈라지고 벌어지고, 속으로 '아, 싫다.' 하는 순간, 고풍스러운 현관 철문이 열리더군.
"1층에 점포 두 개 있는데 늦어도 8시면 문을 닫아요."
응? 뭐라고? 아들이 발을 굴러도 상관없단 거잖아. 점포 위에 있는 집이라 제일 걱정되는 바로 그 숙제가 해결된다고?
"집주인은 어디에..."
"여기서 좀 떨어진 곳에 살죠."
"그럼 이 2층집 이 건물에 저 혼자... 독채네요?"
"독채죠."
세 번째 봤어. 음흉한 중개인의 그 미소.
그리고 내 머릿속으로는 장엄한 에밀레종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지. 전쟁이 물러가고 평화가 찾아오는.
70년대 부(富)의 상징, 2층 양옥집
"독채를 발견하곤 홀라당 넘어갔군. 그다음에 네가 어떻게 했을까?"
곤혹스러운 척 표정 지으며 중개인들과 헤어지고는, 나 혼자 다시 그 집을 찾았어. 꼼꼼하게 둘러봤지.
1부에서 말한 적 있지. ‘2층 양옥집’이라는 그 시절 유행어가 70년대부터 생겨났다고.
마치 80년대에 오래된 주택단지 옆에 우뚝 솟아오른 고층 아파트처럼, 한발 앞선 70년대에 낡은 재래 한옥집을 뚫고 지어진 신축 양옥집. 우리나라에 변소 대신 수세식 화장실을 가지고 나타난 새로운 부잣집의 상징.
내가 국민학생일 때 지어진 집이야. 이 시장통 2층집이. 난 그런 곳에 사는 부자 친구들을 신기하게만 봤을 뿐 한 번도 살아보진 못 했던.
나중에 중개인과 집주인, 그리고 시장 상인들과 더 이야기하며 알게 된 것들, 내가 살면서 알게 된 것들을 다 합치면 말야.
70년대 초반, 부자 네 명이 이곳에 모여 각자의 집을 지었대. 전원주택 유행일 때 별장타운 만들 듯 말야. 무려 50년 전에 지어진 집이 그대로 있는 거지. 놀랍게도 네 집 중 세 집이 집주인이 바뀌지 않았어.
두 채에는 당시 집을 지었던 젊은 부자가 다 늙은 할아버지가 돼서도 그 집을 지키고 있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은 그때 집을 지었던 부자가 돌아가시고 그 아들이 세를 놓으며 여전히 소유 중인 집.
집을 짓던 당시에는 그냥 풍광 좋고 공기 맑은 허허벌판이었대. 당연히 시장 같은 것도, 근처에 다른 집도 하나 없던 땅. 하기야 그때는 강남구도 서초구도 송파구도 강동구도 서울이 아니었던 때니까.
참 재밌는 집 네 채야. 주변은 온통 변했는데, 무려 50년째 70년대 그때로 시간이 멈춰있는 곳. 지금도 이 시장 안에 주택이라곤 이 네 채가 전부야.
새삼 다시 보니 아까는 낡게만 보였던 70년대 2층 양옥집의 위엄이 느껴지더군. 정남향에, 제법 넓은 테라스. 심지어 굴뚝도 있어. 집집마다 그 시절 풍경을 다시 볼 수 있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씩. 구색 갖춘 것까지 50년째 그대로야.
앞집엔 감나무, 그 옆집엔 백목련, 또 옆집엔 암수 한 쌍의 은행나무. 모두 50년 된 늙은 나무들. 안타까운 건 우리 집만 마당이 없어. 1층 점포가 창고로 개조해서 그렇다네.
내심 지하까지 불사했던 내게 정남향 햇빛이 아주 잘 드는 2층집. 앞뒤로 창만 열면 즉시 불어오는 시원한 맞바람. 당시 부잣집답게 큼직한 방 세 개와 거실, 주방까지 완벽해.
"단점은?"
50년 전 부잣집이 지금은 가건물 수준이야. 외풍이 어찌나 센지 겨울이면 도시가스 비용이 상상을 초월해. 집 안에 바람이 휭휭 지나다녀. 추워. 주차, 정차는커녕 시장통 좁은 골목이라 아예 차가 집 앞 골목으로 못 들어와.
재밌는 건 여기 SKT, KT, LGU+ 다 안 들어와. 싹 다. 믿어져? 여기 서울이야.
지금 이 글은 어떻게 올리고 있냐고? 기적처럼 딜라이브에서 재래식 케이블 한 가닥 끌어와서 이 집 주변을 독점하고 있어. 초고속 이런 건 돈 더 준대도 못 해. 지금 깔린 선으로는 불가능하대.
그러다 보니 선로가 몹시 불안정해서 눈, 비 내리는 날이면 업로드가 잘 안돼. 특히 사진. 만약 수일간 연재가 안 올라오거나, 밤 늦게나 올라오거나, 일러스트 환장하는 내가 텍스트만 올린다? 그러면 여기 날씨가 안 좋거나 그런 거야.
"장마철엔 PC방 가야겠네."
이러니 암만 싸게 내놔도 살러 오는 사람이 없을 수밖에.
"당신은?"
아들 키우느라 집 팔아먹은 걸로도 모자라, 아들 키우는 데 없으면 안 되기에 끝까지 지키던 차마저 팔아먹어서 괜찮아. TV는 원래 거의 안 보고, 와이파이는 달래가면서 쓰면 돼. 덥고 추운 건 아들 지키는 대가로 감수해야지.
독채잖아, 독채.
여기는 축복받은 도심 속 에덴동산
"풍경만큼은 죽여주는군. 일단, 당신 정서하고 딱 맞겠는걸?"
제일 인상적인 건, 장사 더럽게 안되는 작은 시장이라 8시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7시만 되면 대부분 점포가 철수해. 강동에서 가장 작고 제일 한적한 전통시장이야.
재래시장 현대화? 여기는 별로 할 것도 없고, 선거 때면 후보들이 늘 찾는 시장에서도 여기는 그저 그렇더라.
쉽게 말해서, 해 떨어지고 나면 우리 집은 완전 적막강산이야.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아무 소리도 없어. 독경 소리조차 없는 깊은 산 속 절간이랄까?
대로변이 아니니 차 소리도 안 들리고, 집이라곤 네 채뿐인 시장골목이니, 도시 골목마다 흔히 지나다니는 트럭 노점상이나 택배차도 없어. 일없이 다니는 사람도 없고. 그래도 시장이라고 CCTV가 도처에 깔려있어서 그런가? 처음엔 무서울 정도였다니까.
한적한 깡촌 마을의 밤은 하다못해 풀벌레 소리라도 시끄럽잖아. 그래도 여긴 도시라 그런 거 없어. 대신 바퀴벌레와 길냥이는 많더라. 반찬 가게 많으니 먹을 게 많아 그런가 봐.
"제일 중요한 게 남았잖아. 아들땜에 들어야 했던 민원은 어찌 됐어?"
하하. 아들이 암만 떠들고 뛰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딱 앞과 옆의 세 채만 그 소리를 듣게 되는데, 모조리 할아버지, 할머니거든? 처음엔 '이 평화로운 곳에 뭔 소리지?' 하는 표정으로 나와서 한참을 구경하다 고개를 주억거리고 들어가더니 이젠 내다보지도 않아.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나는 자연인이다'를 찍을 수 있는 곳. 아들과 내게는 축복이 넘치는 땅, 평화가 넘치는 집이지.
표현이 모자라네. 여기는 '파라다이스', 서울의 '에덴동산' 맞다니까.
이러니 내가 차마 '천국'이라곤 말 못해도, '도심 속 귀곡산장'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지 않겠어?
"정말 환상적이군. 행복했어? 지금도?"
아들 키우면서 20년 넘게 세상과 연을 끊고 살았잖아, 내가. 일찌감치 독거노인의 길을 시작한 거지. 그런데 이 축복의 집에 살게 되면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어. 죽은 듯 살던 내게 새로운 일상과 위로가 찾아왔지.
"그런 게 생겼다고? 독거노인도 업그레이드 버전이 있어?"
반려동물과 반려식물. 나도 집사가 된 거야.
"아니, 네가 그런 짓을? 어서 말해봐. 그동안 있었던 모든 변화를 하루 단위로 끊어서 천천히."
아, 미안. 나 지금 나가봐야 해. 다녀와서 말해줄게.
그래? 아쉽지만 그럼 나도 내일 이야기를 이어갈 수밖에. '내일 계속' 나도 이런 걸 다 해보네. 연재 횟수가 늘어나니 좋구만 그래.
내일 봐. 오늘 만난 모든 분들, 잠시 안녕.
급히 종종거리며 나가던 그가 끝으로 추가한 한마디.
야야, 저 사진들 치워. 여기는 저렇게 제대로 된 시장이나 멀쩡한 산장은 아니라니까.
내가 나가면서 그 궁상맞아 정 떨어지던 겉모습, 실사(實寫)로 찍어보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