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2025

「그의 나홀로 하루」 열 번째

by 꼭두

아듀 2025

「그의 나홀로 하루」 열 번째


생이별 준비 셋, 미니멀 라이프


안녕? 모든 분. 2025년 한 해를 마감하고 있는 꼭두야.


올해 여름 참 뜨거웠지?


8월이 되자 테라스의 햇볕이 정말 뜨겁더군. 여기는 정남향 집이라 제대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이미 7월부터 거실 안팎이 온통 후끈했어. 그는 아침, 저녁으로 식물에 물을 주느라 정신없었고.


덥긴 해도 4월 초 확진 이후부터 그때까지 그의 생활은 변화가 없는 듯했어. 적어도 겉으로는.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아들 케어를 점점 힘겨워한다, 그 정도?


그랬던 그가 8월이 되자마자 응급 입원을 하고 돌아오더니, 갑자기 분주해지더라. 제일 먼저 시작한 게 뭘 매일 버려. 처음 며칠 동안은 주로 솥, 냄비, 그릇 따위의 살림을 버리더니, 그다음에는 옷을 뭉터기로 버려. 사계절 옷 모두. 양말 한 쪽까지 알뜰하고 꼼꼼하게. 몹시도 과감하게.


"친구야, 뭐하냐? 그러다 아들 라면 끓여줄 냄비, 아들 입을 옷 한 점 안 남아나겠네. 적당히 좀 버리지?"


버리는 게 최고의 청소요, 정리라고 하지 않던? 정리의 왕들이 말하길 그 기준이 '지난 1년, 양보해도 2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건 과감히 버려라.'래. 난 더 명확해. 넉넉히 잡아서 앞으로 1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을 건 무조건 버려라.'야. 미니멀 라이프를 이제서야 제대로 실천하는 게 너무 아쉬울 뿐이다.


한 주 동안 집을 온통 재활용 처분장으로 만들더니, 그 다음엔 책과 종이.


13권짜리 족보만 따로 챙겨 모셔놓고는 나머지는 싹 다 버리더라고. 낡은 메모 조각 하나까지 빠짐없이. 그것도 일일이 찢거나 태워 가면서.


"족보, 그거야말로 1년 동안 한 번도 펼쳐보지 않던데 왜 안 버림?"


딱 이것만 예외야. 아버지가 떠나시기 며칠 전까지 손으로 일일이 꼭꼭 눌러쓰며 업데이트했던 거, 돌아가신 후 내가 완성시킨 우리 종가의 최신 증보판이야.


"누구 줄 건데?"


그게 좀... 아들은 아니고 딸밖에 없는데 계속 가지고 있어 줄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근데 이런 건 원래 누군가 나중에 해주는 거 아니냐?"


울 엄니, 아부지는 내가 했지만, 난 해줄 사람이 없잖아.



이력서 혹은 묘비명


기세등등하게 해치우는구나 싶더니, 앨범과 사진을 만나자, 꼬박 하루 동안 생각에 잠기더군. 내 친구 원래 정리벽, 수집벽이 좀 있어서 사진이 엄청나게 많거든. 주로 예전 필카 사진들을 필름까지 죄다 가지고 있더라고.


결심한 듯 정리를 재개하는데 사진에만 꼬박 2주가 걸리더라. 초중고딩부터 대학까지 그와 자식들의 졸업 앨범부터 챙기더니, 사진을 정리하기 시작하는데 볼만하더군.


3대에 걸친 사진이잖아. 빛바랜 흑백의 부모님 사진부터, 이어서 그의 사진, 세 자식의 사진이 절정인데, 갓 태어난 병원 사진부터 백일, 돌 앨범을 거쳐 유아에서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아. 액자도 잔뜩하고.


부모님 사진은 거의 그대로 두고, 그의 사진은 대부분 찢더라. 자식들 사진은 반 정도 넘게 찢고 나머지를 앨범 십여 권에 하나하나 붙여나가는데 족보보다 더 많아. 자식들 사진은 한 장 한 장 엄청 망설여가며 고르더군. "이건 뭘까? 이게 지금도 인화가 되려나?" 하면서 카메라에서 갓 꺼낸 촬영 필름통도 몇 개 챙기고.


그때 한쪽 구석에 모아두는 것들이 따로 있었어. 함빡 웃어가면서.


"그건 뭐냐?"


너만 특별히 보여줄 테니 한번 볼래?


상자 세 개를 열어 보이는데 원 세상에... 아이들 탯줄부터, 태어나서 처음 입었던 배냇저고리, 이름 지을 때 받아온 사주팔자와 작명지, 아기 때 입었던 첫 외출복. 세월이 켜켜이 내려앉았지만, 아직까지 뽀얀 자태를 간직하고 있는 것들.


"그건 어쩔 건데?"


자기 물건이니 가져가라 하면 받아 가겠지?


"글쎄..."


난 다 떠나서 아직 내가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었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마냥 좋다.


탯줄을 예전엔 대입시험 고사장에 지니고 들어가게 했다던데 그건 안 해봤지만... 아무튼 본인들 것이니 본인들이 알아서 하겠지. 저 상자는 딸이 청소년 때 열광하며 모은 동방신기 컬렉션이고, 그리고 이건 딸 초딩 해양소년단 제복, 중고딩 교복, 저건 할머니가 마지막 지어주신 그 아이 한복이야.


이때 그는 웃고 있었지만, 불과 얼마 후 이것 때문에 크게 상심하게 될 줄이야.


그렇게 무려 한 달여를 바쁘게 살고는 이제 PC 앞에 앉더라.


"뭐 만드는데?"


이력서.


"취직하냐? 죽는 날까지 일하게?"


그건 아니고 연보 내지 묘비명 대신이랄까.


"사진부터 찍어야 하지 않냐?"


그것도 해야지. 근데 잘 안되네. 얼굴도 이 모양이라 망설여지기도 하고. 활짝 웃는 사진을 꼭 보고 싶은데, 그런 거 원래 잘 못하는지라 가능할지도 모르겠고.


"극작가에 배우까지 했다더니 그것도 못하냐?"


하루 종일 모니터만 째려보더니 딱 한 줄 적고 마네.


1962 生 - 2027 卒


"그게 뭐야?"


원래 묘비명은 이런 거야. 이거면 충분해.


내려놓기


"말 나온 김에 물어보자. 왜 2027이지? 올해는 2025고 네가 교수한테 들었디던 여명도 2025야. 이제 거의 다 됐을 텐데?"


별 뜻은 없고, 울 아부지 때도 똑같았는데 2년 더 환자로 사시더라.


"아버지는 투병 생활을 치열하게 하셨잖아. 넌 아픈 환자로 조금 더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치료도 안 받겠다 하고 있고. 그런데 기대는 같다고?"


그렇긴 하군. 근데 내 생일이 11월 30일이잖아.


"음력?"


응. 나 원래 태어나서 지금까지 생일은 음력으로 지냈어. 새해 달력을 받으면 늘 내 생일부터 찾는 게 일이었는데, 이번에도 양력을 찾아봤더니 2026년엔 1월 18일, 2027년엔 1월 7일이더라. 2026은 좀 빠른 것 같고 2027이면 딱 좋겠더라고. 욕심 같긴 하지만. 애써 핑계를 붙이자면, 그때까지 쓸 수만 있다면 회고록도 완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고.


"그러세요, 그럼."


그래도 좀 더 써볼까? 아비가 이렇게 살았다는 유일한 기록이 될 텐데.


젊었을 때 그가 썼던 이력서는 온통 일과 관련된 것이었어. 지금 쓰고 있는 걸 얼핏 넘겨다보니 일 관련은 다녔던 회사 이름 세 개, IT 법인 대표이사로써 창업과 경영 25년 딱 그렇게 네 줄 뿐. 나머지는 다 가족들 이름이야.


A4 한 장을 간신히 채웠는데, 난 이력서가 아니고 뭔 호적등본인 줄 알았어. 60년간 그가 했던 건 일이 아니라 가족이었나 봐. 그 가족들, 난 한번 보기도 힘들던데. 특히 요즘엔 아예 얼굴 본 기억조차 없다.


그가 말한 대로 첫 줄과 마지막 줄이 가관이야. 나중에 누가 추가해 주겠냐며 날짜까지 박아놨더라고. 날짜가 혹 달라지더라도 고치지 말아달래. 자기가 원했던 마지막 날짜로 남기고 싶다나.


1962.12.26(음 1962.11.30) 出生

2027.01.07(음 2026.11.30) 歸天 만64세


문득 그 생각이 나더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의 마지막이라는 수용(Acceptance).


직전 단계까지 겪었던 부정과 분노와 슬픔을 다 내려놓고, 자신과 주변과 사람을 정리하는 단계래. 모든 감정에서 자유로워졌기에 평온한 마음으로 그게 가능해진대. 내 친구는 지금 막 그걸 하고 있는 중이더라고.


원래는 그거 내가 해줘야 하는 일인데.


사치하기


역시 내 길동무는 대단해. 이 친구에게는 6단계가 있었어.


한 달간의 '내려놓기'를 마치고 허탈한 듯 아주 심심해하더니, 이제부터 마지막으로 '사치하기'를 하겠대. 날 받아놓은 사람들은 원래 청소도 매일 하고 속옷도 매일 깨끗하고 좋은 걸로 입는 거라나.


20여 년간 필요가 없어서 사지도 않았지만, 그나마도 다 버리고 나니 아무것도 없다면서 변변한 신발, 옷 딱 한 점씩만 사겠대.


그러다 불쑥 딸한테 문자를 하더라. 다가올 아빠 생일 선물 당겨서 해달라고. 콕 집어서 지팡이 링크를 보내더군. 별일이야. 딸이 선물을 해줘도 내가 해준 게 뭐 있다고 이런 걸 다 받냐며, 마음껏 좋아하지도 못하던 그가 말야.



정작 사고 싶은 게 있대. 그건 비싸서 자기가 사겠대. 여기서 언젠가 말했던 마지막 의자래. 영화에서는 주로 흔들의자인데, 자기는 최신 리클라이너의자로 하겠대. 가난하다더니 그 돈은 언제 남겨뒀을까?



요즘 그가 회고록이라는 걸 쓰기 시작하며 좋아진 게 몇 가지 있어. 내 눈에 제일 괜찮게 보이는 건 말야. 아파서 잠 못 자는 새벽이면 침대에서 바닥까지 굴러다니며 어쩔 줄 몰라 했었는데 지금은 거실에 앉아 글을 쓰더라.


그럴 때면 늘 라디오를 틀어. 수도권 97.3MHz KBS Classic FM 혹은 수도권 99.1MHz 국악방송 FM.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막 2026년이야. 그가 틀어놓은 KBS Classic도 대단하네. 2025년을 몇 시간 남겨놓고부터 2026년 새벽이 된 이 시간까지, 몇 시간째 갖가지 악기 버전으로 올드랭사인을 틀어주는군.


아듀 2025.

봉주르 2026.


그의 나이가 바뀌었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