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곡산장 마당냥 2

「그의 나홀로 하루」 아홉 번째

by 꼭두

귀곡산장 마당냥 2

「그의 나홀로 하루」 아홉 번째


생이별 준비 둘, 마당냥


안녕? 오늘도 꼭두야.


한참 뒤에나 이어갈 것 같았던 마당냥 이야기를 그가 오늘 하자고 하네. 화려했다는 고양이 집사 전성시대 이야기만은 아닌 듯싶어.


요즘 그가 많이 서두르는 느낌이군.


"외로웠던 독거노인에게 큰 위로가 됐던, 마당냥과의 행복 스토리가 이어진다 했잖아. 그거 자랑하는 에피소드로 그치는 게 아닌가 봐?"


그 이야기도 하고, 동시에 오래 미뤄왔던 마당냥과의 이별도 말해야 할 것 같아. 이유는 다 알잖아? 난 지금 아들 살 곳 찾는 데 집중해야 해. 어차피 준비해 온 이별, 당길 수밖에 없게 된 사정이지.


"아들과의 생이별을 위해서 마당냥하고 먼저 이별을 해야 한다?"


그런 거지. 아들 살 곳 찾아야 하는 전쟁을 앞두고 마지막 김장으로 전투식량 쟁여놨고, 이어서 내 몸을 가볍게 하려는 거. 온전히 전쟁에만 집중하기 위해.


"하필 겨울인데... 어쩔 수 없다면야, 뭐. 그래도 행복했던 기억부터 말해줘."


시작은 비극이었어.


내가 마련해 준 겨울집에서 태어난 새끼냥 두 마리. 생후 2주 정도 지났을 때부터 눈을 제대로 못 뜨네. 둘 다. 신생냥들 잘 걸린다는 눈병이야. 눈에 염증이 생긴 거.


어미냥이 얘들을 가졌을 때 거쳤던 고민이 다시 시작됐지. 어떻게든 동물병원에 데려가야겠는데 문제는 얘들이 도통 협조를 안 해. 근처만 가도 도망가느라 바빠. 어미냥도 안 도와주고 잔뜩 경계만 해.


캣맘 대모라는 그 도시가스 아줌마. 자기가 도와줄 것처럼 기대를 부풀리더니 나하고 둘이 함께 잡으려다 실패하고는 이제 잘 안 와. 배신자.


혼자 동물병원에 갔지만 어떻게든 데려오라는 말만 하고, 급한 마음에 근접사진을 여러 장 찍어 지역에서 제법 큰 동물약국을 찾았더니, 추운 날씨에 노출된 새끼냥이 잘 걸리는 결막염이래. 항생제와 안약을 처방해 주네.


항생제는 빻아서 추르, 습식캔에 섞어 먹이고, 안약을 하루에 수차례 넣어주길 2주 정도 지났을까. 어느 정도 치료가 된 것 같더라고. 붓기도 가라앉았고 이제는 눈도 잘 떠.


"독학 집사의 길 대단하구나. 더구나 평생 길냥이 공포증에 시달리던 생초짜 주제에."


그치? 하지만 생초짜가 이리 힘겹게 골고다의 언덕을 넘고 있단 걸 비웃기라도 하듯, 비극은 계속되더라.


비교적 건강해 보이던 새끼냥은 눈병을 깨끗하게 털어낸 걸로 보이는데, 몸부터 작은 또 한 마리는 한쪽 눈이 영 부실한 채로 남더라고. 태어난 지 몇 시간 만에 혼자 집 밖에서 버둥대길래 내가 다시 집어넣어 줬던 그 아이.


걔 눈만 보면 영 마음이 안 좋았는데 어느 날 보니, 세상에나... 어미냥이 그 새끼냥만 남겨둔 채 다른 놈과 함께 떠나버렸어. 기가 막히더군. 적자생존이라는 건지, 이놈을 잘 부탁한다는 최후통첩인지 정신이 혼미하더라.


그때부터 그놈이 새로 시작한 짓이, 내가 보이기만 하면 달려들어 내 다리 사이를 분주하게 들락거리며 온몸을 비벼대네. 50년 만에 고양이를 다시 만져본 나는 여전히 그 촉감이 섬뜩한데, 얘는 그냥 자기 몸을 내게 비비느라 정신이 없어. 너무 심하길래 검색해 보니 고양이가 집사에게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호감 표시라더군.


조금 지나자, 현관문 틈이 조금이라도 열리면 막 들어와서 거실 복판에 발라당 누워버려. 고양이가 자기를 집으로 들이라는 강한 간택의 표현이래. "그냥 집에 들입시다." 하는 나와, "절대 안 된다." 단호하게 반대하는 엄니와 입씨름하기를 수차례. '겨울 동안만이라도..."까지 결국 모두 실패했어.


겨울집 옮기는 건 좌절됐지만 사실 집냥이와 다름없는 생활로 타협 내지 절충이 이뤄졌지. 어느 정도 거실에 들락날락하며 지내는 건 엄니도 모르는 체해주는 정도? 졸지에 엄마와 형제에게 버림받아 나홀로 고아가 된 마당냥이 안쓰러웠나? 게다가 어차피 얘는 DNA가 길냥이라 그런지 집에만 있지도 않더라고.


집과 테라스를 활동무대 삼아 제 맘대로 자유를 즐기는 낭만의 애꾸 방랑냥.


"낭만? 사실 외로운 거겠지."



동병상련(同病相憐) 풍경


그즈음 아들에게 새로운 행동이 시작됐어. 뭔가 스스로 답답함을 주체하기 힘들 정도가 되면 아빠 때리기. 처음에는 몇 번 제압해 보려 했지만 이제 힘이 너무 세진 아들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더라.


20년 넘게 아들을 전담해 온 의사도 그럴 때 힘으로 맞서면 오히려 역효과라며 절대 그러지 말래. 그냥 속절없이 맞아주는 게 전부였어. 너무너무 다행인 건 그 공격 행위를 유일하게 아빠한테만 한다는 거지. 엄니한텐 절대 안 해. 천만다행.


유일 보호자한테만 하는 공격. 그렇담 그 주 보호자에게 바라는 게 있다는 거.


그런데 그때도 지금도 정확한 이유를 몰라. 뭔가 불만의 발화점이 있을 텐데, 그것만 정확히 알아도 대처가 될 텐데... 여전히 내겐 미스터리지.


하염없이 맞다 보면 너무 서러워서 집 밖으로 피신하기 시작했어. 피신은 개뿔, 사실 쫓겨나는 거지. 한 손엔 폰을 쥔 채 추운 날이면 걸칠 옷을 찾게 되는데, 이놈도 그걸 알고는 가디건 던져주며 나가라고 등을 떠밀어.


자기 속도 모르는 무쓸모 아빠 필요 없단 거지. 뭔가 한참 뒤바뀐 풍경 아니냐?


"패륜일세."


누가 아니래냐.


현관 앞엔 '또 당했구나?' 하는 표정으로 마당냥이 기다리고 있다가, 또 내 다리을 온몸으로 쓸어주기 시작해. 마치 위로해 주듯. 그렇게 마당냥의 위로를 받다가 엄니한테 "혹시 나가려고 하면 바로 연락줘요." 말하고는 대문을 나서지.


마당냥이 졸래졸래 따라와.


원래 독거노인도 마당냥도 이 귀곡산장을 벗어나는 일은 드물어. 그런데 일단 내가 시야에 잡히면 내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내 옆을 떠나지 않는 이놈. 망설임 없이 나를 따라오지.


원래 도시의 길냥이들, 소리 없는 아이들이야. 마치 '닌자'처럼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데 이골이 난 놈들이지.


근데 얘는 달라. 야옹야옹 소리는 물론이고 나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동행하지. 남들이 보면 저건 절대 길냥이가 아냐. 집냥이 수준도 넘어서서 딱 주인과 함께 산책 나온 강아지야.


편의점에 도착해. 내가 캔맥주와 과자를 고르는 동안 마당냥은 유리문 앞을 지키고 앉아 꼼짝 않고 나를 기다리지.


길냥이스러운 게 다가오자 기겁을 하며 쫓아내려던 직원이, 나만 바라보며 근엄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키우시는 고양이군요." 하면, 난 그렇다고 아니라고 말하기도 애매해서 대꾸하는 둥 마는 둥 하며 계산을 마치곤, 옆에 있는 24시 무인펫샵으로 들어서지. 그놈은 또 따라와서 현관문을 지키고.


추르 몇 개를 사서 옆 골목 공원으로 가면, 어느새 먼저 온 마당냥이 커다란 나무 아래 아예 엎드려 자리를 잡은 채 기다리고 있어. 난 늘 앉는 그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난 캔맥주를 마시고 그놈은 추르를 먹으며 하릴없이 둘만의 시간을 보내지.


하나는 아들에게 맞고 쫓겨난 노인, 그 옆은 부모와 형제에게 버림받은 고아. 종(種)을 뛰어넘은 두 생명체의 교감. 걔는 나를 위로하고 나는 걔를 위로하고. 그 동병상련의 쓸쓸한 도시공원 풍경.


이름도 지어줬어. '후크'라고.


나중에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되짚어보니 애꾸눈 선장은 '잭'이고, '후크'는 한 손에 갈고리를 한 외팔이 선장의 이름이란 걸 뒤늦게 떠올렸어. 정정해 봤지만, 이미 후크라는 자신의 이름에 반응한 지 오래라 그냥 후크로 남았지. 지금까지도.


"이 무식한 바보야."


기구한 팔자에 비하면 까짓 이름이야 아무러면 어떠냐? 그래도 해적선 선장의 신분은 유지했으면 됐지 뭐. 안 그려?"



사라진 후크


이제는 엄니도 안 계시게 된 귀곡산장. 더더욱 둘이 서로를 위로하고 의지하며 아주 오래 산장을 지키면서 살 줄 알았는데, 그러다가 '그날'이 왔네. 내가 피를 쏟고는 119를 타고 아산 응급실에 죽으러 갔던 날.


'그날'로부터 정확히 8일 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테라스에서 나를 쳐다보는 후크의 자태가 심상치 않아.


알라딘의 램프에 갇혀 살며 누구든 자기를 꺼내 줄 사람만을 기다린다는 '거인'. 마침내 그 구세주를 만나면 세 가지 소원을 이루게 해주지만, 너무 오래 안 나타나면 만나자마자 잡아먹는 것으로 도리어 해코지를 한다지?


오랜 기다림이 원망으로 바뀐다는 건데, 얘 표정이 딱 그짝이더라고. 이전처럼 반가움에 몸을 비비기는커녕 사납게 그르릉거리며 째려보기만 하대? 새삼 그 애꾸눈이 무섭더라. 혹시나 했지만, 역시 8일 동안 굶은 게야.


"후크가 네 밥만 먹는 건 아니었을 거잖아. 그래도 명색이 길냥이 아닌가?"


천만에. 후크는 족보만 길냥이일 뿐, 태어난 그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주는 밥만 먹었지, 야생에서 먹이를 구해본 적이 없어. 그걸 가르쳐줄 어미도 없이 컸잖아.


사람 피해 사는데 이골이 난 소리 없는 닌자 길냥이이긴커녕 어떤 집냥이보다도 시끄럽고 부산스러운 딱 귀공자 강아지야. 고양이의 기본 품성이라는 도도함 따위도 모르고 집사와의 동네 산책이 마냥 즐거운 개냥이, 후크.


"앉아! 일어서! 손! 굴러!"를 순식간에 마스터하고 "빵야~"를 외치면 즉시 그 자리에서 발라당 죽어버리던 놈. 처음엔 그게 너무 신기해서 'TV 동물농장'에 출연시켜볼까 나를 심각하게 고민시키던 후크.


하지만 그 결과 문제는, 할머니에 이어 나마저 없는 동안 이 귀곡산장에서 혼자 쫄쫄 굶었다는 거지. 흙에 묻혀 꼼짝도 못한 채, 정남향 테라스에서 유난히 뜨거웠던 올해 여름볕을 고스란히 맞으며, 물 한 방울 없이 8일 동안 절반 넘게 말라죽은 귀곡정원 식물들과 함께.


"허허. 참 딱한 일이네."


안쓰러움과 미안함에 사료는 물론이고 온갖 먹거리까지 정성을 다해 식량 공급을 재개했지만, 좀처럼 야속한 원망을 풀지 않더라.


게다가 엄니를 마저 보내드리느라 어머니 살림 정리에, 이제는 나를 떠나보내기 위해 내 살림 정리까지 하다 보니, 뭔가 나도 분주하고 드나드는 사람들의 분주함도 낯설었나 봐. 둘이 고즈넉하게 지내던 귀곡산장의 풍경을 후크도무 좋아했거나.


어느 날... 후크가 사라졌어. 그릇 가득 밥만 남겨놓은 채.



컴백홈 잭


딸한텐 미안한 말이지만, 딸이 내 품을 떠날 때보다 후크가 나를 떠나간 것에 대한 상실감이 더 큰 것 같더라. 나만 바라보던 놈이라 그랬을까?


아들한테도 미안한 말이지만, 늘 품 안의 자식인 아들이 막상 나를 떠나가면 느낄 상실감이 이런 것이려나? 싶기도 했고.


"원래 길냥이는 집에 들여도, 타고 난 보헤미안의 기질을 버리지 못하다가 때가 되면 떠난대. 암놈 배우자를 찾아 떠나기도 하고. 후크, 숫놈이지?"


후크도, 함께 태어난 형제냥도 다행히 둘 다 숫놈이야.


후크에 대한 걱정에 사례를 찾다가 나도 그 말 들었어. '어차피 이리될 일인데, 차라리 잘 된 거다.'하며 스스로를 위로했지. 정말 그런 거면 좋은 일이고.


하지만 다른 말이 더 많더라. 집 밖을 나가보지 못한 아이가 섣불리 '가출'했다가 못 돌아오는 경우. 흔하게 발생하는 어떤 사고인 경우. 이럴 때면 집사가 찾는다는 '고양이 탐정' 생각도 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하고, 잊으려 노력하며 살았는데.


그랬는데... 후크가 떠나간 그 자리에 어느 날 후크를 떠났던 형제냥이 나타났어.


"그놈인지 어찌 알아? 세상 흔한 게 치즈냥 아냐?"


야, 태어나자마자 내가 매일 안고 안약을 넣어주던 아이야. 보면 알아. 키워본 사람들은 뭔 말인지 알 거야.


후크가 떠나고 나자, 이 시장골목의 길냥이들이 매일같이 얼굴을 바꾸며 나타났어. 그놈들한테 여기 귀곡산장 테라스는 늘 깨끗한 물과 밥이 있는 에덴동산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나 봐. 후크 빈자리를 노리는 놈들이 수시로 찾아왔지만 난 다 모른 척했어.


난 원래 캣맘도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길냥이만큼이나 캣맘도 마땅치 않아 하던 사람이야. 게다가 후크 대신? 어림도 없지. 그런데 다시 나타난 그중 한 마리가 뜻밖에도 후크의 형제 치즈냥이었던 거지. 컴백홈.


얘는 모른 척할 수 없더라.


비록 후크는 아니지만, 빈자리 임자가 나타났다 싶으면서 반갑더라고. 후크에 대한 그리움에 더해서, 거칠게 자란 모습을 보니 그동안 고생한 흔적이 역력해서 안쓰럽기도 하고.


설마 어미냥이 너마저 버린 거야? 그러게 애초에 어미냥 따라가지 말고 그냥 여기 남아서 형제끼리 살면 좋았잖아. 바보 같은 놈.


얘도 이름을 지어줬어. 잘못 이름 붙이는 바람에 애초에 후크의 것이어야 했던 그 이름으로. '잭'.


두 팔 멀쩡한 마당냥 이름은 '후크'. 두 눈 멀쩡한 마당냥 이름은 '잭'. 바보는 얘들이 아니라 내가 맞군.


원래 오늘 하려던 마당냥과의 이별 이야기가, 어느 날 사라진 후크 이야기뿐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잭과의 이별 이야기인데 이만 마칠게.


마당냥 토크는 최소 서너 번을 해야 마칠 수 있을 만큼 여러 해에 걸쳐 쌓인 긴 기억이야. 이걸 두 화에 마치려다 보니 사연이 길어지고 말았네. 만약 또 마당냥과의 이야기를 꺼낸다면 그건 잭과의 이별이 성공했다는 거야. 이 말은 아직까지는 잭과의 이별이 계속 실패하고 있단 거고.


매번 '이번이 끝이다.' 하면서도 난 또 사료와 간식을 한 푸대씩 사고 있더라. 잭이 후크 같은 재주는 하나도 없는데, 처음 그 어미냥이 내게 했던 밥 호소는 완벽하게 재현할 줄 알더라고. 난 매번 그 재주에 굴복해 왔고.


잭, 네겐 많이 미안하지만, 우린 헤어져야만 해. 넌 두 눈 다 맑으니 더 좋은 집사 만날 수 있을 거야.


어느 날 집시가 되어 나를 떠나간 후크야, 넌 무사히 잘 지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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