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나홀로 하루」 여덟 번째
생이별 준비 하나, 김장
안녕, 나 꼭두야.
오늘 귀곡산장에 배추가 도착했어. 절임배추 두 박스에 절임알타리 한 박스.
그런데 정작 그는 멍하게 쳐다만 볼 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네.
"왜? 엄두가 안 나냐? 그러니까 내가 올해는 하지 말자고 했지."
해야만 해.
나 태어나서 지금까지 우리 집이 김장 안 하고 넘어가는 해를 겪어본 적 없어.
"하이고, 공주 종가 6대장손 나셨네. 근데 솔직히 이젠 먹을 사람도 없잖아."
아들.
"당신은?"
난 저염식 때문에 못 먹어.
저염식 그거 사람 거의 미친다. 내 이전 20여 년 넘는 기간이 당뇨식이잖아. 그게 당, 탄수화물과의 전쟁이었다면 저염식은 한마디로 나트륨과의 전쟁인데, 저염식에 비하면 당뇨식은 애교야.
간장, 고추장, 된장 등 모든 장류와 입맛 없을 때 조금씩 먹던 젓갈류 금지. 한국인의 소울푸드 김치찌개, 된장찌개를 포함해서 모든 찌개류 금지. 특히, 김치류 절대 금지.
당뇨식 때문에 금지당한 쌀, 밀가루는 여전하기에 떡볶이, 순대, 튀김 분식 3총사는 물론이고 빵과 라면, 햄버거와 치킨, 피자를 시작으로 모든 패스트푸드와 밀키트 불가.
한마디로 먹을 게 없어.
"암세포가 죽이기 전에 굶어 죽겠다, 야."
내 말이. 근데 교수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다 한다고 약속은 굳게 한 데다가, 교수만 만나면 일단 거쳐야 하는 정밀검사에서 다 나온다니 안 할 재주도 없고 아주 빼박이라니까.
사실 별 식욕도 없긴 해. 하지만 약을 먹기 위해 뭔가 먹긴 해야 하고 아주 고역이다. 약이 워낙 많은 데다가 한결같이 독하거든.
"그럼 친구도 못 먹는 김장을 저렇게 무려 절임배추 40키로도 모자라서 알타리까지? 저걸 아들 혼자 다 먹는다고?"
모자라지. 인삼 보약이 따로 필요 없다는 요즘 제철 무 더 사서 깍두기도 담가야 해. 원래 울 엄니는 김장 때 동치미에 백김치, 파김치에 갓김치도 함께 담갔지.
"공주 종가 5대종부의 위엄이군."
자부심이 대단하셨지.
문제는 그 위엄에 길들여진 나도 평생 다른 집 김치는 못 먹었고. 오직 우리 집 김치만 먹었어. 근데 아들놈이 그 짓을 똑같이 하네. 우리 집 김치 아닌 건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우리 김치만 보면 환장하고 먹어.
알지? 집 들어서면 제일 먼저 찾는 곰뚱이 최고의 메뉴는 '김치돼지고기찌개'. 이어지는 후식은 '김치전'. 간식은 '김치베이컨볶음밥'. 야식은 김칫국물 잔뜩 넣은 '김치햄부대찌개'.
저 김치가 남아나겠냐? 절임배추 40키로? 저걸로 택도 없어.
"아들 땜에 김장을 안 할 수 없다?"
이게 다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아들 살 곳 찾기 프로젝트 실천이라고 봐야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버틸 전투식량을 쌓아놓는단 각오로 진행하는.
종가 김장, 종부와 머슴
"비장하군. 아들이 그리 잘 먹는 공주 5대종가 김장의 비결이 따로 있긴 해?"
내가 해마다 김장날이면 가는 집 앞 단골 스시집이 있거든? 갓 김장속을 넣은 포기배추 몇 쪽과 함께, 뚝뚝 뜯어낸 샛노란 배추 속고갱이, 김장속 한 뭉터기, 막 삶아낸 삽겹수육 몇 덩어리까지 한 보따리 싸 들고.
조용하고 정갈했던 일식 스시집이 졸지에 종가 김장 시식 파티장으로 변하지. 내가 며칠 전 오너셰프한테 말해두면 단골들에게 소식이 전해지고, 일부러 그날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야.
삼삼매콤하고 달콤시원한 깊은 맛이 일품이라고들 해. 특히 그 시원한 맛을 두고 점을 치는 자칭 전문가들이 등장하곤 하지. 오곡풀을 쑤어 넣었을 거라는 사람, 채소육수와 해물육수를 함께 썼을 거라는 사람. 분명 청각이 들어갔을 거라는 사람.
미리 말하면 풀, 육수, 청각 이런 거 전혀 들어가지 않아. 그런 말을 들으면 엄니는 한껏 교만한 표정으로 짧게 말하곤 하지.
"훗, 난 그저 기본에 충실할 뿐."
엄니에게 김장은 한 해 농사야.
초여름엔 마늘, 늦가을이면 생강과 고춧가루. 제철을 맞아 수확, 출하되는 무렵이면 늘 거래하던 곳마다 주문을 하지.
강경에서 막 절인 새우젓이 출하되기 시작하면 바로 단골 거래처에 연락해야 하고, 남해에서 죽방 멸치잡이가 시작되면 때를 놓치지 않고, 배 위에서 천일염을 뿌려 갓 포장한 생멸치 큰 통을 주문해서, 김장 직전에 직접 멸치액젓을 내려.
내가 정말 질색하는 그 냄새. 그거 할 때마다 난 도망 나가야 해.
우리 집 김장에 들어가는 재료는 그게 전부야. 마늘, 생강, 고춧가루, 새우젓, 멸치액젓 딱 다섯 가지. 그 외의 재료는 전혀 없어.
김장 '그날'이 오면, 시장에서 다발무, 홍갓, 쪽파 딱 세 가지 채소를 사. 무채를 썰고 한 해 동안 집 구석구석마다 쟁여놓은 양념을 다 때려 넣어 함께 잘 섞은 후, 홍갓을 얹어 비벼서 김장속을 완성해.
속을 넣어 이쁘게 버무린 배추포기를 통에 담으면서 시루떡 칸마다 팔고물 넣듯 쪽파를 끼워 넣으면 끝! 올 우리 김장 먹고 난 후 종가레시피 공개하라던 친구야, 잘 봤지? 난 다 말했다.
"정작 배추 얘기는 없네?"
원래 그게 김장 노동의 거의 전부지. 두 번째 노동이 무채 썰어 김장속 비비기. 세 번째가 각종 채소 까고 씻고 다듬기 쯤 되는데, 늘 직접 배추를 사서 사흘 동안 절이고 씻고를 반복하는 게 정말 큰 노동이야.
그걸 내가 집중 설득해서 절임배추로 바꾸기까지 삼 년이 걸렸어. 삼 년 간의 시도 끝에 울 엄니의 입맛을 통과한 배추는, 직접 절이던 시절에 주로 먹었던 해남배추도 괴산배추도 아닌 강원도 고랭지배추야.
일 년 후에 먹어도 아삭함 끝판왕인 영월 절임배추를 한 곳에서 십 년째 먹고 있어.
"친구도 제법이군. 서당개 풍월 읊는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이거 왜 이래? 폼은 엄니가 잡지만, 일은 내가 다 했어. 나는 곰, 엄니는 왕서방이랄까?
아부지 계실 땐 아부지를 그리 부려 먹더니, 아부지 떠나신 후 몇 년간 엄니 혼자 고생 좀 하셨지. 난 한참 사업할 때라 바빴거든. 그러다, 내가 아들 키운다고 집에 틀어박히자 기다렸다는 듯 날 김장머슴으로 부리더군.
난 6대장손 수업 대신 6대종부 수업을 받아야 했어.
일 년 내내 재료 구매대행부터 시작해서, 사흘간의 배추 절임과 세척 노동. 안 해본 걸 하자니 정말 힘들더만. 그러다가 무채 썰고 김장속 비비기까지 내 몫이 됐어. 궁리 끝에 직접 절이던 배추에서 절임배추로 바꿨더니 한결 낫더라.
그렇게 한 20년 하고 나니 좀 할 만 하더라고.
그래도 이건 종부김치야. 노고도 맛도. 김장이 끝난 저녁이면 이웃들에게 한두 쪽씩 돌리는 게 마지막 순서인데, 그걸 받은 이웃들이 입을 모으지.
"아유, 이 힘든 걸 그분 혼자 다 하셨네. 80키로요? 많기도 해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맛은 올해도 기가 막히네요. 고생하셨고 잘 먹겠다고 전해주세요."
고생은 제가 다 했는데요. 저 지금 몹시 힘든데요.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참았어. 종부의 위엄을 지켜드리기 위해서. 그리고 20년 김장머슴을 살았어도 여전히 모르는 김장속 재료의 비율을 알 때까지는 참아야 할 것 같았거든.
"그래야지. 슬기로운 머슴생활이군."
나홀로 마지막 종가 김장
일 년 전 기억이 떠오르네.
절임배추가 도착하는 날에 맞춰 미리 다발무, 홍갓, 쪽파를 사서 다듬고, 아침부터 무채 썰고 모든 재료를 대기시킨 채 엄니를 모셨어.
"지금부터 속을 만들게요. 자, 넣기 시작할 테니 다 됐을 때 '그만!'하고 말해줘요."
애초에 김장날을 잡아 말씀드릴 때부터 "그러든가..." 하며 마치 남 일 얘기 듣듯 관심을 보이지 않던 엄니. 엄니는 최근 일 년 동안 정신이 또랑또랑한 날이 손에 꼽을 정도야. 머슴 혼자 참 외롭더군.
드디어 김장속 재료의 비율을 알아낼 절호의 기회가 온 것 같은데 하나도 신나지 않아.
그런데 김장속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어. 처음엔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던 엄니의 눈빛에 점점 초점이 생긴다 싶더니, 내가 다진 마늘을 쏟아 넣기 시작하자, 잠시 후 선명한 목소리로 외치시더라. '그만!'.
이후 남은 네 가지 재료를 넣을 때마다 '중지!' 혹은 '그만!'을 외치는 것까지 잘하시더니, 그다음부터는 다시 딴 집 모드로 돌아가시더군. 결국 작년 김장에서 왕서방 엄니는 다섯 마디의 말 참여뿐이었고, 모든 일은 곰 머슴인 나 혼자 모두 해야 했지.
"속으론 뿌듯하셨을 거야. 가르쳐 놓으니, 쓸모가있구먼. 하셨을걸?"
심드렁하게 그저 지켜만 보는 엄니. 난 배추에 속을 넣으면서 짐짓 신난 목소리로 물었어.
"엄니, 내년 김장은 좀 일찍 할까? 내년에도 같이 해야..."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그러시더라.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내년? 글쎄다... 그래야 할 일이려나..."
잠시 고개를 절래절래. 그리고는 희미하게 웃으시네. 알 듯 모를 듯.
엄니는 이미 알고 계셨던 거야.
그날이 아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종가 김장이라는 것을. 지금도 떠오르는 그 표정이 너무 생생해.
그리고 일 년 후. 나 많이 망설였어. 무려 한 달 동안을 고민했어. 올해 나 혼자? 어차피 기운도 없어서 속 비빌 힘이나 있을까...
'아들 살 곳 찾는 일이다. 그걸 준비하는 일이다.' 생각하니 주문할 수 있더라. 작년에도 양이 적었지만, 똑같이 40키로를 주문했어. 역시 모자란다 싶어서 알타리 한 박스까지 추가했고.
그런데 작년보다 열 배쯤 더 힘이 빠져서, 뒤늦게 다발무, 홍갓, 쪽파 사 오면서 하루. 다듬고 무채 썰어놓고 배추는 째려만 보다 또 하루. 삼 일째 되는 날 저녁에서야 속을 만든 후 시계를 보니 자정을 넘겼네.
'이러다 배추 짜지면 공주 종가 김장의 삼삼한 맛이 실종된다.' 부랴부랴 속 넣어 드디어 마무리. 사상 유례가 없는 무려 3박 4일 동안의 김장을 마쳤어.
작년에는 엄니와 아들이 함께 한 마지막 종가 김장.
올해는 처음으로 나 혼자 한 진짜 마지막 종가 김장이 끝났다.
이거 아들이 다 먹기 전에 그놈 살 곳 찾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