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레스트 검프의 회상

「품 속의 타임캡슐」 네 번째

by 꼭두

포레스트 검프의 회상

「품 속의 타임캡슐」 네 번째


안녕? 오늘은 오랜만에 우편배달부로 인사하는 꼭두야.


이번엔 그의 이전 편지들과는 다르게 최근에 쓴 거 같아. 아버지에게 보내는 걸로는 두 번째 편지군. 게다가 이번엔 세 번째, 네 번째 편지까지 모두 세 통이야.


한 해를 넘겼다는 안도감보다는 오히려 분주해진 것 같은 그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어.


일찌감치 편지 세 통 써놓고 나간 그는, 아마 이 시간이면 그가 다니는 병원 시술실에 있을지도 모르겠네.


늘 그래왔듯 우편배달부 꼭두는 편지 속으로 끼어들지는 않아. 그의 편지만 여기 두고 갈게. 오늘부터 차례대로 아버지께 읽어드리라 하더군.


"아버지에게 보내는 그의 두 번째 편지가 왔어요."



어린이대공원 개장


아버지, 적적하셨죠? 오랜만에 아버지를 뵙네요.


이별이 30년을 넘기니 이제 다 잊은 거 아니냐고요?


그럴 리가요. 오히려 아버지를 더 가까이에서 오래 뵙기 위해 지내다 보니 좀 바빴어요. 정리해야 할 일이 제법 많더라고요. 그만큼 제가 해온 일이 많았다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누구예요? 온 세상이 저를 위해 돌아가던 거 기억하시죠?


천동설, 지동설 그런 건 다 부질없는 말이에요. 한마디로 제가 눈을 떠야 해가 떠오르고, 제가 잠이 들어야 해도 지던 시절을 살았죠.


당신의 하나뿐인 아들은 대단했어요. 자부심 가지셔도 좋아요.


제가 어린이가 되자, 대통령이 나서서 어린이대공원이라는 걸 만들었죠. 제가 어린이가 된 걸 축하해 주기 위해서요.


네, 제가 태어난 해에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면서 우리나라를 본격적으로 통치하기 시작한 그 군인요. 저를 위해 무려 18년 동안 대통령을 하면서 저를 챙겼죠.



1973년 5월 5일 어린이대공원 문이 처음 열리던 날.


그날부터 그곳에 우리를 내려주는 모든 버스의 번호표 앞에 '500'을 붙이게 하더군요. 당시 모든 버스의 번호표는 길어봐야 두 자리였는데 말이죠. 그리고 5월 5일까지.


그 모든 게 다, 그때 제가 국민학교 5학년이었기 때문이잖아요.



제가 중학생이 되자 제가 다닐 학교를 아예 새로 만들어 주더라고요.


중학교 입학 축하 선물치고는 좀 과하긴 했어요. 3학년 1반 1번이었던 제 졸업장이 불광중학교 1호 졸업장인 거 잘 아시죠?


덕분에 3년간의 노동이 고되긴 했어요. 입학했을 땐 산속 허허벌판에 달랑 건물 하나뿐이었고 운동장도, 담장도, 교문도 다 우리 학생들이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졸업하는 날. 1회 졸업생 700명의 손도장을 찍은 초대형 액자를 만들어 건물 현관 앞에 세우더니, 흐뭇한 표정의 교장선생님이 그러더군요.


"너희들의 손으로 우리 학교를 만들다니 정말 장하구나."


저희는 학교를 졸업하는 게 아니고 공병대대 소속의 군대를 제대하는 기분이었죠. 그것도 3년 꽉 채운 현역으로.


선물만 주고 말 게 아니라 A/S에도 신경 좀 써주시지. 그게 좀 아쉽더군요.



비밀의 정원 월담사건


제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이 되자, 이번에도 대통령은 '고교평준화정책'이라며 고입 '연합고사'를 없애버렸어요.


서울 구석 서대문구에 살던 저를 서울 도심 종로구에 있는 '5대 사립 명문고'에 입학시키기 위해서였죠. 전교생 중 도심으로 고등학교를 배정받은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티는 좀 났어요.


저 고등학교 때 대입시험은 '예비고사'와 '본고사'. 이렇게 두 개씩이나 치러야 했어요.


그때 고3 수험생들은 여름방학을 마칠 때까지는 국영수 중심의 본고사 공부에 전념하다가, 2학기가 시작되면 암기과목 위주의 예비고사 공부를 하던 시절이죠.


그런데 기억하시죠? 늘 감쪽같이 범생이 흉내를 내며 살던 제가 고3 어느 날, 소위 '일탈'을 감행했던 거. 바로 그 '비밀의 정원 월담사건'.


학생 몇이 학교 담을 넘어 같은 담장을 쓰는 '비원'의 일반인 출입금지구역에 모여 도박을 했던 사건으로 학교가 온통 떠들썩했죠.


따지고 보면 모든 게 다 그 대통령이 없어져서 나라가 어수선해지는 바람에 생긴 일이죠. 제가 고2였던 어느 이른 겨울날, 등굣길 버스에서 아침 내내 장송곡만 나오더라고요. 이상하다 싶었는데 제가 버스에서 내릴 때 돼서야 아나운서가 그러더라고요.


간밤 새 그 대통령이 죽었대요.


얼마 지나지 않아 새 대통령이 나타났는데, 그 사람도 군인이고 우리 종가하고 성이 같은 종씨(宗氏)였어요. 아버지가 그때 김씨 성을 가진 어머니를 놀리며 좋아하시던 생각이 나네요.


"너희 김씨 셋이 우리 전씨 한 명을 이기지 못했구나." 아버지는 웃었지만, 저는 좀 아쉬웠어요. 워낙 저를 챙겼던 대통령인지라. 하지만 종씨 대통령 값을 하려는지 새 대통령도 저를 화끈하게 챙겨주더군요. 이전 대통령만큼 무데뽀로.



당시 12반 중 문과가 3반, 이과가 9반이었는데 학생회장을 비롯해 학교의 모든 간부는 문과가 맡아 하던 시절. 그런데 문제의 사건 참가자들이 이른바 문과의 범생이들이어서 사건 처리에 학교가 골치를 썩었죠.


하지만 아무래도 제가 끼어있다 보니, 요즘 같으면 모조리 퇴학감인데, 정학으로 끝내주더군요. 제 범생이 학생부 12년 개근이 깨지던 순간이었죠.


우리 무늬만 범생이들은 정학 기간 동안 아예 학교 앞 파고다공원 근처에 여인숙을 잡아놓고 계속 도박을 했다죠? 한참 본고사 공부를 해야 할 시기인데.


보다 못한 대통령이 또 나섰어요.


부실할 수밖에 없었던 제 대입시험 준비. 저 편하게나 해주려고, 그냥 한방에 끝내보라며 본고사는 없애고 예비고사 한 번만 보면 되는 걸로 바꿔주더군요. 그해 여름에 기습적으로.


그래서 저는 마지막 예비고사 세대가 됐고, 재수를 거쳐 본 이듬해 시험에서 이름표가 바뀐 첫 '학력고사' 세대가 됐어요. 나중에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또 이름표가 바뀌는 그 시험이요.


새 대통령이 저를 위해 해줬던 건 몇 개 더 있어요.


'두발자율화', '교복자율화'라는 핑계를 대며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진 남학생들의 삭발머리와 학도병스러운 교복을 없애주고, 제 대학 입학을 축하해주기 위해 '야간통금해제'라는 것도 해서 자정 이후에도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었죠.


다만 짧은 집권일정 때문에 저는 그냥 마지막 삭발 세대, 마지막 교복 세대가 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어요. 그래도 아버지와 저를 포함해서 대한민국 술꾼들이 새벽까지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게 된 건 큰 변화였어요.


그건 아버지도 기억하시죠?


오직 저 때문에 늘 바빴던 두 대통령에게 새삼 미안하네요.



차비가 없어 걸어가신 아버지


그때 예비고사 성적표가 나온 이틀 후인가?


당시는 예비고사 점수표대로 학교 이름이 '과'와 함께 나올 정도로 '학교서열화'가 정점을 찍었던 시절이죠. 그냥 점수별로 학교가 자동 배정되는 수준?



지원 가능 대학 목록을 신문에서 보고 있는데, 옆에서 이를 딱하게 지켜보던 누나가 그러네요.


"야, 너 아빠가 원서 안 써준대."


"응, 나도 올해 갈 맘 없어. 이건 그냥 한번 재미 삼아 본 거야."


그런데 제가 이미 여러 군데 밑줄을 그어놨더라고요. 얼른 숨겼죠.


할 일이 없어진 저는 서대문 사거리에 있는 4.19 도서관을 오가며 당시 '서울대 1년 단기속성반'이라 불리던 종로학원 입학공부를 했어요. 그때는 종로학원 들어가는 것도 입시였죠. 은근 제 또래 애들이 들고 다니는 황토색 입시원서 봉투가 부럽긴 하더군요.


대통령 덕에 그렇게 종로학원에서 일 년간 그럭저럭 시간을 보낸 후, 이듬해 대학에 입학했어요.


아버지, 합격자 발표날 기억하세요?


예정된 날, 사전 공고된 시간에 맞춰 학교에 직접 가야 명단을 볼 수 있던 그 시절. 당시 학교 대강당 앞에 좌우로 길고 크게 설치된 합격자 명단을 확인했는데, 아버지가 계속 안 나타나시더라고요.



교문 앞까지 함께 왔다가 너무 많은 인파에 휩쓸려 헤어진 지 한참인데 말이죠. 아주 늦게서야 아버지가 힘없이 걸어오시더군요.


"아버지, 왜 이렇게 늦게 오세요? 저기 제 이름 있네요."


"어? 그러냐?", "진짜 그러네." 하시는 아버지 표정이 이상해요. 한참을 보시더니 주머니를 뒤져 제게 돈을 주셨죠. 제법 큰 액수의 지폐와 함께 웬 동전 꾸러미까지 잔뜩 주시더라고요.


"이걸로 친구들하고 맛있는 거나 사 먹으렴."


전 또 그걸 알뜰하게 챙겼어요. 동전까지 싹 다.


"아버지, 택시 타고 가셔야죠?" 했더니 일 없다며 학교 구경 삼아 그냥 걸어가시겠대요. 대강당에서 교문까지 한참이나 먼데 말이죠.


아버지, 그날 합격자 명단을 잘 못 보고 오셨다면서요? 운동장에 따로 설치돼있던 지방캠퍼스 합격자 명단에 제 이름이 없자 다리가 온통 떨리셨다고요.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요? 나중에 어머니한테 들었어요. 아버지 체통을 고려해 이제껏 아버지한테는 아는 척 안 했지만, 저, 그 얘기 전해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하하.


안 그래도 작년에 원서조차 못 쓰게 한 게 아들한테 영 미안했는데 이제 어쩌나 싶으셨다죠? 늦게서야 저를 발견하고 제대로 된 합격자 명단을 보게 됐지만, 합격했단 걸 확인하고도 여전히 다리가 후들거려 혼나셨다고요.


그러다가 저한테 술값을 쥐여주고 걸어나오는데 그제서야 다리에 힘이 생기셨다죠?


그런데요, 아버지. 왜 그러셨어요. 주머니에 있는 돈을 동전까지 싹 다 꺼내주는 바람에 신촌에서 광화문까지 걸어가셨다면서요? 차비는 남기셨어야죠.


네? 아버지는 기억이 잘 안 나신다고요? 알았어요. 오늘은 그만할게요.


편지가 더 있어요. 꼭두가 내일 또 아버지께 읽어드릴 거예요.


어쩌자고 차비까지...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