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만나러 갑니다

「품 속의 타임캡슐」 여섯 번째

by 꼭두

이제 곧 만나러 갑니다

「품 속의 타임캡슐」 여섯 번째


안녕? 오늘 또 꼭두 혼자야.


병원에 다녀온 그가 많이 힘들어해.


보험 적용이 더 이상 안 돼서 항암을 못 하게 되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며 그의 담당교수가 입원을 시켰던 거야. 이제 입원할 일은 없을 거라며 '인생전역 명령서'를 건네주던 그 교수가 말을 바꾼 거지.

「인생전역 명령서」 바로가기


간암 치료는 크게 세 가지가 있대. 첫째는 암세포를 제거하는 절제나 간이식을 위한 '수술'. 완치까지 목표로 하는 가장 적극적인 치료지. 처음 확진 때 교수가 아들 얘기를 꺼내자, 그가 숨도 안 쉬고 거절하던 기억이 나네.


두 번째가 화학술과 방사선을 병행하는 '색전술'. 그마저도 힘들 때 하는 마지막이 주사제로 치료하는 '항암'이야. 그의 담당교수는 색전술을 몹시 하고 싶어 했지만, 온갖 검사 끝에 그의 간이 버텨내지 못할 거라며 포기하고 항암치료를 결정했지.


그런데 그 항암마저 교수가 원하는 항암제를 못 쓰게 되자, 색전술을 1/10 미만의 강도로 낮춰 그가 버텨내는지 보는 일종의 탐색 시술을 해보자는 거였어. 따라서 당장은 큰 치료효과를 기대하지는 말라면서.


시술을 마치고 온 그가 아프다며 구시렁거리더라고. '기대효과도 크지 않다면서 이리 아파야 하다니...' 하면서. 교수를 만나자 퇴원하겠대. 그래도 카테터가 동맥을 타고 들어가 간을 헤집는 힘든 걸 했는데 괜찮겠냐는 교수한테 자긴 아무렇지도 않대.


뻥 같았어. 하지만 그가 누구야. 아들 밥 해 먹인다는 알리바이를 무기 삼아 아산병원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가난한 VIP잖아.


난 그가 그렇게 오래 자는 거 처음 봤다. 집에 오더니 그냥 자. 암것도 안 먹고 잠만 자.


최근 1년, 4시간 자면 '와, 간만에 오래 잤다!' 하던 그가, 거의 20시간을 자는 것 같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병원 갈 때 입었던 두꺼운 후드티를 입은 채 돌아왔는데, '왜 이리 춥냐?'면서 벗지도 않고 그대로 계속 자.


'영 잠든 건가?' 하고 흔들어보니 아직이더라. 깜짝 놀랐잖아. 나쁜 놈.


암튼 그래서 그가 아버지한테 써 둔 마지막 편지만 들고 왔어. 두고 갈게.


"아버지에게 보내는 그의 네 번째 편지가 왔어요."



외면하기 시작한 태양


아버지,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 잘 아시죠?


대학, 이어진 군대, 그리고 청년의 끝자락에 우여곡절 끝 시작한 사업.


이 시기에 저는 요즘 남들은 한 번도 엄두 내기 힘들다는 결혼이란 걸 무려 두 번이나 했어요. 아이들도 세 명이나 낳았죠. 딸 둘에 이어 아들 하나. 애국자 같죠?


한때 사업이 잘 되기도 했다죠? 아버지보다 훨씬 더.


때마침 닥쳐온 IMF 탈출을 위한 김대중 정부의 IT 벤처 붐과 고용지원정책 덕이 컸어요. 무려 25년간 수백 명의 직원 월급도 주고, 세금도 많이 내고, 게다가 2세도 3명이나 두었으니, 저도 제가 애국자인 줄 알았다죠?


수많은 사람이 IMF 때문에 집도, 일터도 잃고 힘겨워하는데, 저는 집도 사고 젊은 IT 사업가로 대접받고 살다니, 제가 봐도 여전히 태양과 세상은 오직 저를 위해 돌아간 거죠.


아버지는 큰 손녀만 보고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이후에 제가 두 번째 결혼을 한 것도, 두 손자를 더 본 것도 보지 못하셨죠. '우리 가문 종녀'라며 충청도 양반 장손의 체면도 잊고, 포대기에 제 큰딸을 업은 채 동네를 돌아다니시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거짓말처럼 제 사업이 잘 풀렸어요.


아버지가 물려준 빚 다 갚고도 돈이 남아서 서울 한강변에 당시 강동구에 제일 크게 지었다는 아파트도 사고, 둘째 손녀에 이어 마침내 우리 종가 7대 장손도 봤으니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생각에 그저 아버지한테 한없이 미안한 마음뿐이었죠.


하지만 전 역시 효자예요. 아버지는 제가 세상의 중심이었을 때까지만 지켜보고 떠나가신 거예요. 천만다행으로.


분명 그때까지는 온 세상이 여전히 저를 위해 돌아가고 있었는데... 그랬는데... 새 장손과의 만남과 함께 제게서 멀어지더라고요. 태양도, 세상도.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잘난 척 들떠있던 제게 닥쳐온 세상의 질투거나, 그동안 쌓인 제 업보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 시작됐거나.



지구를 팔아먹은 놈


사람 인생의 황금기라는 40대가 되며 전 일찌감치 독거노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나홀로 자폐아들을 키우며, 세상과는 담을 쌓은 채.


그러자 세상은 이제 아예 저를 빼놓고 돌아가더군요. 보란 듯이.


대한민국에서 살인을 저질러도 복역기간 20년이 넘는 사례가 거의 없다던데, 제 형벌이 20년을 훌쩍 넘어가는 걸 보고 전 생각을 바꿨죠.


'이건 현생의 업이 아니다. 전생에 정말 엄청난 죄를 지은 거다. 남들은 전생 최고의 중죄가 나라를 팔아먹는 거라던데, 난 최소한 삼국을 팔아먹은 게 분명하다. 고구려, 신라, 백제가 망한 건 모두 내가 한 짓이다.'


그랬다가 엄니마저 치매와 뇌경색을 앓게 되시고, 한 지붕 세 가족 중 이제 둘을 책임져야 하는 처지가 됐을 때 또 생각을 바꿨죠.


'삼국이 아니다. 난 지구를 팔아먹은 게 확실하다.'


어머니에게도 전 효자로 남았어요. 2025년, 어머니가 고향마을 아버지 옆으로 돌아가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여명 6개월의 암 확진 판정을 받는단 걸 모른 채, 오직 제 살 날을 위해 서둘러 가셨거든요.


엄니에게도 아부지에게도 저 효자 맞죠? 험한 꼴 안 보게 해드렸잖아요? 제 마지막 자부심이에요. 그렇다고 해주세요.


암 확진을 받고, 2025년을 넘기기 힘들 거라며 정리할 거 있으면 서두르란 교수의 말을 들었을 때 다시 생각했어요.


'지구도 아니다. 은하계? 아니지, 아예 우주인가?'


모르겠어요. 따지기도 지치네요.


너무 힘들어요. 이제 그만 쉬고 싶어요.


아버지, 제 마음 이해되시죠? 이렇게 생각해도 괜찮겠죠?


아직 넘지 못한 '골고다 언덕'


이제 곧 아버지 만나러 갈게요. 네, 30년 만의 부자 해후죠.


오늘도 다녀온 그 병원.


아버지를 떠나보내던 새벽, 저승사자와 판박이 모습 같았던 장례지도사와 함께 저 혼자 지하 영안실로 아버지를 모실 때, 그 파노라마가 아주 오랫동안 꿈마다 떠올라 힘들었는데 이제 그럴 일은 없겠네요.


그 끔찍했던 기억이 싫어서 온갖 핑계를 대고 그 병원은 근처도 안 가고 살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30년간 찾지 않던 그 병원에 제가 다니고 있죠.


어쩌다 담배 한 모금 생각에 나가면 그 구역 바로 앞이 기억도 선명한 그 장례식장이라 느낌이 남달라요. 그동안처럼 섬뜩하진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랄까요.


그런데요, 아버지.


아버지 뵙기 전에 제가 꼭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어요. 우리 종가 마지막 장손, 아빠 없이 혼자 살 길 찾는 거예요.


처음 확진 때 쉬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서 교수한테 치료 안 받겠다 큰소리쳤다가, 뒤늦게 현실을 깨닫고는 교수님 하라는 대로 다 하겠다며 치료받겠다고 말을 뒤집은 이유죠. 아들 살 곳 찾을 때까지만 살려달라면서요.


전 맘대로 죽지도 못해요, 아버지.


한때 저를 그렇게 '어화둥둥' 해주던 세상이 참 잔인하죠?


정확하게 2026년 1월 8일 버전으로 말씀드리면요.


어찌어찌 '골고다 언덕' 정상까지는 올라왔는데, 다시 처음으로 떨어져 내릴지 앞으로 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에요. 오늘 오후에도 힘들다는 연락을 받았거든요.


2026년 1월 7일, 오랜만에 다시 찾은 아산병원 흡연구역. 뒤로 보이는 장례식장.


아들아, 아빠를 잊으렴


엄니가 생전에 늘 하시던 말이 있어요.


"우리 아들 인물 좋아. 하지만 제 아비에 비하면 발끝에도 못 따라가지."


아버지, 제 눈에 제 아들은 어떻게 보일까요?


우리 종가 장손들은 '미남박명(美男薄命)'이 맞아요. 그런데 그중 으뜸이 바로 아버지 손자예요. 심지어 그놈은 술, 담배가 뭔지도 몰라서, 뽀얀 피부까지 말 그대로 '수려한 공자(公子)'라니까요. 일 년에 한 달씩 나이를 먹는 피터 팬이라 무한장수도 확정이고요.


해가 바뀌었으니 이제 27살의 장성한 청년이 된 이쁘고 의젓한 놈. 유일한 흠이 있었다면 고등학생 때 절정을 이뤘던 몸무게인데 제가 그 어려운 걸 해냈답니다.


수려한 외모가 묻히는 게 문제가 아니었고요. 아동청소년 당뇨로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단 말에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일 년 만에 160kg에서 성인 한 명을 삭제한 90kg를 만들었다니까요. 지금까지 6년 넘도록 90kg 초중반을 유지하고 있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다시 하라고 해도 못 할듯해요. 덕분에 제 온몸에 영광의 상처들이 많이 남긴 했죠. 특히 양쪽 팔이 좀 심해요. 사람들이 처음엔 표독한 악처에게 매일 뜯기고 사나보다 하더니, 더 심각한 건 나중에 병원을 잘 못 갔어요.


주사를 놓으려, 혹은 채혈을 하러 팔을 걷다가 제 팔에 새겨진 무수한 상처를 보며 뭔 '마약쟁이' 의심을 하더라니까요. 더위 잘 타고 땀 많은 제가 여름에 긴팔을 입고 다닐 정도예요.


지금도 아산병원에 가면 우선 하는 일이 피뽑기인데 그때마다 설명하죠. "아, 이건요. 아들놈이 워낙 극성맞아서요. 네? 지난번에 들어서 잘 알고 있다고요? 하하."


무려 몸무게 160kg을 찍던 아들. 고등학교 졸업 무렵의 곰뚱이.


고등학교 졸업 후 일 년 만에 다시 찾은 수려한 공자의 자태. 2026년 현재까지 몸무게 95kg 유지 중.


아버지, 우주를 팔아먹은 놈답게 아들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끔찍한 상상을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독하게 버텨내고 있답니다.


제 마지막 소원은요.


아들이 집도 잊고, 저도 잊고 새로운 곳에서 혼자 잘 사는 것. 그저 그거 하나뿐이에요. 우리 종가 마지막 장손은 지켜내야 하지 않겠어요?


이것만 해내고 제가 아버지께 의기양양 걸어가는 날. 아버지, '욕봤다, 아들아.' 하며 반겨주실 거죠?


아버지,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