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아이 그리고 고독사

「그의 나홀로 하루」 열한 번째

by 꼭두

길 잃은 아이 그리고 고독사

「그의 나홀로 하루」 열한 번째


고독사하기 딱 좋은 사람


그에게 물었어.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이제는 쫓기듯 아들 살 곳만을 찾아 헤매는 그에게.


"너, 지금 불안하지?"


아니. 무서워.


"센 척하더니... 뭐가 제일 무서운데?"


처음엔 아들이 끝내 제 살길 못 찾는 거, 그거뿐인 줄 알았어. 아들 혼자 두고 내가 어찌 편히 갈 수 있겠냐고? 원귀(冤鬼)가 될지도 몰라.


그런데 그거 하나가 아니더라.


"고독사?"


어떻게 알았어?


"지난 마지막 퇴원 때 교수한테 그 말을 처음 듣더니, 순간 핏기가 가시는 네 얼굴이 말해주더라. 더는 의연한 척 못 하겠던?"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는 단어였어.


그때 교수가 했던 말 정확히 기억하냐? 세상 시크한 그 의사가 왜 그랬을까? 게다가, 원래 의사는 환자의 개인사에는 절대 개입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던데.


"적극적인 치료 못 하게 됐다며 미안해하는 게 시작이었지. 그 표정도 뜻밖이었는데, 병실을 나서려는 네게 결국 덧붙이더라. 당장 내일 간성혼수가 찾아와 몸도 의식도 통제 불능이 되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라고. 정리할 거 있으면 서두르라고."


비상연락망도 등록하라던데, 그동안과는 분위기가 정말 다르더구먼. 그걸 해줄 만한 사람이 없다 그러자, 끝내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더군.


"작심한 듯 말하던데? '지금 환자분처럼 생활하는 사람이 고독사에 딱 좋은 경우죠. 대책을 찾아두세요.' 다시 원래의 건조한 표정으로."



고흐와 천상병


다 알고 있다는 듯, 다 준비했다는 듯 굴면서 아무 질문도 안 했지만, 집에 오자마자 찾아봤어. 고독사의 정의. 고독사의 사례.


"그저 나홀로 죽는 건 줄 알았지?"


그랬지.


고흐와 천상병의 공통점 알아?


"말년이 불행했던 사람들. 지독한 고독과 가난. 그로 인해 망가진 정신과 찾아온 병마.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것까지 놀랍도록 똑같지. 게다가 천상병도 간경변이었을 걸?"


젊어서부터 술을 엄청나게 즐겼대. 하지만 천상병은 '동백림 사건'이라고, 간첩단 조작 공작의 희생양이 되며 강제로 그리 된 거라 고흐와는 다르긴 해. 결과적으로 말년의 모습이 같아졌을 뿐.


아무튼 그 위대한 예술가들도 그토록 외로움에 떨다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는데, 나 정도야 뭐 얼마든지 감당한다 싶었어.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지?"


'사후에 일정 기간, 때로 상당 기간 방치되는 죽음' 그게 고독사래. 대뜸 이건 아니다 싶었어. 그건 너무하잖아. 아무리 우주를 팔아먹었어도 그렇지. 난 그것까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고흐도 천상병도 고독사까지는 아니었다니까.



"야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는 거 힘든 세상이야. 요즘 가족하고 같이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병원인 세상, 몰라?"


우리 엄니.


"그래서 그것만큼은 효도했다고 당신이 자부하는 거 아냐? 늘 살던 집에서 편히 눈 감으셨고, 어머니 가시는 거, 보내드리는 거 아들이 다 지켜보며 해드렸잖아.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일이지. 장한 일 한 거야."


근데 난 왜?


"무연고시신 될 것도 아니면서 호들갑 좀 떨지 마. 그나마 유일하게 연락되는 딸이 너무 멀리 있는 게 좀 안타깝긴 하네."


단 하루라도 방치는 끔찍해. 너도 이젠 무섭지?


"너를 원귀로 만들면 안 되니까. 내 소명에 어긋나는 일이거든."


마지막 욕심


쓸데없이 생각만 집요하다 타박 말고 너도 한번 상상을 해봐. 석양 무렵, 내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폼나게 저 의자에서 눈을 감았다고 쳐. 도대체 누가 딸한테 소식을 전하냐고?


"딸이 연락 자주 안 해?"


안 해. 연락 끊긴 지 오래야.


언제? 처음 응급 입원하고 온 후부터 그렇게 됐어. 이유? 처음엔 '긴 병 끝에 없어진 효자'도 아니고, 간병 한 번에 사라진 딸이라고 푸념했는데, 아직도 그 이유는 모르겠어. 몇 달을 생각해 봐도 정말 모르겠어.


그 아이의 세계와 내 세계가 뭔가 크게 다른가 봐. 세대 차이의 극한을 맛보는 느낌이랄까?


"이웃이나 친지. 혹 친구는?"


나, 20년 넘게 세상과 담쌓고 산 거 알지? 여기가 나홀로 독거노인의 귀곡산장인 것도 안 잊었지? 이웃 같은 건 없어.


좁은 시장통이라 소문은 빠른데, 저 집 곧 줄초상 날 거라는 말만 무성하다더군. 지상파 TV에 장기 출연하는 연예인 엄니 둔 덕에 우리 집, 이 시장통에서 소문난 곳이었거든. 뒤늦게 반갑지 않은 유명세 치르는 중이야.


친지는 무슨... 딸이 연락을 끊는 마당에 친지라고 온전하겠냐?


'소리 없이 간다.' 마음먹은 이후 처음으로 친구 생각을 했지. 살아서 구차함 안 보여주려는 욕심보다, 죽어서 끔찍할 모습이 더 싫었나 봐.


"이럴 땐 친구지. 있긴 하고?"


있어. 유이하게 생사는 확인하던 대학 친구 두 명 중 한 명.


그 친구를 만나서 대뜸 밥을 사는 거야.


일단 밥 잘 먹고 나서 대충 사연을 말하곤 청탁하는 거지. '가끔 연락 좀 해라. 24시간 내에 응답 없으면 119 부르고 딸한테 연락 좀 해 줄래?' 하는 거야. 그럴듯하지 않냐?


"둘만 보는 게 아니었나 봐? 지난번 보니 '생전장례식'이라며 제법 떠들썩하던데?"


둘이 약속까지는 잡았는데 그게 잘 안됐어. 그러다가, 어쩌다 그 친구가 다른 경로로 알게 됐는데, 그 친구가 대학 친구 몇에게 연락해서 모인 자리야.


원래 하려던 그 부탁은 그날 그 친구 한 명한테만 말했어. 친구는 한술 더 뜨더군. 119에도 내가 다니는 병원을 등록해 두래. 그게 되나 봐.


"그럼 됐네, 뭐. 원귀는 안 되겠군."


유일한 탈출구


이 나라가 젊은 자폐아에겐 이 모양이지만, 우리나라 복지국가 맞아. 힘없고 병약한 노인들에게는 더욱.


주민센터 가봐. 민원실 절반만 행정 담당이고, 나머지 절반은 복지 담당이야. 복지 창구는 번호표도 안 뽑아.


"한정된 예산과 인력이잖아. 행정 효율로도 홍보 효과로도 그편이 훨 나으니 그런 선택을 하는 거겠지. 네가 이해해야 할 수밖에."


내가 처음 입원을 하고 오니까, 주민센터에서 무려 세 명이나 날 보겠다고 집으로 찾아오더라.


오자마자 전담간호사가 혈압, 혈당부터 재면서 꼬치꼬치 내 몸을 체크하더라고. 이어서 공무원들이 노인 대상 '긴급돌봄서비스'를 즉시 시작하겠다며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래.


별로 없다 그랬더니, '돌봄도시락 배달', '병원 동행', '가사 지원' 다 된대.


근데 그때가 말야.


내가 한참 아들 거주 시설 찾아 헤매고 문전박대만 당하면서, 세상과 사람에 대한 원망이 차곡차곡 쌓여가던 때거든. 한마디로 눈에 뵈는 것도 없고, 속에서는 독만 오르고 있었달까?


"전 다 필요 없고요. 저 보살필 힘으로 제 아들을 살려 주세요. 노인 '긴급돌봄서비스'요? 제 자폐아들 '초긴급거주시설찾기서비스'가 저를 돌봐주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숨도 안 쉬고 말했어.


"직원들 벙쪘겠군. 예상 못 한 요구에 황당했으려나?"


"어떻게요? 저 떠나고 나면 아들 살 수 있는 곳 좀 찾아주세요. 전국에 천 개 이상 있다면서요? 말 그대로, 죽어서도 그 은혜 안 잊을게요. 그것도 수개월 내에. 백골난망, 결초보은 꼭 하겠다니까요."


예상 못 한 요구였던만큼 준비 안 된 답변이었겠지만 차분하게 답하더라.


"잘 알겠습니다. 장애인 담당과 협의할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애꿎은 공무원한테 하소연 겸 한풀이 한 셈이야. 억울하게 공격당한 '명일주민센터' 직원들. 불쌍한 복지국가 공무원.


"두 가지 무서움은 이제 어떻게 된 거지?"


무서워. 지금도 계속 무서워.


내가 고독사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많이 나아졌어. 당초 내 생각과는 다르게 사연을 알게 된 사람들이 제법 생기다 보니 이전보단 덜 무서워. 주민센터에서도 나름 챙겨주기 시작했고.


하지만, 아들이 고아를 넘어 끝내 미아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날이 갈수록 덜해지긴커녕 더 심해진다.


"내가 찾아줄게. 내 친구, 원귀로는 안 만들 거야. 절대로."


그런데 그때 말야. 내 온몸을 때리는 딱 한 가지가 떠오르더라.


두 개의 공포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


그 유일한 탈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