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진 결심 그리고 반전

「그의 나홀로 하루」 열두 번째

by 꼭두

모진 결심 그리고 반전

「그의 나홀로 하루」 열두 번째


여명을 넘긴 힘


"두 가지 두려움을 한꺼번에 없애주는 유일한 탈출구라...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게 아니기만 바랄 뿐이야."


내 길동무 꼭두가 어디까지 헤아릴 수 있는지 난 정확히 몰라. 하지만, 내 상상과 실행의 이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건 확실하겠지.


"아예 원귀를 자처하는군."


내 친구가 지금의 상상을, 비슷하게라도 스치듯 던질 때마다 불안했어.


이 양반, 이미 심각한 마음을 품고 있어. 마음껏 상상하는 게 먼저고, 그 다음엔 아마 그로 인해 닥쳐올 여러 가지를 판단하겠지. 두 개를 동시에 하고 있을 지도 모르고.


"그게 과연 탈출구가 될 수 있을까?"


난 지금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어. 게다가 이제는 무서워지고 있어.


"그래. 끝내 아들 미아 될 거라는 두려움. 고독사로 방치될지 모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두 개가 겹쳤지. 그래도, 무섭다고 고백한 건 잘한 거야. 네가 센 척하는 거, 남 얘기하듯 무심한 척하는 게 난 더 무서워."


곧 11월이야. 확진일로부터 만 8개월이 돼. 의사가 말했던 여명 6개월을 넘겼어. 그 힘이 뭘까? '아들 살길 열릴 때까지'라는 마지막 숙제가 있어서야.


"그 의사도 말했어. 여명이란 거, 평균적 통계일 뿐이라고. '몇 개월' 따위의 숫자에 연연하지 마."


꼭두 말이 맞아. 그럴게.


하지만,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해야 할 때 그렇게 말하면 이해를 제일 빠르게 하더라고. 간편해.


가끔은, 그 의사가 실은 '돌팔이'란 게 드러나는 '블랙코미디'를 상상하기도 해. 근데 그런 건 모든 말기 환자의 행복한 망상 속에만 있다더군.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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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


"그래서, 어디까지 상상했어?"


급기야 정신병원 이야기까지 나오더라.


말이 나오니, 할 수 없이 나도 알아봤지. 대부분 '그것까지는 아니죠.'라고 하지만, 아이러니한 건 그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들 의견이 오히려 긍정적이더라. 의외였어.


그런데 사실 그것도 안 되는 거래. 정신병원은 법적으로 거주 시설이 아니라네. 평생을 정신병원에서 지내는 사람들. 그건 영화에서나 나온다는 거지.


그곳 의사가 말하길, 일반인의 흔한 상상처럼 끔찍한 건 아니래. 하지만 결정적인 게, 내 아들 같은 경우 '구속구(拘束具)' 사용은 피할 수 없을 거라네. 알지? 그 옷처럼 생겨서 팔다리 묶는 거.


"요즘은 그래서 '구속복(拘束服)'이라고 불러. 자해와 공격을 가능성부터 차단하려는 도구. 요양원에서 정도가 심한 노인들에게 사용하기도 해. 물론, 사용을 최대한 피하는 게 원칙이지만."


'해양천국'의 아빠도 결국 포기하는 거 봤지? 그곳의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떠는 아들의 손을 잡고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던 거.


인간의 위대한 존엄을 마지막까지 모른 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한 맺히는 일인데, 그렇게 구속복 입고 호흡을 유지하며 사는 게, 이미 뇌사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의미 없는 연명치료와 뭐가 달라.


난 내 존엄을 지켜야 하는 것 못지않게, 아들의 존엄을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어.


다 떠나서 그 명백한 불행보다는 아빠와 함께 떠나는 게, 아들을 더 위하는 길이라는 거, 그게 내 분명한 판단이야.


나, 최소한 이 나라 평균의 상식과 경험은 가졌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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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로 가린 범죄


"당연히 그다음도 상상했겠지?"


사람들은 그러겠지. 아빠라는 권한 속에 아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까지 준 적 없다고. 아마 맹비난할 거야.


살아 있을 땐 그토록 외면했던 그들이. 웹에서, SNS에서 이 건강한 사회로부터 단호한 격리가 필요하다고 서슴없이 말하던 그들이.


그런데 사실 맞는 말이야.


'안 그럴 방법을 알려주던가?' 혹은 '그럼 니들도 겪어보던가?' 하고 싶지만 그건 저주를 내리는 거니까 안 될 일이고, 그냥 아무 대꾸도 못 하면 되지, 뭐.


"동반자살이란 단어, 잘못 쓰이고 있는 건 알지?"


영어로는, 'Joint Suicide' 이게 '동반자살'이고, 'Murder Suicide' 이건 '살해 후 자살'이야. 대부분의 나라에서 용어부터 구분할 뿐 아니라, 자살한 사람에 대한 관심보다는 살해당한 피해자에 초점을 맞추지.


가해자의 생사와 관계없이 그를 심각한 범죄자로 판단해. 철저하게 조사하고 최대한 처벌하지. 죽더라도 민사책임이 남아. 무엇보다 다들 그게 당연하다 생각한다니까.


그런데 유독 이 나라에선 용어 구별도 없이 그냥 뭉뚱그려 동반자살이래. 언론조차.


관심도 자살한 사람의 사연에 집중해. '오죽했으면' 이러면서 온정이 가득해요. 법체계에서도 '공소권 없음'이라며 그대로 종결하면 모든 상황 끝. 가관이지.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아주 반복적으로 이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어. 유독 이 나라에서만.


"친구야. 설마, 중죄를 저지른 범죄자로 남고 싶은 건 아니겠지?"


나보고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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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자들


아무리 용써봐도 길이 없잖아.


더는 아들 살 곳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탈출구. 뿐만 아니라, 시간 맞춰 미리 119 불러놓으면 되니까, 더는 고독사 따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는 확실한 탈출구.


이 막다른 골목을 한꺼번에 벗어나는 길이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뿐인걸. 막다른 골목도 아냐. 난 지금 어차피 더는 끝이 없는 낭떠러지 절벽 위에 서 있어.


꼭두의 말, 다 인정하면 되는 거지? 차라리 가해자 할게.


사이비 종교나 정신이상자를 제외하면, 피해자 대부분이 한계 상황의 노부모나 중증 장애인인 게 현실이야.


친구만 범죄자가 되는 걸로 그치진 않아. 부모의 돌봄 없으면 기댈 곳이 없게 만든 현실도 공범이야.


누군가의 비명과 구조신호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사람들. 그걸 외면하고 방치했던 국가. '살 곳 찾아주세요. 시설 많다면서요.' 이미 가진 게 있으면서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부탁한 삶의 버팀목조차 돼주지 못한 국가.


이 모든 현실이 단순 직무 유기를 넘어서는 공범자라고. 종범도 아냐. 공동정범이야.


"단독범 아니니 너 혼자 외롭진 않겠다. 좋냐?"


내가 지금 장애인 생존권 투쟁을 하려는 게 아니잖아. 사실 하는 게 맞겠지. 근데 그러기엔 내게 남겨진 시간이 너무 없어.


다행스러운 건 또 외면하고 말걸?


언론이 얼마나 웃기는 줄 아냐? 그 동반자살이라는 거 그냥 금지어 처리만 해놓고 철저히 모른 척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회면 1단 기사 정도로는 나왔거든?


그때나 지금이나, 어쩔 수 없는 사건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어.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기사 찾기 힘들어. '방법이 엽기적이다.' 그러면 가끔 나오더라. 수요가 없으니, 공급이 없는 거야. 사람들이 보기 싫어하는 기사를 언론이 왜 쓰겠어?


서로 약속이나 한 듯 그냥 쓸어 덮고 모른척 한다고. 공동정범이 맞다면 가해자라는 비난도 적당히 하다 말겠지.


게다가 이 나라는 온정이 가득하다며? 잘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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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대신 꿩


"생존권 투쟁 하라고 안 할게. 친구가 지금 하고 싶다는 거 절대 안 된다 하지도 않을게. 이렇게 하자. 지금 친구가 한 말, 할 수 있는 사람 걸리면 볼 때마다 해. 마음껏 해. 그렇게 해서 분이 풀리면 좋은 일이야. 그거 하자."


또 애꿎은 공무원들한테 푸념이나 하라고? 야, 그 사람들이 뭔 죄야? 날 그저 불평불만 가득한 짝퉁 실존주의자 만들려고 작정했구나?


"그분들한텐 미안하지만, 그냥 하자. 그렇게 맺힌 거 풀고 전쟁굿 한번 제대로 하는 거야. 동반 거시기는 그다음에 해도 되니까 서두르지 말고."


얘가 점점. 넌 왜 이러는데?


"할 수 있는 거 다 해보고 그 다음에 어찌 되는지 또 보자고. 할 거지? 내 말대로 해 줄 거지?"


허허. 친구야, 자네는 갈 길 가시게.


"난 네 길동무 되려고 생겨난 사람이야. 사람이 아닌가? 암튼 난 이 길의 끝에서 당신을 극락왕생시켜야 하는 존재라, 널 원귀로 만들면 안 돼. 그럼 나도 소명 완수는커녕 공범이 되고 말 거든."


염병하네.


"우리 즐겁게 전투하고 후회 없이 전쟁하자. 어쩌면 긴 전쟁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때까지 친구 생명줄은 내가 잡아준다. 나 능력자야. 나 믿지?"


초능력자 같진 않고 혹 개그 능력자?


"대답해! 한다고!"


내가 귀가 좀 얇긴 하지. 울 엄니 닮아서.


"밑져봐야 본전이라 안 하던? 이대로 말면, 그냥 네 말대로 하고 말면 넌 범죄자도 못 돼. 그저 한만 남기는 패배자 되는겨."


하하하. 어이가 없군. 승전 확률은?


"어쭈. 웃어?"


왜? 한 대 칠 기세네?


"아냐. 잘하고 있어. 전투는 유쾌하게! 그래야 승전 확률도 높아지거든."


그려. 다 내려놓은 마당에 뭔들 못 하겠냐. 어차피 눈에 뵈는 것도 없는 판인디.


"얼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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