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속의 타임캡슐」 일곱 번째
'산동네'라는 제 기억의 첫 무대
제 어린 시절은 '산동네'로부터 시작됩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 기억이 그렇다는 겁니다.
아버지는 서울이라는 객지에서 타향살이 8년 만에, 산언덕의 땅을 사서 손수 집을 지으셨죠. 우리끼리는 그곳을 '산동네'라고 불렀어요. 여기서 '우리'는 그곳에 살던 사람들입니다. 끽해야 30여 가구쯤 되려나요.
「홍은동 산1번지」 바로가기
제 머릿속 '해마'에 기억이란 게 쌓이기 시작한 무대가 그 '산동네'인 거죠. 시기로는 1960년대 아주 끝자락.
우리나라에 '치맛바람'이라는 단어가 그 무렵에 생겨났어요. 아이들 교육이라면 그 어떤 것도 불사하는 어머니들을 일컫는 말. 치맛바람의 교양과목인 '촌지(寸志)'라는 말의 뜻도 그때 함께 탄생했고요.
서울에서 연년생 두 아이를 입학시키게 된 어머니는 저보다 한 살 위 누이에게 먼저 한글 공부를 시켰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요.
"서울 엄마들은 치맛바람이라는 걸 휘날리고 다닌다던데, 국민학교 입학 전에 한글은 떼고 가야 촌 엄마란 소리를 안 듣겠지?"
어머니의 의욕이 넘쳐서였을 겁니다. 누이는 잔뜩 주눅이 든 채, 더디게 한글을 깨치더군요. 국민학교 입학 때 돼서야 간신히 맞춰서.
오히려 그 풍경을 옆에서 눈동냥하던 제가 먼저 한글을 깨쳤답니다. 원래 그렇지 않나요? 한 발 떨어져 훈수 두는 사람의 눈에 바둑의 수가 더 잘 보이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고, 저 또한 '내가 한글을 전부 아는 게 맞나?' 하며 지내던 어느 날.
제 한글 실력의 수준을 평가해 줄 물건을 발견하게 됩니다. 검증에 그치지 않고 일취월장시켜 줄 신기한 책.
뜬금없는 동생, 어린 손님의 마실
산동네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저마다의 고향을 등진 채, 서울 객지에서 성공이란 걸 해보겠다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반 실향민'이었습니다.
묘하게 끈끈한 동료의식으로 묶인 공동체였는데, 뭔가 그런 느낌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모자(母子)의 집이 있었죠. 어머니 혼자 다 큰 아들과 둘이 살고 있는 집.
저는 그 형이 고등학생이어야 맞다고 생각했지만, 학교는 다니지 않고 공장에 다니며 모자의 생계를 꾸려나가는 그 집의 일꾼이었습니다.
당시 청춘을 불태우며 승부를 시작한 사람들이 살다 보니, 그 형 정도 나이의 자녀는 거의 없었어요. 제 눈에는 친구도 없이 혼자 쓸쓸히 다니는 모습이 뭔가 멋있어 보였다죠.
급기야는 "형? 형! 밥 먹었어?" 하며 따라붙기 시작한 제가 신기했는지, 언제부턴가 함께 제법 말을 나누는 사이가 됐죠.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남들 눈에 잘 뜨이지 않으며 둘만의 사이를 나누는 비밀스러운 객지 형제 느낌?
조금 외진 곳에 있는 형의 집. 어느 날 형을 따라 그곳에 놀러 갔다가 구석에 잔뜩 쌓여있는 만화책을 발견합니다. 저는 살면서 만화책이란 걸 처음 봤어요. 재밌더군요. 신세계였어요.
이후 틈만 나면 "안녕하세요. 집에 가는 중인데 다리가 너무 아파서요. 잠깐만 있다 가도 될까요?" 따위의 옹색한 핑계를 늘어놓으며 방에 들어서곤 했죠.
물론 애초의 목표였던 만화책을 찾아서 보는 게 그 집에서 제가 보내는 시간의 전부고요. 정작 핑계가 돼 줘야 할 형은 아직 퇴근도 전인데 말이죠.
그 아주머니도 마을에서 그다지 사람이 찾지 않는 집에 어린 객이 드나드는 걸 내켜 하는 것 같았어요. 해 지는 줄도 모르고 만화를 보다가, 어느새 끼니때가 되면 제 밥도 함께 차려주실 정도였으니까요.
어린놈이 변죽도 좋지.
'구연 만화'의 시작
어느 날, 집에 돌아온 형이 또 구석에서 혼자 만화책 보느라 빠져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말없이 한참 지켜봤던가 봅니다. 인사도 없이 정신 팔린 제게 먼저 말을 건네네요.
"그렇게 재밌냐?"
"어, 형 언제 왔어? 엄청 재밌다니깐."
"몇 달 있어야 입학한다는 애가... 글을 다 알긴 하고? 그림만 봐도 그리 재밌어?"
"형, 나 글 잘 읽어. 나도 잘 몰랐는데 만화책을 보면서 그걸 알게 됐어. 볼수록 한글 실력도 느는 것 같고."
진짜 그랬어요. 제가 어지간한 글을 다 읽을 수 있단 걸 만화책을 보며 알게 됐고, 처음 보는 표현이 나오면 집에 와서 누나가 배우는 책을 뒤져가며 그 뜻을 새기곤 했죠.
제 한글을 완성해 준 교과서는 만화책이었고, 지금도 제 글쓰기가 문어체보다는 구어체, 서술체보다는 대화체에 더 익숙한 이유라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니 정작 형이 만화책 보는 모습을 제가 거의 본 적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형이 만화책 보는 걸 내가 본 기억이 없네. 형은 밤에 혼자 봐?"
"밤엔 자야지. 내일 또 출근하려면. 난 일찍 퇴근하거나 주로 휴일에 밖에서 봐. 마침, 내일 일요일이네. 우리 나가서 같이 볼까?"
다소 이상했지만 약속을 했고, 다음 날 만나기로 한 장소에 만화책을 잔뜩 들고 나타난 형을 따라갔어요. 익숙한 곳이라는 듯, 동네 뒷산으로 올라가는 한적한 길옆 바위를 찾아 기대앉더라고요.
그러더니 한 권 건네주며 소리 내서 읽어보래요. 아예 눈을 감은 채. 더 이상해졌지만 시키는 대로 했죠. 곧 알게 됐어요. 실은 형이 글을 잘 모른다는 걸. 놀라운 일이죠.
형은 일터의 고단함과 혼자라는 외로움을 만화책으로 달래는 애독자였어요.
눈을 감은 채였던 건 하도 많이 봤기에 그림은 다 외우다시피 했지만, 그 내용이 늘 궁금할 뿐이었는데 안성맞춤의 어린 구연가(口演家)를 만나게 된 거죠.
많이 놀랐지만, 왠지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아 그냥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때도 그 이후에도.
누구한테 말을 해도 안 될 것 같아 그것 또한 알리지 않았고요. 어쩌면, 이 사연을 알려 하거나 발설하면 만화책 공급처가 사라질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뭐, 어차피 우리 둘은 비밀의 형제니까요.
영악한 놈.
제 기억 속 형은 '만화방'
구연 만화 세상은 계속됐어요.
형도 저도 아주 만족스러운 생활. 이제는 뭔가 값을 하면서 만화를 본다는 명분이 제게 생겼고, 형은 필요할 때만 눈을 뜨면 되는 재미있고 비밀스러운 둘만의 구연 만화 세상.
훗날 제 젊은 시절의 극작과 연기 이력도 이때 구연 만화에서 시작됐을 거라고 전 생각하곤 했다죠.
만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 정도였던 시절이에요.
가장 쉬운 건 일간신문 사회면 왼쪽 제일 위에 나오는 네 컷 시사만화. 젊은 시절부터 마지막까지 동아일보 애독자였던 아버지 덕에 전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 영감'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볼 수 있었어요. 하지만 하루에 고작 네 컷. 턱도 없죠.
그걸로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당시에는 '대본소(貸本所)'라고 부르던 만화방에 가서 돈 내고 봐야 합니다. 아직 입학도 안 한 어린 제게 만화방 가서 볼 돈이 있을 리가 없죠.
마지막으로 부잣집 만화의 세계는 학교에 입학한 후 알게 된 소년 월간지. '새소년'과 '어깨동무'가 양대 선두였고, 소년 소녀의 교양지로 가장했지만, 사실은 만화 월간지.
이어진 게 TV 속 만화영화죠. '황금박쥐'로부터 시작해서, '요괴인간', '마린보이', '우주소년 아톰'을 거쳐, '마징가Z', '로보트태권V'에서 절정을 이루던.
제 나이쯤 남자들에게 들을 수 있는 '군대에서 축구차는 이야기'보다는 덜 끔찍하고, 때로 재밌기도 한 '추억 속 만화 이야기'를 계속하면 끝이 없을 테니 두 가지만 덧붙이면요.
당시에는 유명 만화가에겐 요즘의 작가라는 호칭보다는 '화백'이라는 이름표를 주었다는 것. 또 하나, 소년이 보는 만화는 '명랑만화', 소녀가 보는 건 '순정만화'라는 지금도 이해하기 힘든 구분법.
문과 이과도 아니고 명랑과 순정이라니, 뭔 말도 안 되는.
떠나버린 '방문객', 막 내린 만화 세상
우리 집은 부잣집도 아니었고, TV도 없었기에 어린 제게 만화방은 형이었어요. 형이 하는 최대한의 사치는 외로울 때면 습관처럼 만화방에서 책을 빌려 쌓아두는 것이니까요.
처음엔 형이 쌓아놓은 것들만 볼 수밖에 없었는데, 나중에는 제가 만화가를 콕 집어서 부탁하기도 했어요. 결국 형과 저의 만화 취향이 비슷해지더군요.
신동우, 길창덕 화백도 유명했지만, 우리 둘에게 최고였던 건 단연 고우영 화백입니다. '임꺽정', '수호지'도 소설책 이전에 고우영의 만화책으로 먼저 볼 수 있었죠. 훗날 '일지매', '삼국지', '초한지', '열국지'가 모두 그러했듯.
제가 이름을 말한 네 화백 모두 지금은 작고하신 분들이네요.
만화방을 풍미한 마지막 화백이라고 말하고들 하는 허영만 화백의 등장 전에, 형과 제가 함께 했던 구연 만화 세상은 사라졌어요.
시인 정현종은 '방문객'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쓸쓸함이 멋있었던 그 형은 어린 제게 혼자 불쑥 찾아와 만화 세상을 열어주었고, 그리고 떠나갔어요. 형과 함께 온 구연 만화 세상도 그 형이 떠나면서 막을 내렸고요.
어린 제 삶의 방문객이었던 형. 그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