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세계문학전집

「품 속의 타임캡슐」 여덟 번째

by 꼭두

어머니의 세계문학전집

「품 속의 타임캡슐」 여덟 번째


번데기를 시작으로


1969년, 서울 홍은동에 있는 홍제국민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종례를 마치고 교문을 나서면, 진풍경(珍風景)이 어린 저를 기다리고 있죠.


먹거리 풍성한 지금이나, 먹거리도 물자(物資)도 귀했던 그 시절이나, 어린 학생들을 고객으로 모시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똑같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합니다.


번데기, 호떡, 다슬기. 이렇게가 군것질 삼 대장이었어요. 요즘으로 치면 떡튀순 분식 삼 형제쯤 되겠네요.


그때는 아직 분식이란 것도, 어묵도, 만두도 없었고, 대신 특이하게 멍게, 해삼류의 해산물이 함께 인기를 끌었어요. 뭔 포장마차도 아니고. 게다가 어린이를 상대로.


거리의 조리기술이 마땅치 않던 시절에 초장만 있으면 차림이 완성되니 그랬을까요?


3학년 무렵이 되자 풀빵과 뻥튀기가 등장하더군요.


특히 뻥튀기는 시골 장터에서 본, 옆으로 누운 펌프 같은 기계가 아니라, 손으로 눌러서 동그랗게 찍어내더라고요. "뻥이요~"가 아니라, "삥~ 삥~" 소리를 내며. 신들린 듯 척척 만드는 손놀림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시절이죠.


풀빵은 붕어빵의 선배. 동그란 뻥과자는 센베이 거리 버전.



병아리를 거쳐


먹거리 좌판을 지나고 나면 병아리를 팔아요.


라면상자 따위의 종이상자 속, 갓 태어난 샛노란 병아리들이 꼬물꼬물 모여 삐악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이쁜지 모릅니다. 요즘 펫샵 쇼윈도 안에 있는 어린 강아지들을 넋 놓고 쳐다보는 어린이 모습과 같을 겁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집에 가서 강아지 사달라고 조른다지만, 당시 병아리는 그냥 사서 손바닥에 모시고 오면 됩니다. 값도 얼마 안 했거든요. 그저 달걀 하나 사는 정도?


제 나이 또래라면, 그 시절 교문 앞이나 문방구에서 병아리 한 마리 안 사본 사람 드물걸요?


집에 오면 엄마가 질겁을 하죠. 그러거나 말거나 키우겠다 고집부리지만, 대부분 곧 눈을 감으시고 아이는 통곡을 합니다.


저는 숱한 시도 끝에 어지간한 장닭이 될 때까지 키워낸 적이 딱 한 번 있었어요.


어느 날 집에 가니 부엌에서 삼계탕이 끓고 있더라고요. 제 병아리는 온데간데없고요.


저는 그날부터 청년이 될 때까지 삼계탕을 먹지 않았습니다.



계몽사 세계문학전집이 눈앞에


제법 품을 들이는 세일즈맨이 있었습니다.


이것 또한 요즘으로 치면 구몬 시리즈나 대교 눈높이 정도의 학습지 세일즈쯤 될 텐데, 이 사람들이 말을 건네는 대상은 어디까지나 학부모죠.


당시에, 최종 소비자인 어린이를 직접 공략하는 세일즈맨을 제가 만났어요.


무려 계몽사의 50권 세계문학전집.


우리나라 모든 소년 소녀에게 꿈이었던 책. 우리나라 전래동화부터 전 세계의 동화까지. 그리스 신화를 시작으로 말로만 듣던 셰익스피어, 로빈 훗, 피터 팬, 서유기에 이르는 전 세계 명작 컬렉션.


주황색의 두툼한 표지가 매력적이었던, 고급스러운 양장본의 '그 책'을 제게 보여주는데, 정신을 못 차리는 정도를 넘어 눈앞이 아득해지더라고요.


"읽고 싶으냐? 집이 어디니? 나와 함께 가자."


"집이 좀 가파른 산언덕인데... 가면 어쩌시려고요?"


"괜찮다. 안 그래도 좀 걷고 싶던 참이야. 어쩌긴? 이 책을 네 걸로 만들어 줄게. 아저씨만 믿으렴."


병아리 한 마리로도 질겁을 하는 엄마는 잊었어요. 홀린 듯 앞장섰죠.


아저씨 숨이 가빠올 무렵, 제가 낯선 아저씨와 함께 보란 듯 집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아예 숨을 멈추시더군요. 시저가 마지막으로 배신자에게 남겼다는 한탄을 낮게 토해내시더라고요.


"아들... 너마저?"

산동네 엄니가 세계문학전집을?


은퇴했거나 벌이가 마땅치 않은 친구들로부터 습관처럼 책을 사들이는 아빠 때문에 늘 머리가 아프다 하시던 어머니입니다.


요즘 같으면 다단계의 옥돌 장판이나 보험 가입이겠지만, 당시에는 그들의 주력 상품이 압도적으로 책이었어요. 그것도 꼭 전집.


아무리 엄니가 질색을 해도, 당시 '차단스'라고 부르던 우리 집 거실의 대형 유리 장식장에는, '조선총독부', '한국전쟁', '제2차 세계대전' 따위의 전집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죠. 누구든 그걸 읽는 걸 본 적은 없어요. 말 그대로 장식용.


훗날 대학생이 된 제가 그 자리를 '사상계', '창작과 비평'으로 이어서 채워나가자, "씨도둑은 못한다더니..." 하며 혀를 차던 어머니.


그런데 그보다 훨씬 이전, 제가 세계문학전집을 끌고 나타난 거예요. 그것도 무려 50권짜리.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한 세일즈맨입니다. 두꺼운 책 무려 50권을 양손에 들고, 그 산마루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어린 고객을 앞세워 들이닥치는 그 용감하다 못해 무모한 영업력.


뜻밖의 사태가 벌어졌어요.


뒤늦게 현실을 깨우친 저는 어쩔 줄 모르고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영업사원의 이야기는 두 귀로 흘리면서 꼼꼼하게 책장을 넘기던 어머니가 던진 한마디.


"하이고, 어쩌겠어요. 두고 가세요."


엄니는 그때 당대의 치맛바람에 함께 휩쓸리지 못하는 신세를 한탄하곤 하셨는데, 그 탓이었거나, 아님 곗날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마침, 그날 엄니 수중에 들어온 곗돈을 쾌척하신 게 아닐까... 아마 틀림없을 겁니다.


세일즈맨에겐 대박의 현실이지만, 제게는 그저 꿈 같은 순간이었죠.



집념의 산동네 판매왕


그 세일즈맨은 우리집 단골이 됐습니다. 손님이 아니라 판매원 신분의.


책을 두고 간 다음 날은 책장과 함께 다시 나타났고, 그다음 날에는 30권짜리 세계위인전집을 양손에 든 채.


책장을 특별히 사 온 건 줄 알았는데, 원래 세계문학전집을 사면 함께 주는 필수 옵션이었더라고요. 하지만 세계위인전집은 다르죠.


전 이상하게 위인전을 아주 재밌어하는 아이였어요.


범생이 흉내를 일찍부터 시작한 건 아니고요.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그 느낌이 어려서부터 정말 좋았거든요. 커서 돌이켜보니 애시당초 '관음증' 환자 아니었나 싶어요. 남의 삶 엿보는 걸 즐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남들은 받자마자 버린다는 정치인의 자서전이나 회고록 따위. 선거철이 다가오면 으레 찍어내고 북콘서트 용으로 소모되는 책.


전 봅니다. 그것도 아주 흥미롭게.


뭐, 내용은 한결같아요.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삶의 역경을 딛고 훌륭한 어른이 되어 널리 홍익인간을 실천하는 자뻑 가득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죠. 솔직히.


2000년이 지나며 박정희 패러디에 열중하던 이인제 회고록에서 '흙을 먹고 자란 어린이' 이야기를 읽으며 너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재밌어서. 박근혜 대통령의 어록, '고추로 맨든 가루, 이건 굉장히 귀하네요.'를 일찌감치 뛰어넘은 거 같아요.


무명 정치신인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듯 풀어내는 정치입문 이야기를 읽을 때면, 그 작가의 그럴듯한 구성과 전개에 감탄도 하고요.


그래도 차마 '전두환 회고록'은 못 읽겠더군요. 라면 받침으로도 못 쓰죠.



산동네 엄니가 세계위인전집까지?


그런 제 앞에 을지문덕, 계백, 왕건, 세종대왕, 이순신을 시작으로 에디슨, 아인슈타인, 마틴 루터 킹, 퀴리 부인, 마더 테레사, 헬렌 켈러를 들이대는데, 미치는 거죠.


그 전집 속 어지간한 사람들 이야기가 훗날 다 영화나 대하드라마로 만들어졌단 걸 생각하면, 제 취향이 꼭 관음증만은 아니지 않나요?



하지만 언감생심 제 입으로 말은 못 꺼내고, 그 세일즈맨이 더 파이팅 하기를 마음 속으로 얼마나 응원했는지 모릅니다.


역시 대단한 아저씨예요. 무려 30권짜리 세계위인전집을 들고 다니며 땀 흘리기를 한 달쯤 했으려나? 마침내 이번에도 해내더군요. "이걸 읽으면 이 사람들처럼 된다."는 아저씨의 멘트가 먹혔던 걸까요?


아무튼 그건 제 책임 아니고요. 그 순간 아저씨와 저는 어머니 몰래 눈을 맞추며 '대한국민 만세!'를 외쳤답니다. 세계챔피언 홍수환이 된 기분이었죠.


"엄마, 나 또 전집 먹었어!"


엄니. 비록 제가 그 위인전집 속 누군가가 되지는 못했지만요.


오로지 엄니 덕분에, 제가 인문학적 소양을 그나마라도 지닌 청년으로 자랄 수 있었다, 생각해 주세요.


날것이다 못해 때로 거칠고 투박한 60, 70년대 만화책을 교과서 삼아 한글을 깨친 아들놈. 그 사정을 헤아려 최소한의 말버릇과 상상력이라도 갖추라고, 거액의 곗돈을 흔쾌히 투자하신 어머니.


산동네 어린 고객에게 전집 두 세트를 판매한 세일즈왕도 대단한 양반이지만요. 그 모든 게 다 엄니의 덕이고 결단의 힘이라는 거 지금도 잘 알고 있어요. '어머니의 노래'를 백만 번 열창하고 공덕비 세울 일이죠.


고마워유, 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