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연습

생이별의 꿈

by 꼭두

이별 연습

생이별의 꿈


2017년, 이별 고민의 시작


"아버님. 제원이, 주간보호센터 보냅시다."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날. 새 담임선생님이 제게 한 말입니다.


해가 바뀌고 새봄이 오면, 한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학교에서는 학부모와의 1:1 면담을 합니다. 새 담임선생님과 부모가 첫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생각을 말하는 자리죠.


그날 담임께서는 유독 저에 대한 질문을 꽤 하셨어요. 전교생 중 유일하게 아빠 혼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저에 대해 걱정되는 게 많았나 봅니다.


원래, 한 자폐아를 오랜 기간 전담하는 소아청소년 정신과 의사의 경우에도, 아이는 물론이지만, 부모의 정서 케어까지 빠트리지 않습니다. 부모가 지치면 안 되니까요.


그럴 때마다 "저는 괜찮아요. 제 아들만 잘 관리해 주세요." 하고 있었지만, 누군가 제 고생을 알아봐 주고 함께 걱정해 준다는 느낌에 많이 위로받곤 했죠.


그날도 그랬나봐요.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말에 뜬금 없이 오래전에 본 영화 '해양천국' 이야기를 했네요. "해양천국 보셨어요?" 물으니 보셨답니다.


"전 영화 다 끝난 줄 알았다가, 기습적으로 이어지던 마지막 에필로그 1분을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순식간에 그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다시 고스란히 떠오르더군요.


"비록 전 이연걸의 그 상황, 그 심정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느 날 내 아들도 저렇게 혼자가 되겠지' 하는 생각에, 그리고 혼자 된 그 아이가 아빠가 죽기 전날까지 가르쳐 준 대로 멀쩡하게 생활하는 모습이... 얼마나 쓸쓸맞고 가여웠나 몰라요. 혹시... 선생님도 느끼셨나요?"


그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또 눈물이 나오려 해서 고개를 떨구고 한참 동안 진정을 한 후 다시 얼굴을 들었는데, 어? 선생님도 눈이 빨개요.


'이러려고... 아니, 이게 아닌데...' 싶죠. 한참이나 말없이 저만 쳐다보던 담임이 결심한 듯 저렇게 말하더라고요.


자폐를 포함해서 장애인 지원정책이 참 많아요.


대부분 김대중 정부에서 초안이 만들어졌고, 노무현 정부 때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것들입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법령도 바뀌고 명칭도 조금씩 달라지는데, 제 아들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시작된 '장애인 활동지원'이 해마다 지원범위를 늘려가고 있있죠.


그때와 지금의 내용을 말씀드리면 좀 길어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꼼꼼하게 살펴보시고 원하는 지원에 따라 정확한 항목과 시설을 잘 고르시길요. 수시로 장애인 지원정책을 챙기는 것도 장애인 부모의 중요한 공부고 일과입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거든요.


선생님이 제안한 건 지금의 명칭으로는 '단기보호시설' 입소인데, 주중에는 시설에서 자면서 학교에 다니고 금요일이 되면 귀가하는 겁니다. 주중의 학교 등하교를 시설에서 해주면 저는 월요일 등교를 맡고요.


"아버님도 아버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아직 젊으신데 바깥 생활도 하고 결혼도 하셔야죠."



햄릿에게는 버거운 숙제


울다가 웃으면 안 될 텐데... 저는 생각 못 한 황송한 제안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담임은 웃음기 전혀 없는 얼굴뿐 아니라 세상 진지해요.


"그런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무엇보다 아이가 그걸 감당할 수 있겠어요?"


어차피 '평생 품안의 자식'이라 각오하고 살던 저였죠. 현실성 없는 일이라 생각됐기에 얼떨떨한 표정만 짓고 있으니 세상 진지한 담임, 또 설득을 합니다.


"비장애인이어도 어차피 크면 독립해야 합니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험해요. 제원이를 위해서도 그게 나은 선택이 될 거예요."


그 진지한 표정에 더는 바보 같은 모습만 보일 수는 없더군요.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날로부터 무려 한 달을 넘기면서도 선택하지 못했던, 제 엄청난 고민의 날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무럭무럭 커지다 못해 몸무게 160kg을 찍던 아들. 솔직히 힘에 많이 부치긴 했어요. 하지만 20년 가까이 저와 한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자던 아들입니다. 저는 단 하루도 아이와의 잠자리를 떠나본 적이 없어요.


덕분에 딱 하룻밤만이라도 나홀로 여행, 혼자만의 잠자리가 제 로망이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린 지 오래였죠.


선생님의 제안은 달콤한 유혹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 아들이 그 변화를 감당해 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요. 하지만 언젠가는 닥칠 일이고 어차피 해내야 할 선택이라는 선생님의 말씀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요.


저는 저를 늘 돈키호테 인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들 문제에 맞닥뜨리기만 하면 우유부단한 햄릿이 되고 마는 여리고 나약한 아빠가 맞더군요.


선생님과의 면담 바로 다음 날, 또 다른 전문가한테서 연락이 오더군요. 선생님의 부탁을 받아 저를 설득하고 채근하는 역할을 아주 잘하네요.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아빠가 답답했는지 답사를 가보라며 몇 곳의 연락처를 주더라고요.


보내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며 두 곳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요. 원래 시설에서는 새 식구 맞는 일은 늘 조심스러워 합니다. "한번 보내보시죠." 이 정도면 아주 호의적인 거고요. 대부분은 "힘든 일입니다."로 시작하죠. 책임이 크기에 그러겠죠.


저는 가장 안 좋은 경우부터 설명해야 하기에, 아들 몸이 160kg에 참 많이 먹는다고, 못 먹게 하면 저를 공격하기도 한다, 이실직고하면 아예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어요. "그렇다면... 고민해 보시죠." 이건 사실 못 받겠다는 말입니다.


원래 우리 부모들은 늘 주눅이 들어 있습니다. 제가 유독 심한 거 같긴 해요. 처한 형편에 맞지 않게 쓸데없이 자존심은 센 아빠, 정말 쓸모없답니다. 한 곳을 또 방문했지만 마찬가지였고 저는 또 상처만 입은 채 퇴각했습니다.


잘생긴 우리 아들, 얼굴 한번 보면 마음이 바뀔 텐데 싶어요. 하하.


아, 선생님은 어쩌자고 제게 이리 힘든 숙제를 주셨을까요?



"유레카!"


갑자기 1학년 때 만났던 3학년 엄마가 떠올랐어요.


처음 만난 갓 1학년 학부모인 제가 아들 걱정에 아둥거리는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는 마음 비웠어요."


"네?"


"이제 제가 편해야죠. 그래야 제 아들도 편할 테고요. 학교에서는 그저 재밌게 지내기만 하면 되죠, 뭐."


저는 귀를 의심할 정도였어요. 애가 커져도 나아지는 게 없으면 저렇게 마음이 바뀌는 건가 싶으면서, 그 엄마가 참 차갑게 느껴졌답니다. 그 엄마가 제게 말하려던 뜻은 팽개치고요. 속으로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했다니까요.


제가 『아들의 날들』 2화에서 말씀드렸던 1학년 첫 담임과의 면담, 그리고 아들을 키우면서 해야만 하는 수많은 선택의 기준에 대해서 기억하시나요?


그때 담임선생님도 그러셨어요. '아들을 강하게 교육하는 것보다 즐겁고 편하게 해달라'는 부모가 더 많다고요. 그때 저는 당황했죠.


이후 제 선택의 기준이 '아들은 좋아져야 한다'에서 '아들이 좋아해야 한다'로 점점 옮아가면서 선생님의 말씀이 이해되기 시작했는데, 그 엄마는 본인의 경험으로 제게 미리 확인시켜 주고 싶었던 거죠.


그 기억과 기준을 가져오자 비로소 결정의 길이 열리더군요.


'그래, 이건 아니다. 보낸다면 그건 내가 편하자는 선택이다. 아들의 마음으로 생각해 보라. 어디가 더 편하고 즐겁겠는가?'


그리고 이어서 떠오르는 '해양천국'의 한 장면.


어느 날 따푸가 사고를 치죠. 몹시 흥분했어요.


수족관을 테마파크삼아 공연을 하러 온 서커스단의 공을 빼앗고 돌려주지 않으며 공연을 방해합니다. 자폐 청년들은 힘이 세요. 누구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는데. 급히 달려온 이연걸이 아들이 손에 꼭 쥔 공을 빼앗아 돌려주고 달랩니다.


순간 아들이 순식간에 아빠의 어깨를 세게 물어요. 사람들이 놀라서 말리려 하는데, 처음엔 비명을 지르던 아빠가 아무도 옆에 오지 말라며 손을 가로젓습니다. 그저 순순히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고 아픔을 참기 한참 만에, 드디어 진정된 따푸가 물었던 입을 놓고 울음을 터트리네요.


영화 속 그 장면 또한 제가 충격받았던 모습입니다. 저도 막 당하기 시작한 일이거든요. 저 또한 아들이 저를 때리면 속절없이 맞아주던 시절입니다.


"아직 아들에겐 내가 필요하다. 나하고 지내는 걸 아들이 훨 더 좋아하는데 내가 왜 고민하고 있단 말인가?"


"'말아톤'의 김미숙이 말했던 모든 자폐아 부모의 소원. '초원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은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어지면 몰라도, 아들에게 여전히 내 어깨가 필요하고 내게 힘이 남아있는 한 마땅히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


저는 또 한 번 탕 속의 아르키메데스가 되어 소리쳤습니다.


"유레카!"


그리고 마침내 한 달을 넘긴 고민을 끝낼 수 있었답니다.


우유부단했던 햄릿이여, '안녕~'



이제는 생이별이 간절한 아빠


담임선생님은 제 결정을 무척 아쉬워하셨어요.


다시 한번 '평생 품안의 자식'을 다짐하는 저를 보며 속으론 그랬을지도 모르죠. '이 곰탱이 아빠. 천상 자식 바보.'


무려 12년을 한 학교에 다녔습니다. 한국육영학교.


대부분의 부모는 2년을 더 다녀서 14년을 채웁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전공과'라고 부르는 과정인데, 일종의 전문대학으로 비유해도 되겠네요. 사회에 보내기 전 직업 훈련에 집중하는 2년. 하지만 사실상 추가의 케어 기간으로 부모에게 활용되는 2년.


그러나 고3 때 육영 졸업을 앞두고 전공과 사전 전형 비슷하게 치러지는 '직업평가보고'라는 걸 받고 난 후 졸업생으로는 유일하게 전공과를 포기했죠. 그때의 보고서에 이렇게 적혀있더라고요.


'과체중 건강관리가 중요함. 언어소통 및 협조도 불가능해서 검사 자체가 불가능. 직업 수행은 준비되지 않았고 일상생활 수준. 최종 평가는 복지서비스.' 한마디로 제 아들은 직업 수행은 불가능하고 복지서비스로 생활하는 가정보호 대상이라는 거죠.


그 최종 평가가 결정적으로 작용하면서 저는 '아들이 좋아해야 한다'는 원칙을 또 따랐습니다. 의미없이 케어를 부탁하는 전공과에서의 생활 대신에, 그제서야 고2 담임선생님이 그토록 권했던 주간보호센터로 들어갔습니다.


고3 담임도 당시 많이 아쉬워했지만, 나중에 저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시더군요.


"힘든 결정이었을 텐데 잘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제원이 성향상 자유롭게 지내고 원하는 활동을 마음껏 한다면 얼굴에 웃음이 더 많아질 겁니다."


아들을 보내기로 한 주간보호센터는 2년 전 제가 방문했던 두 곳이 아니고, 육상, 빙상, 해양스포츠는 물론이고 일상적인 산책, 소풍, 등산까지 운동 중심의 외부 활동을 주간 내내 즐기는 곳이었거든요. 그대신 비용이 높아요. 하하.


졸업생 중 유일하게 전공과를 포기한 학생이 제 아들이라는 건, 제 아들의 자폐스펙트럼이 가장 안 좋은 쪽에 있다는 뜻입니다. 전 지금까지도 자폐아 중 제 아들처럼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부모를 힘들게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들과의 이별 연습은 이렇게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들 고2 때 상상했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저는 완벽하게 영화 '해양천국' 속 이연걸이 됐거든요.


아들과의 이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고, 오히려 아들과의 생이별이 간절한 아빠가 됐죠.


육영 12년 동안 제게 선명하게 남은 선생님은 두 분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에 이어 2학년까지 2년간 제 아들을 마치 엄마처럼 키워주셨던 담임선생님. 그리고 고2 때 저를 결혼시키려 했던 담임선생님. 너무 늦은 감사인사를 언제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별이 성공하는 날, 꼭 인사드릴게요.


"두 분 선생님, 제가 무사히 생이별할 수 있겠죠?"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