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기록 첫 번째
2025년 여름의 좌절
2025년 겨울을 앞두고, '이별 전쟁'은 시작됐지만 현실은 여전했어요.
그저 아빠 혼자 비장할 뿐, 세상 어느 곳에서도 아들을 반기지 않는 날들이었죠.
돌이켜보면, 2025년 4월 3일의 확진 판정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날로부터, 이제는 아들 살 곳 찾는 게 마지막 숙제가 됐지만, 예상보다 너무 높고 단단한 허들 앞에서 아득함만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유난히 볕 뜨거웠던 여름이 순식간에 지나가더군요.
8월 8일. 결국 사건이 터졌습니다. 올 것이 왔지만 할 일은 못 한 채 응급 입원 중이던 상황에서 정말 극적인 순간에 찾아온 소식.
제게는 마치 '모세의 지팡이'가 열어 보여 주는 가뭄 끝 단비였어요. 드라마죠.
8월 15일 새벽, 잠시 후 출발한다는 아이 엄마의 연락이었습니다. 멀리 강원도 영월에서 아들을 받아준다는 연락이 왔고, 지금 막 짐도 다 꾸렸다고 합니다.
'난 마지막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이렇게 26년을 함께 한 아들의 날들과 이별인가?' 허망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그건 사치일 뿐이죠.
그날 오후, 쓸쓸함을 안은 채 빈집으로 돌아온 지 불과 몇 시간 후. 이번에는 뒤바뀐 연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들이 그곳에서 잠드는 걸 거부해서 지금 다시 데리러 간다네요.
첫 이별 시도는 하루도 못 넘긴 채 좌절됐습니다.
그날의 기록이 앞으로 계속될 이별 전쟁에서 큰 결격 사유가 되리라는 것도, 이 순간의 기억이 모두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으리라는 것도 그때는 몰랐습니다.
'네탓이오' 트라우마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아들이 아빠 없이 혼자 살 수 있는 곳을 찾는 길.
기대여명은 수개월이라는 '최종진단서'와, 죽음의 과정에서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품에 안은 채.
훗날 아들을 계속 지켜봐 줄 사람은 생모일 수밖에 없기에 일찌감치 유일하게 사연을 밝힌 아들의 엄마에게 그 일을 부탁했고, 따라서 현장에서 거주 시설을 찾는 건 여전히 그녀의 몫이었죠.
하지만, 수개월 여명 내에 그 일이 가능하리라는 걸 포함해서 제 판단은 많이 틀렸습니다.
아들은 일곱 살부터 그때까지 엄마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저도 그 세월 동안 그녀를 본 건 두세 번 정도가 전부였으니까요.
난데없이 제 부탁을 받아든 그녀에게 힘든 일이 될 거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첫 번째 시도에서 좌절을 겪으며 그녀는 빠르게 지쳐갔습니다.
'이게 다 네탓이오'라며 모든 책임을 장애아 부모에게 넘기는 세상의 시선에 너무 쉽게 굴복했고, 좌절의 트라우마만 깊어졌어요.
험한 시선 속에서 20년 넘게 혼자 버텨온 저하고 같을 수는 없었던 거죠.
하지만 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때때로 대단한 아빠라는 말을 듣게 될 때, 제가 당혹스러워하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저는 저 아니면 제 아들을 지켜 줄 누군가가 없기에 해야만 했으니까요.
당연합니다. 아빠니까요.
국립특수교육원에서 운영하는 '온맘'이라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정보의 양도 많지만, 필요한 정보가 잘 정리돼 있죠. 자폐아를 포함해서 중증장애인 부모나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이웃이라면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아이 엄마의 일과는, 종일 온맘 화면을 들여다보며 전국의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을 찾아 전화하는 것으로 채워졌습니다.
면담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대기 명단으로 접수라도 해달라고 사정하는 일입니다.
막다른 골목
이 나라에 천 개가 넘는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이 있다는데, 제 아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곳이 없습니다.
간신히 면담을 받아 준 곳을 찾아가도, 그날의 트라우마가 깊게 남은 아들이 시설 입장부터 거부합니다.
억지로 면담을 시도하지만, 그날 그 시설의 입소 거절 이력을 이유로 이 시설 또한 대놓고 접수를 거절합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만 듣게 됩니다.
'자폐라는 말은 숨기고 찾아봐라.'
'젊은 자폐아는 힘들어서 못 받는다.'
'자해나 공격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불가능하다.'
비장애인도 때로 그런 순간이 있듯, 감정 조절이 서투르고 때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게 자폐입니다. 부모에게만 당연할 뿐, 누구도 그 어려움을 나누어 감당해 주려 하지 않습니다.
현실은 차갑다 못해 어이가 없습니다.
세상이 미워지고 원망이 쌓여갑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많은 나홀로 자폐아 부모가 상상하고 실제로 실행도 하는 끔찍한 상상을 합니다. 가장 편하고 가능한 방법을 찾아 아주 오래 공부도 했습니다.
끔찍한 공부답게 끔찍에 떨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어요.
"형, TV 나가실래요?"
"?"
"전국 방송요. 인간극장 같은."
"야, 말 되는 소리를 해라. 구차해지기 싫어서 누구에게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떠나려던 내가? 일 없다."
"형을 위해서 그런 일 하지 않으리란 건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요. 그런데 형은 할 일이 있잖아요?"
"!"
"형이, 형에게 혹시라도 남아있을지 모를 마지막까지 다 내려놓을 수 있다면 한번 해볼 수 있지 않겠어요?"
오오, 내게 아직 배 한 척이 남아있었다니... 아들 살길이 열린다는데 뭔들 못하랴 싶더군요.
"그거 할게! 해야겠다."
겨울 전쟁의 시작
동시에, 그쯤 되자, 정말 눈에 뵈는 게 없더라고요.
아직 내게 남아있는 것들과 주변을 정리하면서 전투식량도 쌓았습니다.
계속 호소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을 못 찾고 있었는데, 날로 지쳐가더니 급기야 짜증까지 내기 시작하는 아이 엄마에게도 말했습니다.
"못 하겠으면 빠져. 이제부터 내가 알아서 할게."
유일하게 남은 배 한 척을 띄우게 되더라도, 그 전에 마지막으로 전쟁 한번 제대로 치러보자 싶더군요.
아이 엄마의 일과가 변했습니다. 이제 온맘을 보지 않습니다. 매일 직접 밖으로 돌아다닙니다. 전화로는 거절밖에 들을 게 없으니 무작정 찾아가서 눈을 보며 애원하는 겁니다.
저와는 다르게, 이미 불가능을 예감한 그녀는 동시에 새로운 집을 알아보더군요. 아들 살 곳 찾기 전에 내가 떠나고 만다면 자신이 저 대신 아이 케어할 장소를 찾는답니다.
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만약 그럴 거면 여기 귀곡산장만 한 곳이 없다 하니, 잘 알지만 내가 죽어 나간 곳에서 아이를 볼 자신까지는 없답니다.
무척 추울 거라는 2025년의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 '모세의 지팡이'가 나타났어요.
경기도 김포의 한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대기 명단 접수가 가능할 수 있다는 연락이었습니다.
고작 대기 명단 가능 소리에 모세가 웬 말이냐고요?
제게는,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를 넘어 기적인 게 현실이니까요.
모세의 지팡이는 김포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