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기록 두 번째
여전히 더딘 전투
처절한 건 부모뿐입니다.
아이와 함께 떠나는 모진 결심을 당장 실행할 게 아니라면, 설령 그런 끔찍한 일이 현실이 되더라도, 마지막까지 부모가 할 수 있는 모든 애를 다 써보기로, 작심하고 펼치는 '그들만의 전쟁'.
하지만 지켜봐 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 눈에는 무늬만 전쟁일 뿐, 더디고 지루한 날들만 계속되는구나 싶던 11월 중순쯤 어느 날.
강원도의 첫 번째 패배 이후 깊은 내상을 입은 아이 엄마지만, 다소 들뜬 목소리로 제게 소식을 알립니다.
"명단 접수를 받아 주겠다는 곳이 나타났어요. 경기도 김포의 시설인데 그곳은 젊은 자폐장애인도 생활하고 있다네요. 다만, '기초생활수급자'가 우선이라는데 그거 신청했다면서요?"
가뭄 끝에 단비죠.
장기거주시설을 이용하려는 장애인이 '기초생활수급자'여야 한다는 건 대부분의 시설에서 요구하는 자격 요건입니다. 나름 이별 전쟁을 앞두고 전투식량과 함께 기본 무기로 준비했죠.
이미 신청한 지 한 달이 넘은 상태였습니다.
즉시, 주민센터의 담당 직원에게 연락합니다.
명단 접수
저와 제 아들은 아산병원뿐 아니라 강동 지자체에서도 스타를 넘어 VIP가 됐습니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그렇게 돼 있더군요. 얼떨떨할 뿐 아니라 황송한 일이죠.
제가 폭풍처럼 하소연과 원망을 쏟아낸 즈음부터 생겨난 변화예요. 그렇게 해달라고 푸념을 늘어놨던 건 아니었고, 이전까지 오랜 세월 그런 관심을 받아본 적도 없었어요. 참 고마운 일인 건 확실합니다.
'명일주민센터'에 우리 부자(父子)를 전담하는 직원이 배정됐고, 그 직원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과 지원을 다 하겠다 하더군요.
지역의 여러 장애인 지원단체 관련자들을 모아 제 사연을 놓고 세미나까지 했다죠.
주민센터가 지체 없이 '강동구청'에 연락해서 '김포시청'으로 협조공문이 발송됩니다. 그 공문은 김포시청에서 해당 시설로 전달됐고요.
시설의 담당과장과 통화가 이루어졌고, 며칠 지나지 않아 제 아들을 '대기명단'에 올리겠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당장 정식명단에 올라 면담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던 아이 엄마가 한숨을 쉽니다. 대기명단이라는 거, 그때부터 또 하세월이 걸린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알거든요.
하지만, 저는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합니다. 이렇게라도 해 주는 곳을 정말 오랜만에 보거든요. 8월 초 좌절 이후 자그마치 4개월만입니다.
오죽하면, 당시 제 눈에는 이곳이 '모세의 지팡이'가 가리키던 곳이었겠습니까?
시설 면담
불과 며칠 후. 바로 면담하러 오라는 연락이 왔어요. 기대 이상입니다.
11월의 마지막 금요일 아침. 아빠는 어제부터 컨디션 관리에 잔뜩 신경 써온 아들을 깨워 일찌감치 준비를 마쳤고, 아이 엄마 도착에 맞춰 강동의 귀곡산장을 출발합니다.
김포의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시설까지 두 시간여. 제법 시간이 걸리네요.
'과연 시설 입장이 가능할까?'
센 척하는 게 의식적 습관이 돼버린 아빠는, 가능하면 티를 안 내려고 하지만 내심 초조합니다.
강원에서의 패배 이후 이어진 서울 송파의 또 다른 시설 면담에서, 아들의 완강한 입장 거부로 시작부터 실패했던 기억 또한 생생하기에.
첫 번째 좌절의 트라우마는 아들에게도 또렷하거든요. 아무리 3세의 인지라지만, 오히려 무의식적으로 새겨진 본능적 인지가 더 무섭습니다.
입구에 젊은 입소자들이 여럿 보이고, 그동안 전화로만 연락을 주고받던 선생님이 인사를 건네옵니다. '정말 젊은 장애인들이 꽤 있네.' 싶습니다.
놀랍습니다. 아들이 순순히 입장합니다. 우려했던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순간이네요. 속으로 조용히 만세를 부르는 아빠.
원장실에 마련된 면담 테이블. 원장님 말고도 함께 자리한 보호사와 선생님들이 여럿입니다.
늘 눈치를 보는 게 몸에 밴 우리 부모들답게 본능적으로 그분들 표정부터 살핍니다.
미리부터 기죽어서인지 모르지만 좋지 않은 것만 같습니다. 힘든 일 가지고 온 사람들을 달갑지 않아 한다는 느낌이랄까요?
힘을 내야 합니다. 아빠는 누구나 힘이 셉니다.
아빠의 사연
구차함을 무릅쓰고, '해양천국'의 아빠를 따라 합니다.
"제가... 여명을 막 넘기고 있는 말기암 환자입니다. 여러 사정상, 어린 아들을 청년이 되기까지 혼자 키워왔죠. 그런데 이제 제가 떠나면 아들이 혼자가 됩니다. 저... 진단서를 보여드릴까요?"
뜻밖의 사연이라는 듯, "누가요? 아버님이요?" 당황하는 것 같던 원장님이 진단서를 꺼내려 품속에 손을 넣던 저를 말리네요.
"안 봐도 잘 알겠습니다."
한참 동안 원장님의 이야기가 이어졌고, 뒤늦게 낌새를 눈치챈 아들은 계속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자 조르네요.
"그런데, 우리 시설에 궁금한 점은 없으세요? 이용자도 여기가 믿고 맡길만한 곳인지 판단하셔야죠. 뭐든 물어보세요."
망설임 없이, 솔직하게 답했습니다.
"제가 지금 찬 밥, 더운 밥 가릴 형편이 못 됩니다. 시설에서 명단을 받아준 것만으로도, 지금 면담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고맙습니다. 그저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만 드립니다."
혹시 제가 너무 비굴해 보이시나요?
구차하면 어떻고, 비굴함 따위 별일도 아닙니다.
저는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아들 살 곳만 생긴다면요.
원장의 약속
"명단 접수부터 안 받아주는 곳이 있다고요? 그건 안 되는 말입니다. 설립 목적에 어긋나죠. 이용 희망자가 있고, 요건 심사를 거쳐 문제가 없으면 받아야 하는 게 저희 시설이 할 일입니다."
너무 당연한 그 말이 아빠에게는 새삼 충격입니다. 더구나 그걸 직접 확인해주는 시설 대표의 이야기는 처음 듣거든요.
"체험 기간 동안 적응이 안 돼서 정식 입소까지 이루어지지 않으면 모를까, 체험 입소까지는 하실 수 있습니다. 이 과장님, 다음 주에 바로 일정 잡아도 되지요?"
12월 9일.
첫 면담 때 만났던 보호사 선생님 두 분이 우리 부자 둘이 살고 있는 명일동 집으로 오셨습니다. 오늘은 방문 면담입니다.
표정이 달라요. 첫 면담일에 아빠가 주눅든 눈으로 살펴야 했던 달갑지 않은 표정이 전혀 아닙니다.
'공문 효과인가? 원장님이 힘을 실어주고 있나? 어쩌면 기구해 보이는 아빠의 사연이 선생님들 마음을 움직인 걸까?'
속으로 별 상상을 다 해봅니다.
까짓 이유야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아빠는 기분이 좋습니다.
빨라진 전투
"아드님은 지금 주중에 잠을 자는 주간보호센터에 있다고요? 정말 다행입니다. 저희는 아빠 없이 바깥 잠을 자본 적이 없을까 봐 많이 걱정했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아드님을 그곳에서 보고 싶은데, 그쪽에 연락 주시겠습니까?"
바로 주간보호센터 원장에게 연락했죠. 아무 때나 오라는 답을 확인했습니다.
체험 입소 일정과 제가 꾸려야 할 아들 생활 살림 목록까지 확인해 준 후, 그분들은 주간보호센터를 거쳐 아들을 본 후 돌아가겠답니다.
점심시간이 다 돼서 도착했고, 이미 시곗바늘은 2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가까운 백반집에서 밥이나마 차려드리겠다 해도 괜찮다며 바로 일어서네요. 누가 봐도 강행군이죠. 제게는 감동이고요.
1주일 뒤인 12월 16일에 체험 입소 하잡니다.
체험 입소는 정식 입소를 앞두고 미리 시설에서의 생활을 체험하는 기간입니다. 거의 모든 거주 시설에서 거치는 과정이고, 보통 한 달이 걸리죠.
한 달 동안 서로가 서로를 체험하는 기간이지만, 당사자인 제 아들이 그곳에서의 생활을 받아들이냐가 가장 중요한 한 달.
그때부터, 겉으로는 여전히 아닌 척하고 있던 제 마음 속 트라우마도 본격적으로 꿈틀대기 시작합니다.
체험 첫날, 아들의 거부로 멀리 강원도에서 당장 데려가라는 연락을 받고, 그 새벽에 쫓겨나야 했던 기억이 생생하기에 과연 첫 밤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지 걱정만 가득합니다.
지금 한 달 후까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첫 밤만 넘어간다면 한 달도 지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역시 모세도 힘이 셉니다.
전쟁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