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축구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

수업 첫날, 경기에 출전해 완망한 이야기

by 끼우
저기 보이는 초록 축구장. 오늘은 축구를 첫 번째 만나는 날. 몸은 그곳을 달려가고 있지만 가슴이 떨려오네. 새로 산 축구화가 어색해. 자꾸 핸드폰에 날 비춰봐도 말쑥한 내 모습이 더 못마땅한 축구를 만나는 곳 100m 전....
... 용기를 내야지.... 용기를 내야지.

https://youtu.be/mETSLNQr3uw

https://youtu.be/mETSLNQr3uw가수 이상우의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 노랫말을 개사해 보았다.

https://youtu.be/mETSLNQr3uw

가수 이상우의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 노랫말을 개사해 보았다.


새로 준비한 준비물들을 착용하고 있노라면 누가 보아도 처음 축구를 시작하는 태가 보였다. 그렇게 말쑥한 내 모습이 초보라는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온통 머릿속에는 ‘축구’라는 단어뿐 생각나는 게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운동을 하려니 두렵고 떨리는 마음 가득이었다. 그래도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축구교실의 준비물_축구화, 신가드, 축구 스타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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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위해 반바지 두 개를 매장에서 야심 차게 샀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았던지라 운동복의 필요성이 없었다. 거들떠보지도 않던 스포츠 운동 코너에서 가장 할인율이 좋은 것으로 골랐더니 색깔이 흰색과 빨간색뿐이었다. 축구화는 구장 잔디의 종류와 축구 포지션에 따라 다양했고 가격도 폭이 컸다. 하지만 매장에는 물건이 많지 않아서 온라인 몰에서 축구화를 선택했다. 내 딴에는 축구화가 싸지 않은 편이라 신중했다. 축구화를 사놓고 축구가 나랑 맞지 않으면 축구화가 쓸모없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10년 전 구매한 남편의 축구 국가대표 반팔티, 애들에게 커서 신다 만 축구 스타킹, 남편의 신가드(정강이보호대)까지 갖가지 축구 아이템들을 몸에 장착했다. 집에서 굴러다니는 축구용품들을 다 모아 가능했다.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는 나는 주부로서 새로 사기엔 아깝고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나에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평소에도 아이들에게 저녁을 해주면, 그 다음날 내 점심은 전 날 저녁에서 남긴 음식이 내 차지다.(난 이런 패턴이 편하다. 점심 걱정이 없으니까)



옆은 못 보고 앞만 바라보는 경주마


어쨌든 첫날 가자마자 훈련 20 분하고 바로 경기투입. 나 초짜인데, 축구장 하나에서 반을 쪼개 옆에 같이 훈련하는 시니어 할아버지들과의 경기였다. 여성축구 감독님이 말했다. “포워드에 서서 마음대로 해봐.” 난 진짜 공만 바라보고 공을 향해 계속 날뛰었다. 나는 말티즈 서장이 되고 말았다. (아이들 만화, 엉덩이 탐정에 나오는 말티즈 서장은 공을 좋아해서 동그란 것만 보면 끌어안고 정신을 잃는다)


말티즈서장.png

사진출처 : blog.naver.com/goldggamangyi/222372662165


축구는 내 땅이 있는 게임이다. 그 자리를 벗어나면 구멍이 난다. 내 땅도 지키지 못하는데 동료 땅까지 지키겠다고 해놓고 내 땅도 동료 땅도 다 뺏긴 꼴이 되었다. 이렇게 나의 첫 데뷔는 옆은 가린 채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공만 따라다니다 끝이 났다. 완벽하게 망하게 만든 원인은 나였다.


10분 뒤 오른쪽 허벅지가 아팠다. 오른쪽 허벅지 대퇴직근에 파열음이 난 것이다. 평소 운동을 안 한 것이 38년. 안 하던 짓을 하더니 역시나 몸은 신호를 보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미 내 체력은 바닥을 쳤다. 뜨거운 가을 햇살 아래 익어가는 건 내 몸이었다. 처음 겪는 작은 아픔에 다리는 절룩거리고 있었다.


내 몸에서 ‘허벅지’는 가장 마른 부분이었다. 배는 아이를 셋이나 낳아서 뱃살이 나오는 게 정상이라고 핑계를 댔다. 바지를 입을 때면, 억지로 힘껏 배를 넣어 허리를 맞췄다. 그리고 나면 허벅지는 늘 여유로웠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제일 약한 부분 역시 허벅지였다. 축구에서 몸에 가장 중요한 부분들이 있다. 버티는 힘을 주는 ‘허벅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준비해 주는 ‘발목’, 움직이는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허리’다. 이것들 모두 내 취약점이었다. 그렇게 경기에서 졌고 나는 후반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인생에 쓸데없는 것은 없다”


지난 6월 18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는 모교인 와세다대 강연에서 “인생은 미치쿠사(길 가는 중에 딴짓으로 시간을 보냄)와 돌아가는 길의 연속”이라며 “‘실패’와 ‘돌아가는 길’을 경험해 온 사람으로서 인생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은 의미가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시간을 소중히 하라”고 당부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jpg

사진/기사 출처 joongang.co.kr/article/25171390


막 시작한 ‘축구’가 내 인생의 ‘쓸데없는 것’이 될지 ‘쓸데 있는 것’이 될 지에 대한 고민을 하며 나는 축구화를 샀다. 축구화를 사는 행위조차도 쓸데없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행동으로 옮기는 실현의 첫걸음이었다는 사실을 이 때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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