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먹고 조져버리자!” 다들 이를 갈았다. 우리 팀이 만난 첫 상대가 지난 대회 때 만나 1위를 내주었던 팀이었다. 선발 선수들은 테이핑을 시작했다. 테이프와 한 몸이 되도록 칭칭 감았다. 정강이 보호대를 착용하고 축구화를 신고 경기에 나섰다. 이들은 전사들이었다. 비장했다. 먼 옛날 전쟁터에서 싸우는 전사들의 후예였다. 여성 축구를 처음 들어올 때는 취미였지만 대회를 나가면 전쟁터였다. 그런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는 함께 운동하던 시니어들의 응원을 받으며 작은 출정식을 갖는다. 삼국지를 보면 전쟁 나가기 전에 출정식을 거대하게 하지 않나. 축구대회에 나간다는 건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았다. 스포츠 게임은 치열하게 승부를 가르는 전쟁이었다.
축구장 전쟁터에는 점 하나 차이로 전사와 천사들이 있었다.
경기 시작직전에 동그랗게 모여서 파이팅을 외친다.
돕바천사들의 합창
1년이 막 지난 초짜들은 대기조에 속해 있었다. 선발 선수들에게 문제가 생겨서 공백이 생겼을 때 초짜들이 필요했다. 선발 선수들이 4대 0이나 5대 0으로 현격히 이기고 있을 때 끝나기 직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이들을 천사들이라 불렀다. 돕바천사. 검은 롱패딩을 입고 선수들을 챙기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천사라는 뜻이었다. 누군가 선창 하면 따라 외쳤다. 잘하는 선수나 격려할 선수의 이름을 큰 소리로 응원했다. 돕바천사들의 합창이었다.
대회에서 처음 만진 공
매 경기 1시간 전부터는 몸을 풀었다. 대기조라 하더라도 같이 몸을 풀어야 한다. 우승이 목표여서 나는 경기 출전이 불가능했다. 실력이 부족했다. 그런데 경기 첫날 끝나기 10분 전 감독님이 나를 불렀다. 들어갈 준비를 하라는데 천사 돕바를 벗고 트레이닝복을 위아래로 벗고 신가드까지 착용하니 시간은 덧없이 흘렀다. 준비를 미리 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5분 전에 경기장에 입성했다. 실제로 뛴 시간은 3분 남짓. 선발 선수가 나에게 공을 패스해주어서 받았다. 미리 우리 편을 봐두지 않아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공을 잡고 도는 순간 끝나는 심판의 휘슬이 불렸다. 대회에 나가서 처음 발로 만져본 공이었다.
그리고 경기 둘째 날 4강전이었다. 끝나기 5분 전에 또 투입됐다. 내 역할은 상대편 포워드를 잡아두는 일이었다. 하지만 들어가자마자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공을 받고 나서도 상대편에게 뺏겼다. 다행히 뒤에 있는 다른 우리 편 선수들이 나를 도와서 우리 공을 다시 만들어 주었다. 부족한 나를 위해 선발 선수들은 더 뛰어주었다.
눈앞에 펼쳐진 우승의 순간
우승컵을 들어 올려 환호했다.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팽팽한 접전 끝에 승부차기까지 이어졌다. 우리 팀 골키퍼 언니는 무릎 수술로 출전할 수 없었다. 단기간에 골키퍼 연습을 한 다른 두 선수가 번갈아 가면서 골문을 지켰다. 승부차기 역시 비기고 있을 무렵 우리의 초보 골키퍼는 골을 넣기까지 했다. 필드도 뛰면서. 그리고 상대편의 골키퍼는 하늘로 공을 날렸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이었다. 다들 소리를 지르면서 골키퍼 쪽으로 얼싸안고 소리 질렀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감독님도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우승을 빌었다. 이곳저곳 눈물바다였다. 감독님은 지금껏 이 팀을 맡으면서 당했던 설욕을 풀었다고 했다. 경기에 많이 뛰어 피를 뽑으러 한의원을 다녀온 동생, 다리에 쥐가 나 응급실에 실려 간 언니, 무릎 수술을 하고도 앉아있던 골키퍼 언니, 이제는 더 이상 경기를 뛰지 못하지만 팀의 모든 살림을 책임져 주는 코치님, 경기에 뛰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먹을거리 챙겨주던 언니들, 아이들을 맡아준 각자 집의 남편들, 교체선수 체크하면서 감독님 옆에서 명단 작성을 도맡아 하던 동생, 응원 단장을 자처해서 확성기처럼 응원하던 동생, 늦게라도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사진과 영상을 찍어 올려주는 언니 등등 하나하나 누가 시키지 않아도 조용하게 각자의 역할을 했다. 돋빠천사들, 전사들 모두 하나가 되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기쁨과 절망사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삶은 어쩌면 니체의 말처럼 오류투성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류들 때문에 불편함을 느낄 때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마흔에 읽는 니체_장재형
한 번의 우승이 영원하진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키기 위한 험난한 여정이 우리를 기다릴 수도 있고, 다시는 보지 못하는 우승이 될 수도 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절망 사이를 오가며 인간으로서 성장한다고 믿는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나니 남은 건 경기장 내 모습이었습니다. 경기중 못하는 내 모습을 보는 일은 왜이리 어려울까요? 다시 팀을 위해 나를 위해 축구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시합 경기중 아이들을 챙겨준 남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