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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우 Feb 22. 2024

2. 이상은 이상했다

20240222 '이상의 날개'를 읽고 생각의 흐름대로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수능 언어영역의 문제에 자주 나오던 구절이다. 이상의 날개라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소설은 대학을 준비하는 도구로 쓰였다. 문학인 이상이라는 사람의 이름만 알고 있었고 날개라는 소설의 저 윗부분만 알고 있었다. 날개는 일제 강점기의 자유, 해방의 의지를 나타낸다는 해석이었다. 한국문학을 멀리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이상’이라고 독서회 회원은 말했다. 앞뒤 설명 없이 저 부분만 놓고 문제를 만들고 답을 쓰는 일은 비정상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만든 해석을 답이라고 교육받았다. 이 세상에 답정너가 시험이었다니. 해설자들의 손에 놀아났다. 다시 읽는 날개는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따위는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온고지신?   

  

사실 문학뿐만이 아니다. 역사도 쓰인 자들의 이야기인 것처럼, 과학도 아직까지 풀지 못한 기이한 현상을 풀 수 있는 데까지 정리해 놓은 것뿐이다. 이렇다 저렇다 할 설이 있는 것.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의견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아내의 매춘으로 인한 자신의 버림받음을 자유연애로 포장하려 했다. 겉으로 봤을 때 지고지순한 구닥다리 연애는 옛날 것이라고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은 엄격한 백부 밑에서 엄격하게 자라왔다. 갑자기 새로운 사상(자유연애)을 추구한다고 해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옛것과 새것의 충돌에 인정하기 싫은 자신을 몽롱함으로 표현했다.          



문학을 배울 땐 정주행 해보기     


학교에서 배웠을 때 ‘날개’를 정주행 했다면 훨씬 흥미로웠을 것이다. 남녀의 잠자리 이야기는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관심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랬다면 국어에 관심이 더 생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다닌 고등학교 시절에는 아직도 남녀 칠 세 부동석의 개념이 있었고 날개의 앞부분 이야기는 외설로 취급될 수 있음에 교사들은 다루기 어려웠다.                     

판단을 확정하지 않는 어조로 의식을 표출함으로써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드러난다고 국어 문제에 쓰여있었다. 판단을 꼭 확정해야만, 심리상태는 꼭 안정적이어야만 하는가. 나의 삐딱함이 곤두섰다. 다른 회원은 주인공의 외출이 환상일 수도 있다고 해설했다. 약 기운에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할 수 있다고.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관점에 놀라웠고 ‘그럴 수 있어’라는 납득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펀둥펀둥 게으르자     


“이것은 행복이라든가 불행이라든가 하는 것을 계산하는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나는 내가 행복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그렇다고 불행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그날을 그저 까닭 없이 펀둥펀둥 게으르고만 있으면 만사는 그만이었던 것이다. 내 몸과 마음에 옷처럼 잘 맞는 방 속에서 뒹굴면서, 축 쳐져 있는 것은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그런 세속적인 계산을 떠난, 가장 편리하고 안일한 말하자면 절대적인 상태인 것이다. 나는 이런 상태가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상태. 이런 상태가 꼭 있다. 정의하기 싫은 때가 있다. 정의를 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상태를 면밀히 알리는 일이다. 어쩌면 나를 알아달라고 나의 상태가 이렇다고 관심종자라고 할 수 있다. 가끔 닌텐도 게임을 하면 딱 저런 상태다. 물론 어디까지 게임을 해야지 하는 목표는 있지만 그게 어떤 상태인지를 구분 짓기는 어렵다. 누군가 나의 상태를 무례히 물어온다면 딱 저렇게 설명하고 싶다.     


     

주식 안 하면 바보?

    

회사 사람들은 남다른 정보를 캐내기 위해 질문을 쏟아낼 때가 있다. 최근 들어 그 끝은 돈이다. 돈을 잘 벌기 위해서는 투자를 해야만 한다고 훈계를 둔다. 특히 주식을 안 하면 바보 취급받는 일이 일상이 되기도 한다. 그럴 때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또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모던보이 이상     


이상은 시대를 앞서간 천재 불운아였다. 현재로 말하자면 핫플(이상은 옛날 다방을 세 곳이나 차렸다가 망한 이력이 있다)에 집착하는 힙한 MZ의 대표, 모던보이가 바로 ‘이상’이었다. 여자가 많았고, 사랑에는 한없이 순진했던 사람. 문학인이지만 건축인으로서의 작품을 남기기까지 하는 특이한 인간. 어쩌면 지금의 시대가 원하는 상, 그런 남자가 아니었을까.     

이상은 날개의 첫 구절이 그의 인생이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날개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생각났다. 선녀는 날개옷을 입고 세 아이와 하늘나라로 올라가버렸다. 어쩌면 주인공의 아내가 나무꾼처럼 날개가 달린 주인공의 선녀옷을 숨긴 게 아닐까. 숨겨진 주인공의 날개옷을 주인공은 찾아냈다. 그리고 그 날개옷을 입은 주인공은 이제 하늘을 훨훨 나는 일만 남았다.


이상의 글은 괴이했고 이해할 수 없어 이상했다.

그래도 이상은 이상이었다.

각자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게 만든 글솜씨에 놀랐다.

역시 이상은 천재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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