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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우 Apr 16. 2024

13. '선재 업고 튀어'에 빠진 이유

20240416 월, 화요일은 너다!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OTT와 돈으로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멍하니 시간을 버리는 느낌’이라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정했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요즘처럼 자극적인 드라마가 횡행하는 시대에서 우리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내는 게 내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멋대로 되지 않았다. 남들이 말하는 시청률 높은 드라마가 주변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동안, 나는 공감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이를 낳고 10여 년을 보냈다. “저는 드라마 안 봐요”라는 말로 그럭저럭 살아갔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감정이 말라비틀어져 눈물 수혈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드라마를 다시 건드려 보았다. 최근 나의 드라마 간택은 ‘선재 업고 튀어’다. 판타지 로맨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장르다. 현실 가능성이 제로인 어처구니없는 이야기. 그런 장르를 사랑한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떠올릴 때,
우리는 ‘만약’이라는 가정을 덧붙인다.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만약, 그때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때가 우리의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만약’이라는 말은 언제나 슬프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만약’이라는 가정을 해볼까 한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찾아온다면.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운명의 시간’이라는 걸 알아본다면!...”

 _‘선재 업고 튀어’ 드라마 프로그램 소개 글 중에서
   tvn.cjenm.com/ko/Lovely-Runner/about/       


나의 2000년대 회상하기

   

TVN드라마 프로그램 소개의 첫 부분이다. 드라마의 배경은 2008년이다. 드라마는 그 시절의 배경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나도 싸이월드를 했었고 그 시절 필름 카메라가 좋아서 사진동아리에도 가입했었다. 20여 개의 노래 음원 mp3를 아이리버에 담아 다니곤 했다. 동네 노는 언니들을 보면 무서워서 도망 다니기 일쑤였고, 스티커사진 찍기를 좋아했다.      



믿보배 김혜윤


드라마의 이야기는 억지스러운 면들이 있었다. 삿갓을 쓰고 분장한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다가가 미래를 본다고 하다 들킨 장면은 나도 숨고 싶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풋풋함으로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김혜윤 배우의 연기는 역시나 찰떡이었다. 예고편에서 김혜윤 배우를 보자마자 ‘어쩌다 발견한 하루’ 드라마의 주인공 ‘단오’가 보였다. 그리곤 확신했다. 꼭 보겠노라고. 믿고 보는 배우는 다르다.  김혜윤 배우가 맡은 ‘임솔’이 여주인공이다. 김혜윤 배우는 남자주인공을 빛내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남자 주인공의 첫인상은 아무 느낌이 없었으나 드라마를 보는 순간 이미 눈에서는 하트광선이 쏟아졌다.



"의사 아내로 살았을 텐데..."


드라마에서 현실의 여주인공은 톱스타를 좋아하는 팬인데 신기한 건 과거로 돌아갔을 때 옆 학교에 그 톱스타 남자 주인공이 함께 학교를 다녔다는 설정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지만 아닌 경우도 많다. 실제로 이런 일들 현실성이 있다. 나도 친구들과 만나면 주변의 남자친구들 이야기를 한다. 친구의 고백 이야기를 듣고 나는 놀린다. “네가 그 친구 고백만 받아줬어도 너는 지금 의사 아내로 살았을 텐데...” 우리는 과거를 멋대로 흘려보냈다. 알고 보면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었을 텐데 우리는 그런 이유를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던 청춘을 보냈다.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 ‘임솔’처럼 남자 주인공 ‘선재’가 먼저 그녀를 좋아했었던 것처럼. 과거의 그녀는 그를 그냥 그렇게 스쳐 보냈다.     



스쳐지나간 과거를 찾고 싶다


어쩌면 그렇게 스쳐 지나간 과거를 드라마에서 찾고 싶었다.

드라마에서 김형중의 '그랬나봐' 노래가 나오는 순간. 나는 이미 과거에 와 있었다. 리메이크 되지 않은 오리지널 사운드는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요즘 리메이크 되는 노래들은 그 때의 감성을 불러일으키지 못함으로) 이밖에도 점점 멀어져가는 두 주인공을 나타낼때 나오는 브라운 아이즈의 '점점'은 재미난 요소로 짧게 잘 쓰였다.

과거로 돌아간 나는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몰래 나와 땡땡이를 쳤던 날과 운동회날 옥상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던 그 용기. 그리고 추석 행사 날 송편을 똥으로 빚어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에게 된통 혼이 났던 그 기억들. 당시에는 너무 무섭고 떨렸었지만 그때가 아니면 못했을 추억을 되짚다.       

    

“어쩌면 소중한 가족과 함께하는 평범한 오늘이,
사랑하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웃을 수 있는 이 순간이,
나의 운명의 시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1초만 흘러도 과거가 될 지금,
이 순간을 아름답게 봐주기를.
흘려보낸 시간 속에서 놓치고 지나쳐버린
특별한 순간들을 되찾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_‘선재 업고 튀어’ 드라마 프로그램 소개 글 중에서          
   tvn.cjenm.com/ko/Lovely-Runner/about/


현재만이 현실적이고 확실하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다. “미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거의 항상 다르게 전개된다는 사실과 과거조차 우리의 회상과 달랐으며, 더구나 과거와 미래 모두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님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미래를 위한 계획과 걱정에만 온통 마음을 쏟거나 과거에 대한 동경에 빠지지 말고 현재만이 유일하게 현실적이고 유일하게 확실한 것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현재를 살아야겠다.

드라마 속에 주인공으로 나를 가두지 않아야겠다.

(월요일 화요일 저녁 8시 50분에만 빠지기)

현실의 지금을 즐기고 후회는 조금만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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