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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우 May 09. 2024

14. 불만의 덩어리들이 뭉텅뭉텅 있는 날

20240509 글쓰기 싫어

화요일에 썼어야 했을 글을 목요일로 미뤘다. 목요일이 되어서도 도통 글 쓸 거리가 머릿속에 맴돌지 않았다. 스쳐가는 글감들을 잡아두고 생각을 조금만 더 하면 되는 것을. 그냥 그렇게 흘러가게 두고야 말았다.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와 웹소설 ‘내일의 으뜸’     

요즘 나의 최대의 관심사는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다. 화요일은 그 드라마의 원작 웹소설 ‘내일의 으뜸’을 모조리 읽고 드라마와의 차이를 발견했다. 당장 비교하는 글을 쓸 들뜬 마음이 있었지만 못내 사그라들었다. 막 읽고 난 후에 초가 활활 타오르다가 단숨에 바람으로 훅 꺼진 느낌이었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도 온갖 온라인에서 떠돌아다니는 릴스와 예고편과 시청자들의 반응을 확인하느라 이미 한 시간이 사라졌다. 왜 그랬을까.           


홍세화 씨 그곳에서 평안하세요     


오늘 신문에서 언론인이자 작가인 홍세화 씨의 사망 애도 글을 보았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제목이 얼핏 기억이 났는데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그의 글을 읽었는지도 기억에 없었고 단지 그의 얼굴과 이름만이 익숙할 뿐이었다. 나에게 홍세화 씨는 그 무엇도 아니었는데 죽음이라는 단어가 함께 담기자 뭔가 허망했다. 아마도 예전 회사의 국장님이 함께 떠올라서였을게다. 그분도 언론인이셨고 암으로 돌아가셨다. 나에게는 큰 스승이었다.          



축구일기 일시 멈춤     


축구를 배우는 일도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이 되었다. 어떤 열정이 살짝 사그라진 느낌이다. 축구 일기를 지속해야 하는데 무엇을 어디까지 써야 할지 고민됐다. 내가 속해있는 단체를 속속들이 ‘민낯을 드러내야 하는가’를 고민하다가 끝내 ‘쓰지 말자’로 끝이 났다. 그러다 보니 글감들은 그냥 머리 위로 둥둥 날아다니기만 하고 잡아두진 못했다.          



그놈의 막걸리 전쟁     


오전이 빈 시간일 때는 그 유명한 성시경 막걸리 ‘경’을 사려고 네이버스토어를 광클한다. 제일 친한 친구가 갑자기 성시경이 좋다고 말했고 자기는 그 막걸리를 살 능력이 없다고 말했었다. 나는 그런 거 잘한다고 떠벌려놨다.  마침 5월은 그 친구의 생일이 있는 달이다. 친구가 기뻐할 그 미래를 그리면서 도전한다. 사실할 수 있다고 말해서 지키려고 하는 일이다. 1분이면 매진되기 일쑤. 벌써 일곱 번째 실패다. 다섯 번 안에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삼십 번은 해야 될까 말 까다. 혼자 이런 짓을 하고 있는데도 나 자신이 한심했다. 그래서 남편이 “이걸 왜 하고 있어?”라고 말했나 보다.        


   

총무 할 팔자를 바꾸고 싶었다     


마흔이 되자 내가 맡고 있던 인생의 직책들이 무기력해지면서 그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를 자꾸 돌아보게 만들었다. 명리학에 관심이 많은 이모님께서 나에게 내 사주를 알려주셨는데 어디를 가든 ‘총무’할 팔자랬다. 나는 과연 팔자대로 살고 있었다. 아니면 그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내가 살고 있어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총무의 인생이라면 억울했다. 왜 나만 희생해야 하는가.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나에게 칭찬으로 나를 쓰고 나는 계속 돈도 되지 않는 취미와 친목도모를 해야 하는가. 그 인생을 바꾸고 싶었다. 비뚤어진 마음이 자꾸 무기력을 만들었다.   


       

큰아이가 아프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는 결석한 날이 없었던 아이다. 오전 내내 침대에 누워있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런저런 편하지 않은 마음들이 모였다. 불만의 덩어리들이 아무런 연관이 없이 뭉텅뭉텅 떨어져 있다. 마치 강아지 미용할 때 털이 빠진 모습이랄까. 내가 털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강아지처럼 느껴졌다.     



“차 막히고, 애인 기다리고,
슈퍼마켓 가서 줄 서고,
영화 관람 기다리는 게
버리는 시간이 아니에요.
진짜 버려지는 시간은
누구 미워하는 시간입니다.”
_책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_김창완 중에서     


그.렇.다.          



버려진 시간 = 미워하는 시간     


적어도 나는 누구를 미워하지 않았다고 하고 싶었다.(하지만 미워했던 것 같다. 내 마음대로의 이유로)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고 하고 싶었다. ‘선재 업고 튀어’를 향한 애청자로서 한 드라마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홍세화 씨의 사망 애도 기사 역시 사회생활을 했던 그때의 나의 스승을 그리워한 것이다. 축구 일기의 일시 멈춤도 나의 실력향상이 되지 않는대서 오는 애증이었다. 막걸리 구매로 나는 뱉은 말에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나의 마음이 매일 오전 11시에 있었다. 내가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인다는 건 내가 아직 쓸 만한 인간이라는 점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나라서 그토록 그리워하고 혼자 토라지고 다시 돌아오는 작업을 이렇게나 하는 나도 참 우습다. 가족에게나 더 잘하면 되는 것을. 그게 쉽지 않다. 비록 돈을 벌어오는 어떤 일을 하지 않더라도 나는 가장 위대한 직업이 ‘엄마’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오늘도 아픈 아이 옆에서 얼른 낫기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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