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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우 Jul 02. 2024

16. 글쓰기 두려웠는데 벌써 일 년

20240702 브런치 1년 자축합니다

10년이 되어가는 남편의 차렵이불이 뽀얀 속살을 자꾸 드러냈다. 이미 아이들의 침이 잔뜩 묻어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 손수건과 10년 된 수건으로 둘러싼 게 몇 번. 또 그렇게 끝부분을 수건으로 꿰맸다. 이불작업이 끝나고 실은 수명을 다했다. 내 인생의 처음이었다. 결혼하고 처음과 끝을 함께한 봉재실. 그토록 빛나고 하얗던 실이 벗겨지고 검은 속이 드러나는 순간 안쓰러웠다. 다 쓰고 난 후의 플라스틱 원기둥이 나를 쓸쓸하게 했다. 버릴 수가 없었다.         


서커스의 이면, 노력의 결과


중국인, 몽골인, 우즈베키스탄,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온 젊은이들이 묘기를 부렸다. 특이한 다이빙을 하고 공중에 끈 하나로 몸을 의지하기도 했다. 서커스에 나오는 이들을 당연하게 하대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제주도에서 본 스카이워터쇼를 마흔이 되어 보자, 달랐다. 그들이 너무나 대단했고 존경스러웠다. 땅에 발을 붙이고 공을 차는 일도 어려운데 공중에서 어떤 자세를 한다는 일이. 몸을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일에 놀라웠다. 나는 수영도 못하고 다이빙은 엄두도 못 내는데 그들은 그것들을 다 해내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춤을 추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일이 다가 아니었다. 이 행위를 위한 노력 이제야 사물에 대한 이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글도 마찬가지!


왜 그랬을까.

이제 나에게는 더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 힘이란 건강한 체력과 시간의 틈을 말한다. 건강한 체력은 정서적 여유를 힘껏 끌어당겨주었다. 오래 생각해도 지치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삼곤 했다. 시간은 만들면 되는 일이었다. 시간의 틈은 아이들이 있는 시간 안에서도 아이들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면 될 일이었다. 아니면 자는 시간, SNS 하는 시간의 양을 줄이면서 얻어지는 생각의 공간이었다. 

중구난방 적어놓았던 생각의 메모들이 한데 모여 정리되는 일을 브런치가 해주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글들도 그랬다. 뭉치면 근사한 글이 되지만 흩어지면 그냥 메모로 버려질 물건으로 끝이 난다.  


    

나를 알아내고 드러내는 일


_하고 싶은 일은 누가 싫어해도 하는 사람.

_입 밖으로 뱉은 목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하려고 노력하고 해내는 사람.

_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될 일 중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

_남들이 보는 시선에 민감하지만 남들이 다 한 것, 다 갖고 있는 건 또 싫은 사람.

(먼저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아니면 아예 건드리지 않는 사람)


실을 다 써버리고 남아있는 플라스틱이 내 단점을 다 드러낸 나여서 버리지 못했다. 몸의 동작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내가 서커스를 하는 단원들의 모습에 대단함을 느낀 것도 내가 하지 못함을 알고 나서였다. 내 부족함을 인지하고 내 잘못을 인정하는 일. 그래서 한없이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글로 반성하고 나를 드러내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음을 인지하면서 실수해도 되고 틀려도 된다는 것을 아는 때가 바로 지금, 마흔이었다.    

 

생각을 정리할수록 내 내면 그릇도 더 깊어졌다. 작은 그릇들이 나를 상처 내고 내 안에 다른 물질로 채워도 내 그릇이 더 커져 받아낼 수 있는 큰 그릇이 되었다. 그 그릇은 점점 커질 것이고 점점 깊어질 것이다. 그 누구도 나에게 상처 주지 못하는 그런 마음 그릇. 일희일비하지 않고 꿋꿋이 나아가는 우직한 자세로. 브런치 2년 차를 준비한다. 


(물론 언제나 문제는 퇴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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