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말하셨다. 평소에 부탁이 전혀 없던 어머님이셨다. 표 4장의 예매를 나에게 부탁하셨다. 2019년 ‘청춘어게인’이라는 제목으로 나훈아 콘서트를 본 적 있으셨다. 이번은 나훈아의 마지막 공연으로 다시는 없을 이번 콘서트를 꼭 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럼 며느리로서 어떻게 해야겠는가. 당연히 해내야만 하는 일인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 과제가 떨어졌다. 이제 돌진할 뿐이다.
예매 시 세 번의 선택의 기로를 만난다
기다림
달력에 써 놓았다. 10월 29일 오전 10시 오픈, 예스24에서. 미리 예스24티켓 앱을 깔아놓았다. 이미 전국적으로 콘서트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다른 장소에서 열렸던 같은 종류의 공연이 연달아 올라와 있었다. 그중에서도 예매해야 할 공연은 마지막 공연, 서울이었다.
9시 30분이 되자 먼저 앱에 접속해서 서울지역 콘서트 예매 창으로 접속해 있었다. 다른 핸드폰으로 네이버 시계를 켜놓고 10시가 땡 울리자 동시에 예매를 눌렀다. 그런데 ‘아직 예매시간이 아닙니다’라고 뜨는 것이 아닌가. 세 번이나 그렇게 되자 뒤로 가기를 눌러서 다시 예매창으로 들어왔다. 드디어 예매라는 빨간 버튼이 새로 생겼다.
이미 10시 하고도 30초가 지났다. ‘접속 대기 중입니다. 대기 인원 5153명 이상’이라는 창이 올라왔고 숫자는 줄어들 생각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보통 빨래를 갠다. 창을 띄워놓고 계속 보고 있을 수는 없어서. 그러면 조급하던 마음이 빨래와 함께 차곡차곡 개어져 흥분되는 마음이 정리가 되는 것이다.
첫 번째 선택_날짜와 공연시간
그렇게 10분 동안 빨래를 개는데 1000명 이하부터 인원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차분히 의자에 앉아서 낮아져만 가는 숫자를 보고만 있었다. 드디어 들어간 순간, 서울에서 공연이 총 3일 다섯 번이 있는데 첫 번째 선택의 기로였다. 공연이란 마지막 공연이 최고라 생각해 거침없이 일요일 저녁 공연을 선택했다.
두 번째 선택_가격에 따른 좌석과 구역
문제는 여기부터였다. 올림픽 체조경기장의 시야 좋은 자리를 미리 알아두지 못했다. 숫자만 나열되는 좌석선택에 R, S, A석으로 나뉘는 기준도 알아두지 못했다. R석은 비싸니까 S석이다. 하지만 머리는 멍했고 준비 부족에 후회했다. 가격대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이대로 손을 멈추다가는 안 될 것 같아 생각나는 숫자를 아무거나 눌렀다. 그렇게 두 번째 선택이었다. 38 구역. 좌석이 하나도 선택이 되어 있지 않은 채로 고스란히 있었다. 이게 웬 럭키비키!! 네 자리를 연석으로 선택한 뒤에 결제를 눌렀다. 사실 안되면 두 자리씩 두 번 할 생각이었다.
세 번째 선택_결제방식
결제를 누른 뒤에도 문제는 따라왔다. 세 번째 선택이었다. 남들은 무통장입금 하랬는데 버튼이 어떻게 눌렸는지 신용카드 결제를 눌러버렸다. 신용카드 이용 금액 채워야 하니까. 하지만 카카오페이와 네이버페이, 신한은행 밖에 결제를 할 수 없었다. 신한은행에 신용카드가 없는데, 그렇다면 다른 곳에 현금이 다 들어있어야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네이버 페이로 결제하면 카드가 되지만 분명 로그인을 다시하라고 할 테니까. 급하게 돈이 있는 다른 은행에서 카카오페이와 연결된 은행에 돈을 이체한 뒤, 카카오페이로 결제했다. 결국은 현금으로 결제한 셈이다. 그런데 왜 카드 결제라고 뜨냐고. 뭐 어찌 됐든 해냈다!
사이버 전투에서 승리한 장군이 되었다
10시 11분 결제가 완료되었다. 예스24의 콘서트 기대평을 둘러보았다. “하... 피가 마른다... 딸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오늘 하루 결정된다 휴ㅋㅋㅋㅋ”라고 쓰여 있었다. 맞다. 이 콘서트는 아들, 딸들의 자격시험이자 손주들의 자격시험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전투에서 얻어냈다. 사이버 전투에서 승리한 장군의 기분. 이 승리의 기쁨을 빠르게 어머님께 전해드리려 전화를 드렸는데, 안 받으셨다. 그렇게 다시 빨래를 개고, 청소기를 밀고 대걸레질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원수가 있었다
점심을 먹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님이 같이 가는 부부네 자녀분도 이번 콘서트 예매에 성공했다면서 자리가 어디냐고 물어오셨다. 내가 예매한 곳은 3층 38 구역이고 정면은 아니어서 안 좋은 자리라고 말씀드렸다. 다른 분이 예매한 곳은 10 구역, 2층. 나는 그에게 자리로 밀리고 말았다. 나는 장군이었지만 그보다 높은 원수 급이 나타났다. 순간 당황은 했으나 어머님이 세 번이나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데 더 좋은 자리가 좋은 거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미리 좋은 구역을 생각해 놓고 결제 시스템이 어떻게 될지를 준비하지 않은 자의 선택받지 못함이었다.
친정 부모님이 대신 가기로
2019년에 친정부모님이 가서 남겼던 나훈아콘서트 사진이다.
하지만 문득 친정엄마, 아빠가 생각이 나서 표를 드려보겠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바로 전화를 했더니 엄마, 아빠는 기뻐하셨다. 자리는 문제가 아니라면서 콘서트에 가겠다고 하셨다. 다른 친구 부부와 함께. 딸의 위상이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생각해 보면 친정부모님을 먼저 생각해서 해 놓은 표가 아님에도 기뻐해주셨다. 그 점이 미안했다.
시댁은 경상도 분 들 이어서 그냥 나훈아를 좋아하신다. 친정 부모님은 전라도 분 들 이어서 나훈아를 좋아하시진 않았다. 엄마는 조용필 팬이고 아빠는 정수라의 팬이다. 하지만 지난 2019년 나훈아 콘서트(시부모님도 친정 부모님도 2019년에 보여드렸다.) 때 이후로 아빠는 콘서트는 ‘나훈아’가 최고라고 말했었다. 이후 미스터트롯 콘서트를 보여드렸을 땐 재미없다며 중간에 홀로 콘서트 장 밖으로 나가서 엄마를 기다리기도 했을 정도로 싫고 좋음이 분명한 분이 바로 우리 아빠다(그리고 그게 나다). 또 그 이후에 다른 콘서트(나훈아가 아닌)를 예매했는데 아빠가 싫다고 취소하라고 해서 취소한 적도 있었다. 그런 까다로운 아빠가 이번 콘서트는 아무 말이 없는 것이다.
친정 부모님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효도했구나!
아빠는 예매했다는 내 말을 듣고 인터넷을 찾아본 것이다. 이 티켓은 5분 만에 매진이 되었고 나훈아가 내년 내후년 그냥 앞으로는 더 이상 공연을 하지 않을 마지막 콘서트라는 것을. 그렇게 전국을 돌다가 휘날레를 펼치는 서울의 또 마지막의 마지막 공연임을 알았던 것이다. 엄마는 내가 전화를 한 순간에 바로 같이 갈 친구네를 찾았고 바로 말했다.
“우리 딸이 나훈아 콘서트를 예매했지 뭐야. 같이 가게.”
안 봐도 비디오다. 자랑을 엄청나게 늘어놓았을 것이다.
어머님 친구분 자식분이 좋은 자리를 예매해 주셔서 어머님이 더 좋은 자리로 가는 바람에 나는 효녀가 되었다. 어머님은 미안해하시며 또 오후에 전화를 주셨는데 그 표를 친정 부모님께 드려서 좋아하신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님, 덕분에 제가 효녀가 되었어요. 감사해요”라고.
어머님도 기뻐하셨다.
언제나 어디서나 나에겐 잔잔한 행운이 있다
어쩌면 내가 좋은 좌석을 바로 선점하지 않고 이상한 자리를 예매한 그 순간도 이렇게 될 운명이었나 보다. 친정 부모님께 효도하고 살라는 하늘의 뜻. 그래서 이체를 하는 동안에도 좌석은 그대로 자리에 있었고 운이 좋게 결제까지 이어진 것이다. 역시 좋은 게 좋은 거다. 잔잔한 행운이다.
남편이 말했다. 어머님에게 서운하지 않냐고. 그 순간엔 잠깐 서운함이 올라왔지만. 그 이후에 오는 친정 부모님을 생각하니 서운함은 온 데 간데없었다. 그럼에도 시부모님도 좋은 자리에서, 친정 부모님도 보고 싶었던 나훈아의 마지막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나에게는 언제나 이런 잔잔한 운이 들어오는 편이다.
역시 나는 금손이다. 하하하.
+참고로 나는 한국시리즈도 예매한 적이 있으며, 성시경의 ‘경’ 막걸리도 사서 친구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내 예매 성공의 비결은 그냥 미쳐서 계속 예매 창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마치 멕시코의 기우제는 비가 올 때까지 하는 것처럼. 그냥 될 때까지 미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할 일이냐, 할 일도 없다고 비웃지만 내가 좋으면 그만 아닌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