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7 비둘기와의 전쟁
집에 혼자 있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어.
아파트라서 밖에서 안을 볼 수 없잖아.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니
비둘기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
그리고 이어진 비둘기와의 눈싸움이었다.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 우리 집 위로 사는 지인의 이야기였다. 공포영화가 한순간에 코미디영화가 되었다. 범죄와의 전쟁이라면 사람과의 전쟁이겠지만 이건 동물과의 싸움이라 참 어이없다. 그렇다면 비둘기는 과연 유해 동물일까.
최근 환경부는 2009년부터 도심 내 집비둘기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한 바 있다(환경부가 비둘기 대책 만든 이유, korea.kr/news/reporterView.do?newsId=148691690). 지난 주말 공원에서 한 할아버지가 가져온 견과류들을 바닥에 뿌려놓고 껍질을 벽돌로 부숴서 비둘기 밥으로 두고 가시는 걸 보았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너른 공원에 비둘기들이 날아들었다. 내년 1월부터 ‘비둘기 먹이 주기 금지법’이 시행된다니까 이제 금지입니다. 할아버지. 먹이를 주는 시민에게는 최대 100만 원까지 과태료도 부과할 수 있답니다.(…. 비둘기 먹이 금지법이 뭐길래, https://www.chosun.com/national/transport-environment/2024/06/22/SDJK3BHEZBFIBFZDSE73RYI65M/).
아침 햇살을 받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고 볕의 따스함을 느끼려는데. 푸다다닥. 도망갔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아침의 상쾌함을 가로챈 녀석들. 비둘기였다. 7년을 넘게 이 집에서 살았어도 비둘기는 처음이었다. 그들의 똥은 하얀 줄과 검정 찌꺼기로 남았다. 베란다 창문에 화분 걸이와 에어컨 실외기 위, 창살에까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화가 치밀었다.
비둘기와 나의 이야기는 전쟁영화 장르로 탈바꿈했다. 물론 내 지인도 이제는 전쟁 장르로 전향했다. 전쟁을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했다. 비둘기퇴치법을 검색했다. 버드 스파이크라 불리는 일명 ‘비둘기 똥침’이다. 비둘기가 자주 오는 일정 장소에 틈이 없이 10센티 이상의 뾰족한 침을 붙이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비둘기 퇴치제를 주기적으로 뿌리는 것이었다. 일단 버드 스파이크를 4만 원어치 주문했다(치킨 먹을 수 있는 돈인데 사실 아까웠다;;).
대략적인 정보를 얻었으니, 다음은 전문가라 생각되는 사람들을 찾아 문의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구청 비둘기 관련자와 통화했다. 비둘기퇴치법 두 가지를 위와 같이 일러주었다. 마침 구청에서는 비둘기 퇴치제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고 했다. 비둘기가 오는 이유에 대해서 고양이 밥이 연관이 있냐 물었다. “네, 100% 고양이 밥 때문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집 근처에 사는 고양이들은 상관이 없는데 이들에게 밥을 나눠주는 사람들(일명 캣맘)이 놓고 치우지 않는 밥이 문제였다.
이 밖에도 캣맘들은 밥을 나눠주는 일회용기조차도 수거하지 않은 채 아파트 밑에 방치되고 있었다. 고양이 밥이 남으면 비둘기들이 날아와 먹고 아파트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색칠하고 있었다. 구청 직원은 캣맘에게 고양이 먹이 금지 조치를 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고 했다.
이번엔 관리사무소였다. 30년이 넘은 노후 아파트에 관리가 딱히 잘 되지도 않는 터라 비둘기에 대한 문의를 해봤지, 돌아오는 답은 “논의해보겠습니다”였다. 캣맘들과 싸움이 나서 그들과 대화를 잘하지 않으려 한다며 고양이 밥 한두 그릇은 괜찮다고 했다. 관리사무소 소장이나 반장이나 아무도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이러다간 고양이와 비둘기에게 잠식당할 일을 생각하니 화가 가시질 않았다. 누군가는 해결해 주지 않았다. 내가 나서는 수밖에.
너무 답답해 아파트 1층 밑을 들여다보니 그야말로 쓰레기장이었다. 고양이 집을 만들어준다며 종이상자가 20여 개. 경비아저씨에게 100리터 마루 포대를 빌려 상자를 눌러 담았다. 스티로폼과 고양이 밥그릇으로 보이는 봉지 쌓인 플라스틱 10개. 머리를 천장에 부딪혀가며 바닥에 무릎을 흙에 묻혀가며 기어들어가 다 끄집어냈다. 그리고 창문에 하얗게 덮여있던 똥물과 똥 찌꺼기들을 닿는 곳까지 수세미 질과 물 호스로 청소를 마쳤다. 이건 정말이지 전쟁이었다.
모든 청소를 끝내니 바로 옆에서 고양이가 햇볕에 누워 갸르릉거리고 있었다. 귀여웠다. 하지만 이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먹이로 비둘기가 다른 집에 피해를 주는 것이라면 귀여운 고양이마저도 보고 싶지 않았다. 베란다 앞으로 긴 쓰레받기를 화분 걸이에 걸어두었더니 비둘기가 쉽게 접근하진 못했다. 대신 우리 위쪽 집들에 앉아서 배설할 뿐이었다.
다음 날, 버드 스파이크가 도착했다. 청소하고 쓰레받기를 밖에 빼 두어서 그런지 비둘기가 우리 집 앞으로 얼씬거리진 않았다. 조금 더 노력해 보고 돈을 쓸걸 또 행동이 앞섰다. 항상 생각을 하지 않아서 문제다. 이번에도 그랬다. 급한 마음에 일단 지르고 본 것이다. 내일 그리고 모레 비둘기들의 행방을 예언할 수 없지만 안 온다면? 위쪽에 사는 우리 집 라인의 분들에게 버드 스파이크를 나눠드려야 하나 고민했다.
비둘기로 이어진 전쟁영화는 아직 진행 중이다.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바라면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그려본다.
피스.
+ ‘길고양이는 유해동물?’(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21619)이라는 기사가 인상 깊었다. 고양이, 비둘기와 전쟁 중이시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