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나'
어릴 적부터 나를 괴롭혀 온 환각 프렌즈… 환각과의 위험한 동거 N년차다.
꾸준히 복용 중인 약으로 인해 환각 친구들이 저 멀리 여행을 간 틈을 타서, 뒷구멍으로 호박씨 좀 까보겠다. 뒷담을 몰래 하겠다는 말이다.
생생한 글을 위해 인터뷰를 한다고 가정해 보겠다. 여러분은 내게 이렇게 묻고, 나는 이렇게 답하는 거다.
Q. 환각 때문에 가장 불편한 점은 뭔가요?
A. 내 감각을 오롯이 믿을 수 없다는 점이겠죠. 저는 누가 "마성(필명)아!" 하고 불러도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어깨를 툭 치거나 제 눈앞으로 모습을 비추기 전까지는요. 왜냐하면, 환청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요. 엉뚱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진짜 그럽니다.
스스로 자기 감각을 오롯이 믿을 수 없다는 건 불쾌한 일입니다. 시야에 벌레가 보여도, 일단 기다립니다. 환시일 수도 있잖아요.
Q. 에이, 이름을 부르는데도 안 돌아보는 건 좀 그렇네요. 다른 불편은 없나요?
A. 제가 록발라드를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더 크로스'의 노래를 좋아하는데…. 아무리 들어도 항상 같은 파트에서 '지직' 소리가 나는 겁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게 환청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문제의 그날에도 남자친구와 함께 뮤직 스테이션으로 재생한 더 크로스의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요…. 남자친구가 "이거 왜 이래?"라고 묻는 겁니다! 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 얘도 환청을 듣나?' 였습니다. 찬찬히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죠. 환청이 공유되면 그게 환청이겠습니까? 그냥 소리죠. 네, 실제로 음원에 지직거리는 소리가 있던 것입니다.
Q. 환각을 보는 건 어떤 느낌인가요?
A.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의사 선생님들이 제 증상이 100% 환시가 맞다고 말씀하시긴 했는데요, 저는 지금까지도 의심하고 있습니다. 제가 봤던 게 환시가 맞을까요? 약을 아직 못 처방받아서 증상이 한창 심했을 때 5~6번 본 건데, 으음…. 공포가 너무 찌리릿 각인되어서 막상 그 광경은 기억이 잘 안 나요….
환시라는 이름값이 있는데도, 실제로 보인 게 아닙니다. 제 경우 주로 귀신의 환각이었는데요. 실제로 보았더라면, 세부적인 귀신의 모습을 묘사할 수 있어야겠죠? 근데 그렇지 않습니다. 머리가 길었는지, 짧았는지도 기억이 안 납니다. 환시 짬이 낮아서 그럴 수도 있긴 해요.
예를 들어보자면, 꿈속에서 우리가 사과를 보았다고 칩시다. 그 사과가 진짜로 색이 있던가요? 항간에 따르면 실제로 꿈속 세상을 컬러 TV로 보듯 볼 수 있는 사람도 있다지만… 많은 경우는 다릅니다. 어떤 흐리멍덩한 회색 덩이를 보고, '사과다!'하고 믿음을 갖죠. 빨갛다는 것도 사과는 빨가니까 자동으로 따라오는 인식입니다. 그것과 환시가 똑같습니다. 막상 "그 귀신의 머리 모양을 묘사해 봐!" 하면 어버버할 수밖에 없죠.
Q. 환각과 현실을 구분하기 어렵나요?
A. 네, 어렵습니다. 제 체감 난이도는, '자각몽 꾸기'급입니다. 참고로 저는 24년 인생 중 꿈속에서 꿈임을 자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나요?
없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