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나와 아버지
환청은 초등학생 때부터 있었다. 몇 살이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것이, 내 경우 환청이 마음속 목소리 형태를 띠었다. 약간 이질감이 든다는 차이가 있긴 했지만….
벼락치듯 강렬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진다고나 할까? 꿈틀거리는 생각의 전조 없이 내리친다는 것 외엔 내 목소리와 똑같았다. 아니, 목소리라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두들 머릿속으로 '아, 오늘은 춥네.'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가. 이런 생각 내지는 마음 속 소리를 목소리라고 일컫지는 않기에 헷갈린다.
이런 환청에 대해서 부모님은 알고 있었다. 무슨 경위로 알아차린 건지는 모르겠는데, 아버지가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내 머릿속에 나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내리치는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것을 '마루코는 아홉살'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 따와 '숲속 친구들'이라고 불렀다. '들'이라는 복수형 표현에서 예상할 수 있듯 환청은 단 1명의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2명이었다.
환청의 내용은 주로 다음과 같았다.
'오, 이 정도면 쌉가능이지! 해볼까?'
'잘 안 될 것 같은데. 너가 해봤자지.'
두 명이 주고받는 대화 형식을 띠기도 했고,
'방금 쟤, 너 뒷담 깐 거 아니야?'
망상을 조장하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죽여버릴까?'
같은, 서슬퍼런 분노의 목소리로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환청일 거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정체는 한참 나중에야 깨달았다.
"보통은 그런 목소리를 듣지 않아요. 환청일 가능성이 있어요."
사람을 해치려는 충동을 부추기는 목소리가 있어요, 라고 하자 의사 선생님이 답변한 내용이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약간은 이질적인 나의 친구들이 병증에 의한 것이라니. 분명 그냥 '생각' 아니었어?
그리고… 환청은 주로 감정이 격해질 때 소환된다. 가령 지하철에서 저 멀리 있던 아주머니가 가방을 휙 던져 자리를 선점하는, 악재 중의 악재가 겹친 경우….
'지금 널 무시한 거 같은데? 가만히 있으면 안 돼.'
한다.
그런 환청이 들리면 '에이, 또 환청이군. 무시해야겠다.'하면 되지 않느냐고?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환청이 들림과 동시에 그 생각에만 매몰되기 때문이다. 머리채를 잡을까? 턱을 날려버릴까? 정강이라도 차버릴까? 자의인지 의심할 새도 없이 환청이 내린 지령을 수행할 방법만을 찾게 된다.
꼭 내가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되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돌격!' 지시를 받아 거스를 새도 없이 제 발로 따르게 되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21세기 인문학을 배운 지성체 아닌가. 겨우겨우 이성적인 생각을 하며 틀어막긴 한다.
'안돼. 여기서 때리면 합의금을 물어줘야 하잖아.'
그 생각조차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는건 나쁘잖아.' 같은 것이 아니라, 바로 다음 순간 내게 처해질 곤란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룬다.
환청의 비겁한 점은, '내 의지인 척' 한다는 것이다. 재고를 할 틈도 없이 머릿속에 내려꽂힌다. 번쩍-! 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나의 진짜 생각과 구분하기 어렵고, 충동을 부추긴다. '아니야, 아니야, 그건 아니야. 잘못된 거야!'라고 말리는 내 진짜 목소리이자 이성의 끈을 투두둑 찢어버리며 튀어나온다.
사실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어쩌면, 남의 비난을 듣기 싫은 내가 병증이라는 가면을 쓰고, 숨겨둔 진심을 환청의 형태로 고백하는게 아닐까?
…그래, 바로 이 부분이다! 악랄하다는 표현이 더 없이 잘 어울린다.
'혹시 나의 진심인가?'
나 자신을 향한 신뢰를 다름 아닌 스스로 금 가게 한다.
'정답 없는 선지'를 줘놓고 정답을 말하지 못 하면 그제서야 진짜 답을 알려주는 트릭, 당해보았는가? 줄 듯 말 듯 사람을 놀리는 터키 아이스크림 같은 트릭 말이다.
"어제 내가 먹은 저녁을 맞혀 봐. 1번, 치킨. 2번, 짬뽕. 3번, 국밥."
이런 식으로 문제를 내 우리가 신나게 머리 굴리며 "음, 든든한 걸 먹었다고 했으니까 3번!" 하고 외치면 지극히 예상한 결과라는 듯이 이렇게 말하는 재수탱이 말이다.
"틀렸어. 정답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야."
그런거면 애당초 4가지를 제시하든지! 환청은 정말로, 아무런 징후 없이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다. 보기에 없는 정답을 익살스럽게 내밀고는, 잡으려 하니 도망치는 것처럼. 비겁하기 짝이 없다.
표현할수록 열 받아서 글 쓰다가 사레가 들려버렸다. 이런 환청의 페이스에 말려서 고민고민한 내가 한탄스럽다! 당신은 환청의 가스라이팅에 휘말리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