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이

1000년된 은행나무, 고양이, 중고차

by 슬기롭군

기분 나쁘게 햇빛이 쬐어오던 어느 날이었다. 아빠가 얼마 전 중고차를 샀다며, 다 같이 근처 오래된 사찰로 드라이브 가자고 했다. 마지못해 따라나섰지만 창밖을 바라보며 ‘우리 형편에 무슨 중고차인가’ 하고 언짢았다. 그래도 창문을 내리고 바람을 맞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몇일 전 아빠가 갑자기 우리를 불러 세우며 중고차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아빠는 우리 집에도 차가 생겼으니 형편이 나아진 것이라며 기뻐했다. 하지만 엄마와 나는 속으로 의심했다. 과연 형편이 나아진 걸까.

아빠는 매일 술과 손찌검을 달고 살았다. 엄마는 매일 울었고 우리는 눈치를 보며 도망 다녀야 했다. 그런 아빠가 갑자기 중고차라니. 잠깐의 바람에 아픔을 지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자꾸 떠올라 한숨만 나왔다. 나는 뒷자석에 등을 붙이고 가만히 있었다.

끼—익.

아빠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순간 놀라 무슨일이냐며 엄마에게 물었다.

“갑자기 새끼 고양이가 튀어나와서….”

로드킬이었다. 도로에 튀어나온 새끼 고양이를 우리가 친 것이다. 고양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선 내려야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아이고, 왜 튀어나와서… 얼마 전에 산 중고차인데 재수 없게..”

“우… 움직이는데요?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뭐? 야생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간다고? 우리 형편에?”

‘우리 형편에......’

그래, 우리 형편에 중고차는 샀으면서, 살아있는 것은 버려도 되는 걸까. 부모님은 다시 차에 올라타 사찰로 향했다. 고양이는 점점 멀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사찰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사고 지점에서 3분 거리, 그곳엔 1000년 된 은행나무가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았다. 나무를 보자 거대하고 웅장했다. 그런데 바람에 잎과 가지가 흔들리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쉬—이’. 마치 이곳을 방문한 살생한 자들을 반기지 않는다는 듯한 소리였다.

왜 내가 그 소리를 들었을까. 우리는 고양이를 죽인 것도 아니고, 고양이를 친 건 아빠인데 아빠는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뒤돌아본 부모님은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서로 사진을 찍으며 웃고 있었다. 평소 우리를 못살게 굴던 아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매일 매질당하던 엄마의 얼굴은 밝아 보였다. 잠깐의 여흥일까. 나는 부모님에게 ‘잠시 사찰 주변을 돌고 오겠다’고 말하고, 고양이가 치였던 자리로 걸어갔다.

멀리서 작은 형체 하나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쓰러져 있었다. 가까이 갈수록 형체는 또렷해졌다. 새끼고양이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 있었다. 하얀 바탕에 노란 줄무늬—눈은 뜬 채 하늘을 바라보며 축 늘어져 있었다.

죽은 걸까. 혐오나 공포는 없었다. 그저 이 고양이를 데리고 어딘가에 묻어주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차가 많이 다니는 곳이니 더 치이기 전에 데리고 가야 했다. 두 손으로 고양이를 받치자 목에서 ‘툭’ 하는 소리가 나며 축 처졌다. 목뼈가 부러진 듯했다. 입 주변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새끼였으니 타이어에 부딪친 충격이 치명적이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겉모습은 어여쁜 고양이였다. 그런 고양이를 안고 다시 사찰로 걸어갔다. 사찰 근처에 이르자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몇분이 지난 후 한 스님이 다가와 물었다.

“나무아미타불, 혹시 그 고양이 죽은 고양이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양이를 어디다 묻어줄 생각이니?”

나는 사고로 죽인 고양이를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어딘가 묻어주고 싶다고 했다. 스님은 잠시 고민하더니 삽을 들고 돌아왔다.

“그럼 은행나무 앞에다 묻을까?”

은행나무는 수백, 아니 천 년은 넘게 이곳을 지켜온 존재였다.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길목에 묻어도 될지 망설였지만, 나는 상관없다고 했다. 어디든 묻어줄 곳이면 됐다. 스님은 얇은 천으로 고양이를 정성껏 싸주었다. 그리고 1000년 된 은행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나무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곳을 지켜왔고 수많은 탄생과 죽음을 지켜본 수호신 같은 존재라 했다. 이 나무는 사람들이 행한 일을 기억하며, 나라에 큰 슬픔이 있으면 함께 울고, 기쁨이 있으면 가지를 흔들며 함께 기뻐한다고 했다.

아마 내가 처음에 들었던 그 소리는 고양이를 묻어주라는 소리였을까. 그런 이야기를 해주자 스님은 내가 무서움이나 두려움 없이 고양이에게 다가간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함께 땅을 파고 고양이를 묻어주었다.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자 스님은 오히려 내 행동에 감사하다며 조그마한 팔찌를 주셨다. 팔찌를 손목에 끼고 나는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오래된 사찰의 석등 아래에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문득 손목의 팔찌를 만졌다. 따뜻했다.

아까 묻어준 새끼 고양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얀 털, 피 묻은 입, 축 늘어진 작은 몸. 그 모습은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어쩌면 나 역시 저 고양이처럼, 누군가의 급한 발길에 치이고,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에 다치며, 그래도 살아보려 몸부림치던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중고차를 샀고, 우리는 사찰로 향했다. 그 길 위에서 고양이는 죽었다. 누구도 울지 않았고, 누구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저 차를 닦고, 다시 달렸다. 그 무심함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세상엔 이렇게 쉽게 잊히는 생명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나 또한 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것.

은행나무 아래 묻은 고양이는 이제 바람과 함께 잠들었겠지.

하지만 그날, 나의 마음속 어딘가엔 여전히 그 고양이가 누워 있었다.

햇빛이 비추던 그날의 도로 위처럼, 차갑고도 뜨겁게.

나는 그제야 작게 속삭였다.

“괜찮아, 이제는 내가 널 기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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