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와 온기의 교차점
입동은 겨울이 시작되는 날이다. 과거엔 11월 초임에도 눈이 내려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이제는 기후 변화로 그 모습이 달라졌다. 천문학적으로는 태양이 적도에서 북반구로 이동하며 낮 시간이 짧아지고 찬 바람이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전환점이다. 군대에서는 이 시기부터 태극기 하강 시간을 17시로 앞당긴다. 어둠이 일찍 찾아오는 만큼 하루의 무게가 더해지는 듯하다.
나에게 입동은 얼어붙는 계절이자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이다. 부사관으로 입대해 처음 맞이한 입동은 임관 한 달 전이었다. 가을이라 믿기 힘들 만큼 추운 날씨 속에서 분소대전투훈련을 받았다. 얼음처럼 단단해진 땅을 밟을 때마다 발밑에서 울려 퍼지는 딱딱한 소리가 귓가를 때렸고, 칼바람은 방상내피와 핫팩으로도 막을 수 없이 살 속을 파고들었다. 그때마다 20살의 나는 추위보다 더 차가운 세상의 이치를 배웠고 동기들과의 뜨거운 물 한 잔이 유일한 위로였지만 교육기관에 지내며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는 칼바람 보다 더 아렸기에 깊은 상처로 자리 잡았었다.
입대 전, 입동의 풍경은 엄마와 함께 김장을 담그는 것이었다. 커다란 붉은 고무대야에 절인 배추를 쌓고, 고춧가루와 젓갈이 어우러진 양념을 손으로 버무리며 한 잎 한 잎 정성껏 채워 넣었다. 엄마의 손끝에서 묻어난 매운내, 지금도 간혹 갓 담근 김치 냄새를 맡을때면 그 당시 집 화단에 묻어둔 장독대가 떠오른다. 비록 엄마의 건강이 좋지 않아 매년 이어지진 않았지만, 상태가 호전된 해마다 우리는 그렇게 겨울을 준비했다. 하지만 군복을 입은 후에는 김장한 김치를 장독대에 넣어두는것이 아닌 핫팩을 나의 관물대에 넣어두는 것이 나에겐 또 하나의 겨울 준비였다. 훈련 받는 내내 몸과 마음이 얼어붙는 순간마다, 엄마의 김치 맛이 그리웠다.
그렇기에 입동은 추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군대의 겨울은 살을 에는 칼바람만큼이나 인간관계의 냉혹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반면, 입대 전 입동은 엄마의 온기로 채워진 공간이었다. 이제 그 두 계절 사이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진정한 겨울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 얼어붙을 때 찾아오지만, 그 마음을 녹이는 것도 결국 사람의 온도라는 것을. 올해도 입동이 찾아 왔기에, 나는 군화 속에 스민 눈물의 짠맛과 엄마의 김장김치 향을 동시에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