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역몽 06화

'상처'라는 물감

슬픔이라는 스케치

by 슬기롭군

몇 개월 뒤, 엄마가 다시 돌아오셨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아빠는 엄마를 마치 잃어버린 지갑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곳저곳을 뒤지며 찾아다녔다.

자신의 잘못으로 떠나보낸 사람을 왜 다시 찾는 걸까.
그 당시 어린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잘못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
아빠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 말은 거짓말이라는 걸.

이미 ‘상처’라는 물감으로 우리 모두를 짙게 물들여 놓고, 그 흔적을 마치 지우개로 지우듯 없던 일처럼

덮을 수는 없다는 걸.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라는 걸..


엄마는 스스로의 발로, 다시 폭력이 잔존하는 그 세계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우리를 품에 안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미안하다…”

엄마는 왜 미안해하셨을까.
그 말이 나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떠났던 것을?
버리고 간 것을?
아니면, 우리를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을까.

어린 나이에 그 감정들은 모두 낯설고 무거웠다.


원망과 안도, 슬픔과 안쓰러움.
그 모든 감정들이 뒤엉켜,
나는 점점 더 복잡한 마음을 품은 채 어른이 되어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안고 살아냈다.

그날 이후, 엄마는 자신의 삶보다 우리의 삶을 먼저 살아가셨다.
폭풍 속에서도 고요함을 지켜내려 애쓰셨고, 아이의 눈에만큼은 세상이 조금은 따뜻하게 보이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내 그림일기의 풍경은 언제나 비가 오고 있었다.
눈물로 젖은 사람들, 무너진 집, 슬퍼 보이는 표정들.
그림 마지막 칸에 나는 늘 같은 글을 적었다.

“오늘은 슬펐다.”

어쩌면, 그 시절의 ‘슬픔’은 지금의 내가 이해하는 슬픔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버텨야 했던 하루의 무게였고, 말로 다 할 수 없었던 어린 마음의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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