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으로부터 배운 또 다른 사랑, 그것은 폭력이다.
가난과 폭력, 고통 속에서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는 세상에 흔하다.
나 역시 그중 하나의 이야기 속 인물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이야기를 꺼내 글로 써 내려간다.
나의 유년 시절, 가장 또렷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가족과 함께 웃으며 놀러 갔던 일이 아니다.
그보다도 선명한 기억은 벽돌을 들고 나를 죽이려던 아빠의 모습이다.
그때가 네 살 무렵이었을까.
지금도 그 장면은 생생하게 떠오른다.
넓은 공터 한가운데에서 나는 붙잡혀 있었다.
왼쪽에는 폐가, 오른쪽에는 끝없이 펼쳐진 논밭이 보이던 그곳.
아빠는 한 손에 시멘트 벽돌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나는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그 순간 들려온 말들,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어차피 필요 없으니까… 다 죽자. 죽자. 죽어야 한다.”
그 말들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정말 죽어야 하는 존재였을까?
나는 태어날 필요가 없었던 걸까?
그 자리에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아빠를 말린 건, 서로 얼굴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저, 그 상황 속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아빠는 결국 나를 그 자리에 버려두고 사라졌다.
그 시절, 나는 할머니, 엄마, 그리고 두 살 어린 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우리는 늘 술에 취한 아빠를 피해 도망 다녔다.
술을 마시지 않을 때는 누구보다 다정하고 착했던 아빠는, 술만 마시면 돌변했다.
짐승처럼.
그에게 붙잡히는 순간, 우리는 언제든 희생양이 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왜 자신을 피해 다니냐며 화를 냈고,
그날 나를 붙잡아 죽이려 했던 건 어쩌면 그 분노의 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일은 단지 하나의 기억으로 남았지만,
해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기억은 더 깊어졌고,
상처는 메워지지 않은 채 더 커져만 갔다.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에게 폭력을 당할 때,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다고 느껴질 때,
스스로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나는 내 안에 최면을 걸기 시작했다.
살아야 한다고.
살아남아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