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역몽 03화

가난과 폭력 속에서 지나온 날들 2

잘못된 환상

by 슬기롭군

어린 시절의 나는 참 작고, 약했다.
가난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없이 억울한 일들을 당하며 살아야 했다.

그날도 그랬다. 다섯 살 무렵이었을까.
집 앞 동네 길을 혼자 걷고 있었던 어느 날이었다.

마침 동네 아이들이 진흙탕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고,

그 순간 새로 세차를 마친 고급 승용차에 진흙이 튀었다.
차 주인이 뛰쳐나왔고, 아이들은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다, 곧장 한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쟤가 그랬어요." 그 ‘쟤’가 바로 나였다.


그저 우연히 지나가던 중이었는데 모두가 나를 범인이라 지목했다.
두려움에 떨던 아이들이 살기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나는 그 순간 진실보다 외면받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차 주인은 내 옷차림을 훑어보더니,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다.
“이 차가 얼마짜린지 알아? 부모 불러. 돈 받아야겠어.”

작디작은 내 몸이 흔들렸다. 아니라고, 내가 한 게 아니라고, 어린 나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작은 주먹을 쥐고 억울함을 토해냈다. 하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아니, 믿어주지 않았다.


그저, 옷이 낡았다는 이유로.

가난해 보인다는 이유 하나로.

그날,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배웠다.

진실은 때로 외면당하고, 가난은 누군가를 손쉽게 부정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은 그렇게,
‘있는 자’의 편에 더 쉽게 서고,
‘없는 자’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날의 기억은 내 안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라는 존재가 부정당했던 순간.
그리고 그 부정이 오로지 ‘가난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그것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환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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