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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를 기록하는 이유

by 슬기롭군


내가 책을 읽는 이유

나는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며 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책을 살 여유조차 없었던 집안 형편 탓에,

어린 시절의 나는 책이라는 존재와 거의 접점 없이 성장했다.

그러다 엘리트 스포츠를 통해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나는 이전과는 다른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새로운 분위기 속에서 정체성을 잃은 듯한 혼란을 느끼던 그 시기에,

학교에 새롭게 생긴 도서관이 나에게 작은 전환점이 되었다.

우연히 읽게 된 책 한 권이 계기가 되어, 독서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처음엔 소설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배우고, 여행 에세이를 통해 세상이 참 넓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역사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연대기와 과거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그렇게 독서가 하나의 습관이 되었고, 졸업할 즈음에는 '다독왕'이라는 타이틀을 안고 학교를 떠났다.

3년 동안의 꾸준한 독서 습관은 나를 군인의 길로 이어지게 했고, 20살에 입대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부대에서는 대부분의 용사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나는 사회 경험이 많지 않아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기엔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다. 그래서 더욱 독서에 몰두했던 것 같다.

책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접하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거나 면담을 할 때 책의 내용을 인용해 설명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경제서적, 인문서적, 한 사람의 삶을 기록한 전기들을 통해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나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의 고충과 생각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독서는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바쁜 일상 속에서 숨을 고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이 책을 읽었는데... 왜 기억이 나지 않을까?’

그 질문이 독서노트를 쓰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왜 이 책을 읽었는지, 어떤 부분에서 감동을 받았는지, 무엇이 내 마음을 움직였는지를 기록하고 싶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나만큼 책을 자주 읽지 않는 가족들에게 간접적으로 책을 소개하고 싶어서다. 내가 남긴 독서노트를 통해 그들도 흥미를 느끼고 직접 책을 읽어보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만의 독서노트를 만들기까지

2020년부터 독서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독서노트 양식집도 몇 권 사서 작성해보았지만, 내가 원하는 형태를 찾지 못했고,

마음에 드는 양식도 없었다.

무엇보다 대부분이 한 페이지 혹은 한 장 내에서 내용을 정리해야 하는 구조여서, 내가 느낀 점과

충분히 담기엔 늘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결국, ‘차라리 무지 노트를 하나 사서 내가 원하는 대로 꾸며보자’는 마음으로 나만의 양식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기초 양식조차 없었기에, 블로그에서 다른 사람들의 독서노트를 찾아보며 어떻게 정리하는지

살펴보았다.

그 중 내가 필요하다고 느낀 요소들만 골라서, 나만의 기준에 맞는 틀을 하나씩 만들어갔다.

지금 쓰고 있는 노트는 대구에 살던 시절, 칠성시장 학용품 도매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그림 연습용으로 사둔 노트였는데, 종이 재질이 워낙 좋아서 만년필로 글을 써도 뒷장이 번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국산’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디자인도 깔끔해서 결국 같은 디자인으로

세 권을 10,000원에 구매했다. 페이지 수도 넉넉해서 마음껏 기록하기에 딱 좋았다.


내가 처음 독서노트를 작성한 책은 아메리칸 스나이퍼였다.

처음이라 그런지 꽤 정성스럽게 구성했다.

책 표지를 프린터로 출력해 첫 장에 붙이고, 그 아래에 나만의 양식으로 기본 정보를 간단히 정리했다.

그다음엔, 이 책을 읽기 전 나의 마음 상태를 적었다.

책장을 넘기기 전에 내 마음속에 어떤 기대나 고민이 있었는지를 솔직하게 정리하면서, 책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시선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두 번째 장에서는 책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고, 인상 깊었던 문장과 구절을 필사했다.

단순히 옮겨 적는 것이 아니라, 페이지 수를 함께 기록하여 나중에 다시 찾아보기 쉽도록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느낀 감정이나 떠오른 생각도 짧게 덧붙였다.

마지막 장에는 ‘마무리’라는 제목으로, 책을 다 읽은 후의 소감을 적었다.

읽기 전의 마음과 비교해 변화가 있었는지, 어떤 부분이 나를 울리고 흔들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책을 덮은 후에도 남는 감정과 생각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이 부분엔 특히 공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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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천천히, 내가 읽은 책들을 블로그에 기록해보려고 한다.

장르를 따지지 않고, 최대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싶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진짜 나를 위한 시간으로 남기고 싶다.

하나하나 쌓여가는 독서노트가, 언젠가 내 삶의 가장 소중한 기록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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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위한 기록으로 변화하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나는 일정한 독서노트 양식을 사용해 책을 기록해왔다.

한 페이지에 책 한 권을 꼭 담아야 한다는 나만의 기준이 있었고,

그 기준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기준’이 점점 강박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글을 다 담기엔 페이지가 좁았고, 줄여 쓰다 보면 오히려 기억하고 싶은 부분들이 사라졌다.

결국,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기록’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조금 더 자유롭고, 편안하게 쓰기로 했다.

한 페이지에 다 담으려고 애쓰기보단, 담고 싶은 만큼 쓴다.

내용이 많다면 과감히 두 페이지 이상을 활용하고, 가끔은 포스트잇을 붙여 추가로 정리하기도 한다.


가장 먼저 제목과 소제목을 적는다.

그다음엔 책 표지에 적힌 한 줄 소개 문구를 가져와 함께 적어본다.

책의 첫인상은 출판사에서 정리한 이 짧은 문장으로부터 시작되니, 기록해두면 나중에 다시 봤을 때도 훨씬 생생하다.


그다음은 이렇게 정리한다.

읽은 날짜: (앞으로는 시작일과 종료일도 함께 기록할 예정)

출판사 / 저자 / 구매 혹은 대여 여부 / 별점


이제 이 정보들이 내 독서노트의 기본 틀이다.

예전에는 ‘잘 쓰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지금은 ‘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글씨가 삐뚤빼뚤하거나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더라도

그 순간의 나를 온전히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어쩌면 이게 내가 ‘독서노트’를 포기하지 않고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 아닐까?


지금도 네이버에 검색만 하면, 수많은 독서노트와 서평들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서로가 기록을 공유하고, 생각을 나누는 세상에서 나 역시 그 흐름에 작은 조각처럼 섞이고 싶다.

어느 날 문득, 책을 읽다 ‘나도 언젠가 책을 한 권 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한 분야에서 3년을 꾸준히 파고들면 누구든 책을 낼 수 있다고 들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도 언젠가 가능하지 않을까?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글을 쓰다 보면 그 말이 참 맞는 말이라는 걸 점점 더 실감하게 된다.

이제, 책을 읽고 기록하는 이 시간은 나를 알아가고, 나를 키워가는 여정이다.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한 권 한 권, 한 장 한 장.

나만의 기록을 쌓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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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양식이 많이 바뀌었다.

바뀐 양식은 2탄으로 다시한번 글을 써보려고 한다.

이 글은 2023년에 썼던 글을 다시 글을 다듬어 작성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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