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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급하지 못한 내가 얻은 것들

'나'와 '가족'사이의 선택

by 슬기롭군

몇 년 전부터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

바로 ‘계급의 의미’와 ‘나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이다.

주변에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참 열심히 산다.” “넌 정말 성실한 사람이야.”

그런데도 진급은 늘 멀게만 느껴졌다.

칭찬과 결과 사이의 괴리감이, 내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말했다.

"무언가 하자가 있는 사람들은 진급이 계속 밀리지. 이유가 있는 거야."

그 말은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왔다.

‘뜻이 있겠지. 순서가 있겠지.’

혼자 그렇게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진급을 앞둔 시기마다 나는 '나'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부모님의 건강악화로 ‘고충부사관’ 제도를 통해 부대를 옮겼고,

아이의 심리치료를 위해 1년간 별거생활을 감내한 끝에 다시 부대를 이동했고,

유산 후 휴직을 해야 했으며,

부대 해체와 둘째 임신으로 또다시 휴직했고,

부부군인의 삶으로 인해 수차례 부대이동을 반복해야 했다.

진급을 위한 타이밍마다, 나는 ‘가족’의 사정으로 인해 뒤로 밀려야만 했다.

그렇게 군에서는 늘 뒤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득 진급 시기 육아휴직이나 교육 등 다양한 상황 속에서도 진급하는 이들을 보면,

나는 한없이 초라해졌고,

‘군은 나를 그리 필요로 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과연 계급이 전부일까?

남편은 말한다.

“계급이 다가 아니야. 진급하고 몇 달만 지내보면,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생각이었는지 알게 될 거야.”

그 말에 나는 늘 위로를 받는다.


그래, 이제는 그만 비교하자.

비교는 결국 나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생각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최근에 읽은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통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진급하지 못한 내 삶 속에 장점은 없었을까?’

생각해보니, 있었다. 아니, 오히려 많았다.

진급 대상자가 아닌 덕분에 부사관으로서 다양한 부대와 사람들을 경험할 수 있었고,

중사로서의 전문성과 실무 능력을 더 깊게 쌓을 수 있었으며,

내가 하고 싶은 직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단점이 있다면,

조금 적은 급여,

군 내 위치 혹은 사회적 지위 정도랄까?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장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런 우울하고 불행한 생각은 접어두기로 했다.

나는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오늘도 그렇게, 스스로에게 최면 아닌 최면을 걸어본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군대'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보다 더 훌륭하고, 더 단단한 삶을 살아온 이들이다.

그래서 더 배우려 한다.

하나라도 배울 점을 찾고, 더 겸손해지려 한다.

그렇게 조금씩 나를 단련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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