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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길에서 또 다른 모험

어린 시절의 추억

by 슬기롭군

어릴 적,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같았다. 똑같은 길, 똑같은 풍경. 그러나 어린 마음은 그 단조로움 속에서 늘 다른 무언가를 꿈꾸곤 했다. 그래서 어느 날, 도화지 한 장에 집까지의 지도를 그려 넣기 시작했다. 큰 도로와 작은 골목을 표시하고, 그 골목마다 나만의 이야기를 붙였다.

첫 번째 골목은 햇살이 눈부셔 불의 요괴가 나타날 것만 같았고, 두 번째 골목은 그늘이 깊어 언제 암살자가 숨어들지 모르는 길이었다. 세 번째 골목은 오르막이 가파른 탓에, 굴러내려 오는 거대한 돌을 피해 벽에 바짝 붙어야만 지나갈 수 있는 길이 되었다. 그렇게 꾸며낸 지도는, 평범하기 짝이 없던 길을 모험의 세계로 바꾸어 주었다.

그 지도를 손에 들고 집으로 향하면, 늘 같던 길도 전혀 다른 길처럼 느껴졌다. 집에 도착해서는 다시 고민했다. 내일은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걸어볼까. 작은 상상 하나가 매일 다니던 길을 달라지게 했고, 덕분에 같은 골목길도 특별해졌다.

하지만 집 앞, 대문을 여는 순간, 모든 상상은 사라졌다. 현실은 변함없이 그대로였지만, 그 짧은 순간만큼은 나만의 세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그 작은 상상들이 어린 날의 길을 얼마나 따뜻하게 채워주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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