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스타트업 홍보담당의 일기
오늘 아침 일어나 임정민님의 창업가의 일을 다시 들춰 보며 생각했다. '나는 정말 꽤 오랫동안 창업가들과 일을 했구나. 그런데 창업가에 대한 글이나 영상, 창업가를 위한 글이나 영상은 참 많은데, 창업가의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나 영상은 그렇게 많진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다 보니 사회 생활의 처음을 스타트업에서 시작했다.(음반기획사에 다녔던 진짜 처음 1년을 제외한 경력이 그렇다. :-) 그 때만 해도 스타트업이라는 용어가 한국에서 쓰이진 않았었지만, 중간에 1년 2개월 홍보대행사 생활을 한 때를 빼면 커리어의 거의 전부가 스타트업에서 쌓은 경험이다.
하지만 사실 내가 스타트업에서, 창업가라 불리워지는 사람과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생각이 정리된 지는 얼마되지 않는다. 아마도 2005년 첫눈에서 장병규 대표님과 일을하게 된 것이 그 시작이었던 것 같다.
미나님~ 저는 사실 우리 회사에 홍보담당이라는 사람을 뽑을 생각은 없었지만, 좋은 사람이 회사에 들어오면 좋은 일도 만들어 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대행사에서 첫눈의 홍보 대행팀 팀장을 하다가 첫눈에 입사하게 되었을 때 장병규 대표님이 하신 이 말씀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실제로 첫눈에 입사했을 때 나에게 홍보담당으로서 이런 일을 해 줬으면 한다. 그런 일에 대한 계획을 세워봐라.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회사가 하려는 일에 대해 아주 많은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스스로 계획을 세워 이야기 하자고 했다. 계획에는 회사의 발전을 위한 항목 뿐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발전을 위한 항목에 대해서도 적을 수 있었다. 상상력을 발휘하면 발휘한 만큼 내가 진짜로 하고 싶고 원하는 일에 대해 꺼내 놓고 상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을 처음 접한 순간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 어디서 무얼 할 지에 대한 무한 자유가 처음 주어졌을 때 내가 적었던 당시의 업무 계획안을 종종 꺼내 보곤 한다. '와~ 어떻게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을 했었지? 왜 그 때 이렇게 밖에 펼쳐 내지 못했지? 지금의 나라면 이 때 어떤 생각을 더 해 봤을까?' 생각해 보곤 한다.
2007년부터 함께 일했던 창업가 노정석 대표(체스터님)는 홍보담당으로서 내 일이 어떤 곳까지 상상력을 펼쳐낼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해 준 상사다.
꼬날님은 그냥 안에 있지 마요. 나가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다녀요.
꼬날님이 가는 곳 마다 깃발을 꽂고 오세요. 꼬날님은 콩 만한 우리 회사가 이~~만큼 크게 보이게 외연을 만드는 사람이에요.
실제로 체스터님과 일하기 시작한 후 나는 '꼬날님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꼬날님은 여전히 그 회사 홍보담당인건 맞죠?' 혹은 '꼬날님이 홍보담당은 아닌 것 같아요.'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아마도 이전까지에 비해 훨씬 더 넓고 크게 상상력을 펼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무한신뢰' 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무한 자유, 무한 신뢰, 그리고 내 일에 대한 상상력이 커질 수록, 하고 싶은 일은 더욱 더 많아지기 마련이다.
얼마 전 태용님의 장병규 대표님 인터뷰 속에서 '창업이란 나답게 사는 좋은 진로' 라고 말씀하신 걸 들었다. 이 영상을 보며 생각했다. 창업가와 일하는게 행복한 이유는 이렇듯 진정 나를 찾아 가는 과정을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의 상사들은 언제나 아직 남들이 가지 않은 곳에 먼저 들어가, 아무 것도 없는 맨 바닥에서 아무 것도 갖지 않은 상태로 무언가를 일구어 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주 자주 '그게 되겠냐?' 는 이야기를 듣고, 때로는 '사기는 아니냐?' 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그들은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가졌고, 아주 다른 체계로 사고를 펼쳐 나감으로 인해 지나치게 빨리 변하거나 비약적인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나는 이런 내 상사들의 엄청나게 빠른 생각의 변화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속도, 그로 인해 벌어지는 그 난리들을 따라 변해 가는 나를 느끼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 창업가인 내 상사들로 인해 변해가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어 그것 역시 정말 행복하다. "창업가와 일하는게 행복한 이유!" - <꼬날이 간다> 55번째 brunch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