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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Aug 01. 2021

생일상 차리기, 어렵지 않아요!

전날 미리 준비해두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

남편의 생일이다. 국과 밥, 그리고 반찬이 등장하는, 이른바 지극히 정상적인 한국식 밥상이 준비되는 몇 안 되는 날 이기도 하다. 평소대로 아침은 간단히 먹고 점심이나 저녁에 한 상 차려도 좋으련만, 그래도 생일인데 어디 또 그게 쉽단 말인가.


적어도 시댁의 "아침에 미역국은 먹었고?"라는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생일 아침 미역국이 내조의 척도가 되는 이 현실이란. 정작 내 생일에는 남편이 단 한 번도 미역국을 끓여준 적이 없는 건 아시는지.


어쨌거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생일상 준비에 돌입한다. 준비의 핵심은 바로 <전날 미리 준비해 놓기!>. 쌀도 미리 씻어서 불려 놓고, 케이크도 미리 만들어 놓는다. 미역국도 미리 끓여놓아 아침에는 데우기만 하고 전도 미리 만들어 놓고, 아침에는 샐러드와 불고기 볶기 정도만 하면 끝!


이 모든 걸 아침에 한다면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혀 올 지경이다. 혹시 늦잠이라도 잔다면 더더욱 폭망일 테니, 일찌감치 미리 준비해두고 자면 당일에 준비하는 과정이 한결 수월하다.


많은 전 종류 중에 가장 추천할 만한 것은 바로 산적이다. 물론 호박전이 가장 쉽겠지만, 형형색색 비주얼로는 역시 산적을 따라올 수 없다. 소고기로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손도 많이 가고 비용 압박으로 김밥용 햄으로 준비한다. (어차피 한우불고기도 만들 거니까 이중으로 재료가 겹칠 필요 없으니)


그리고 단무지와 쪽파 그리고 버섯, 이 네 가지 재료를 순서대로 끼운 후 밀가루와 계란물을 차례대로 입혀 구워주면 완성. (물론 나는 밀가루 대신 타피오카 전분을 사용) 처음에 한 두 개만 시범을 보여주면 나머지는 아이들의 몫이다. 소소한 주방 노동에 도움을 주는 녀석들! 놀이로 생각해주니 고맙구나.

산적 가내수공업 중


다음으로 샐러드. 샐러드야 말로 정답은 없다. 냉장고 상황에 따라 준비하면 되니 가장 마음의 부담이 없다. 단, 색감은 잘 살려주는 게 포인트. 냉장고를 살펴보니 청상추와 파프리카 남은 게 눈에 띈다. 여기에 견과류와 평소에 아끼던 반건조시킨 무화과를 썰어준다. 오늘은 생일이니까, 아낌없이 팍팍 넣어본다. 이렇게 무화과 샐러드도 완성이다.

무화과 하나 들어갔을 뿐인데, 고급진 샐러드로 변신!


생일상에 빠질 수 없는 게 있으니 바로 케이크! 이 더위에 오븐을 가동할 엄두가 나지 않아 전기밥솥 찬스를 사용했다. 바로 밥솥 카스테라. 충분히 식혀준 후 슈가파우더를 솔솔 뿌렸다. 여기에 매번 등장하는 생일 픽까지. 이렇게 얼렁뚱땅 생일 케이크로 변신시켰다.


미역국은 생일상의 가장 핵심이다. 소고기 미역국 또한 기름기를 걷어내고 끓이는 과정이 번거롭기 때문에 한여름에는 패스. 새우와 감자를 넣은 미역국도 좋겠지만 어랏 새우가 부족하다. 홍합이나 바지락으로 끓이는 미역국도 맛있는데 둘째가 싫어해서 이것도 패스. 그렇다면 만만한 황태미역국 당첨. 황태는 조금 비싸도 잔가시까지 제거되어 있는 걸로 구매해야 아이들 먹이기에 안심된다.


황태를 물에 가볍게 씻어주고 잘라준 후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불려 놓은 미역도 넣고 같이 볶아준다. 온통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미리 끓여둔 진한 디포리 다시마 육수를 부어주고, 다진 마늘과 국간장을 넣어주고 푹 끓여준다. 역시, 미역국은 언제 먹어도 맛있긴 하다.

생일상의 주인공, 황태미역국


고기 러버인 남편을 위해 빠질 수 없는 메뉴, 한우불고기다. 양파, 버섯, 대파와 같은 미리 준비해둔 재료에 소고기를 양념해서 부지런히 볶아준다. 그릇에 담은 후 역시나 필살기는 바로 쪽파와 참깨로 마무리하는 것! 별거 아니지만 이게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점!

한우 불고기 납시요~


이렇게 전날 준비를 80%는 해 둔 덕분에, 당일 아침에 준비하는 데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물론 더 화려하게 차릴 수도 있겠지만 더 많이 준비해봤자 남기게 될게 뻔하니 시간 낭비, 재료비 낭비라 최소한으로 구색을 갖추면서 알뜰하게 다 먹는 편을 택했다. 결과는 역시나 대 성공.


추가로 오늘의 관전 포인트는, 바로 생일상에 남은 재료나 음식이 점심과 저녁에 어떻게 등장하는가 이다. 힌트를 주자면 남은 불고기와 산적 재료들, 이 두 가지가 다른 메뉴로 변신함을 주목하기를.



아침부터 열심히 불태웠더니 기운이 빠진다. 이럴 때는 나의 소울푸드, 떡볶이 긴급 수혈이 시급하다. 오늘의 선택은 바로 마늘 떡볶이! 아이들은 불고기 떡볶이인데, 이게 바로 아침에 소량 남은 불고기가 바로 여기에 사용되었다.



야채만 몇 가지 더해주고, 모자란 간은 간장과 설탕으로 채워주니 기가 막힌 떡볶이가 완성되었다. 그 출처가 바로 아침 메뉴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불고기의 출처는 비밀입니다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떡볶이는! 역시 매콤해야 제맛이다. 마늘을 튀김가루 옷을 입혀주고 튀겨준 후 고명으로 얹어주면 또 색다른 맛이 된다. 알싸한 매력의 마늘은 역시나 떡볶이와 잘 어울린다. 냉동실에 있던 쑥 가래떡을 사용했더니 뭔가 우락부락 비장한 느낌이다.


평소에는 고추장 특유의 텁텁함이 싫어 고춧가루로 맛을 내지만, 마늘 떡볶이에서 만큼은 고추장이 잘 어울렸다. 감칠맛이 더 극대화된다고나 할까. 역시나 떡볶이를 먹었더니 힘이 불끈 난다.


나에게 떡볶이란? 장어 부럽지 않은 최고의 보양식!



어김없이 돌아오는 간식시간. 그러고 보니 찬밥이 밀리고 밀려서 한가득이다. 찬밥 처리와 간식을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해보다가 아하! 누룽지튀김이로구나~ 어쩌다가 누룽지까지 수제로 만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물을 몇 숟가락 끼얹고 살살 눌러서 최대한 펼쳐준다. 타닥타닥 소리가 나면 약불로 줄여 장시간 구워주는 게 핵심. 성질 급한 나로서는 쉽지 않은 기다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밥 걱정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어 속이 시원했다는 후문.

오랜 기다림 끝에 완성된 찬밥 누룽지


이제는 기름에 튀길 차례. 작게 조각을 내어 충분히 튀겨준다. 에어컨 풀가동을 하며 만드는 튀김 요리란! 역시나 엄마라는 존재는 위대한가 보다.


비닐봉지에 설탕을 넣고, 한 김 식힌 누룽지를 넣고 흔들어주면 누룽지튀김의 완성이다. 맛은 과연 어떨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맛이 좋아서 깜짝 놀랐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냉장고의 골칫거리 찬밥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긴, 튀긴 데다가 설탕이 들어갔으니 이건 뭐 맛이 없으래야 없을 수 없다.


칼로리 걱정으로 에리스톨을 사용했더니, 영 그 맛이 안 난다. 설탕의 압도적인 승리! 어차피 살찌는 음식, 그냥 이럴 때는 고민하지 말고 설탕을 듬뿍 먹는 걸로.

칼로리 뺴고는 모든게 완했던, 홈메이드 누룽지튀김



저녁 메뉴에는 산적을 만들고 남은 재료들이 대 활약을 했다. 바로 셀프 김밥 재료로 말이다. 단무지와 햄은 남은 자투리를 사용하고, 산적에 사용된 계란물 남은 것도 크게 부쳐서 잘게 썰었다. 여기에 오이만 하나 곁들였더니 김밥 재료로 손색없다. 남은 미역국까지 알뜰하게 먹어주면 이로써 오늘도 남김없이 먹기 미션 성공!

산적 만들고 남은 재료들, 여기에 다 모였네?


김밥 김은 4 등분해서 그릇에 담았다. 여기에 밥과 재료들을 얹어서 먹는 방식이라 덕분에 나는 노동력을 아꼈다고 좋아했으나, 결국은 아이들의 속도가 너무 느려서 보다 못해 김밥 싸는 걸 도와줬다. 곧 치킨 배달이 올 시간이라 마음이 급했다는 건 비밀.

직접 싸 먹는 재미를 느껴주길 바랬건만

 

일단 아이들을 잘 먹여놓고, 어른들은 치킨으로 일탈을 했다. (물론 아이들도 같이 먹었다 가끔은 소량의 밀가루는 허용해주기 때문에) 생일에 받은 기프티콘을 바로 사용해주는 이런 센스! 아무리 열심히 요리를 한들, 남편의 입맛에는 라면과 치킨을 따라잡을 수 없다. (영락없는 초딩입맛) 나의 노동력은 이미 오늘 충분했으니, 나도 생일을 같이 즐기기로 한다. 오래간만에 먹는 배달음식은 역시나 천국이었다.


나의 아침밥상의 노력이 무색할 만큼 아무 감흥 없던 남편은 치킨에는 한없이 후한 점수를 줬다. 뭔가 억울하지만, 치킨이 이날 따라 더더욱 맛있던 건 나도 인정하는 바. 아 할 말이 없다. 다음에는 아침부터 치킨으로 밥상을 차려야 하는 건가.

치킨은 늘 옳구나


아무튼 생일상을 차리고, 남은 재료까지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어서 더욱 뿌듯했던 하루. 다음 가족의 생일은 둘째 아이인데 9월이니 또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그때는 생일 토퍼를 좀 다른 걸로 바꿔줄까 싶다. 메뉴는? 아직 1달도 더 남았으니 차차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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