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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Oct 17. 2023

떡볶이에 진심인 메이트를 소개합니다

맛의 감동을 좌우하는 멤버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잔소리

'떡볶이'라는 공통분모로 친해진 언니들이 있다. 만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떡볶이 맛집으로 발걸음이 향한다. 오픈런은 기본이요, 푸짐한 메뉴 주문은 필수다. 남들은 브런치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모일 때, 우리는 비장하게 앞치마를 두르고 새빨간 떡볶이를 거침없이 먹는다. 자주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기적으로 꼭 함께 먹어줘야 한다. 이런 우리의 루틴이 때로는 일종의 경건한 의식과도 같이 느껴진다. 아무튼 이때만큼은 스트레스가 저만치 달아나는 듯, 세상 홀가분한 기분이다.  

  

셋 다 초등학생 아이를 둘 씩 키우는 비슷비슷한 상황인데, 여느 평범한 엄마들처럼 학원 정보와 같은 교육이나 학습에 대한 논의 따위는 도통 대화의 주제로 나누지 않는다. 물론 교회에서 만난 사이이기 때문에 신앙에 대한 이야기는 빠질 수 없지만, 그 외의 우리 대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주제는 바로 한결같이 '떡볶이'.


신상 떡볶이에 대해 활발하게 지식 공유가 이뤄지고, 구매 링크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기도 한다. 생생한 시식 소감문을 나눌 때면 나머지 멤버들은 방청객 못지않은 리액션을 선보인다. 마치 떡볶이 간증에 제대로 은혜를 받는 집회 현장인 듯하다. 다음에는 어떤 곳에 가볼지 심도 있게 토론하기도 하고, 최근에 다녀온 떡볶이 맛집에 대한 신랄한 비평도 이어진다.


사뭇 진지한 이 토론의 분위기가 고조될 때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니, 떢볶이가 뭐길래 우리가 이렇게 목숨을 거는 거야?"라며 한바탕 웃게 된다. 서로의 집에 들르게 되면 냉동실 한켠에 곱게 쟁여 둔 아끼는 떡볶이 한 팩을 기꺼이 나누기도 하고, 생일 선물로 떡볶이 밀키트와 멜라민 접시(세상 레트로한 분식 그릇)를 보내기도 했다.


얼마 전 오징어 요리 전문점을 같이 간 적이 있었는데, 떡볶이가 아닌 오징어 불고기를 먹는 게 영 어색하게 느껴졌다. 우리의 메뉴는 늘 떡볶이였으니까. 떡볶이에 일편단심 충성을 다짐하다가 몰래 바람피우는 기분이랄까? 따지고 보면 떡볶이나 오징어불고기나 똑같이 빨간색 양념에 맛도 비슷한 음식인데 말이다. 왠지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서로 쿡쿡 거리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다음에는 원래대로 떡볶이집이나 가자"라며 대화를 매듭지었다.


숭실대 앞의 즉석떡볶이 집의 에피소드도 빠질 수 없겠다. 아이들을 학교에 등교시키자마자 그 길로 바로 집합했다. 이토록 일찍 문 여는 떡볶이 맛집이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하면서 말이다. 앞으로 조찬회는 여기서 하면 되겠다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느긋하게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주문을 하면서 너무 이른 아침이라 양이 과할까 봐 2인분만 시켰지만 결국 1인분을 추가하고, 볶음밥도 2개나 주문하고야 말았다. "아니 그러길래 처음부터 그냥 3인분 시키지 그랬어!"라는 주인아주머니의 핀잔에 "아이고 저희가 실수했어요~  떡볶이가 너무 맛있지 뭐예요? 이렇게 아침부터 많이 먹을 줄 몰랐거든요. 다음에는 아주머니 말 잘 들을게요, 죄송해요!"라며 능청맞게 응수하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의 떡볶이 추억은 켜켜이 쌓여가는 중이고, 서로 간의 우정도 끈끈해지고 있다. 소중한 떡볶이 메이트가 있어서 그 존재만으로도 참 든든하다.  




떡볶이 메이트로 빠질 수 없는 멤버로 언급할 사람은 바로 나의 친언니이다. 지금 연재 중인 떡볶이 글에 가장 열렬한 지지를 보내주고 있는 가장 큰 조력자이기도 하다. 우리의 대화는 떡볶이로 시작해서 떡볶이로 끝나기도 하고, 다음에 반드시 섭렵해야 할 떡볶이 맛집을 세상 진지하게 탐색하는 사이이다.


서로의 삶이 바쁘다 보니 시간과 에너지 부족하다는 현실적인 문제들로 어쩔 수 없이 학교 앞이나 집 근처의 떡볶이집을 주로 가게 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짬을 내어 떡볶이 투어를 이어가곤 한다. 최근에는 휴가 중인 형부까지 대동해서(강제 운전 담당) 명지대 앞의 엄마손떡볶이를 다녀왔다. 온몸이 짜릿하게 전율하는 듯 큰 감동을 느끼며 신나게 떡볶이를 음미했다. 비록 추억의 못난이가 없어서 아쉬웠지만(코로나 시즌에 공장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는 안타까운 소식) 그 맛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았다. 주인아주머니께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주셔서 고맙다는 진심 어린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언니는 점심시간에 연구실에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차마 모양 빠지게 "즉석떡볶이 먹으러 가자!"는 제안을 하지 못해서 한동안 끙끙 앓았다며 울분을 토했다. 결국은 참다못해 홀로 유유히 빠져나와 시장에 가서 떡볶이를 먹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후식으로 근처에 도넛까지 야무지게 섭렵하고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대리만족이라도 하듯 통쾌함을 느꼈다. 바로 이럴 때 용기가 필요한 거라며, 진짜 잘했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다행히도 당분간 언니의 떡볶이 앓이는 잠잠해질 듯하다. 아무튼 우리 한 자매의 떡볶이 사랑은 못 말린다.  


우스갯소리로 지금 하는 연구 말고, 나랑 같이 '떡볶이연구소'나 차리자고 했다. 아니면 그냥 떡볶이집을 차려야 하는 거 아니냐며 말을 던졌다. 장난으로 꺼낸 말이지만, 나보다도 성질이 급한 언니는 당장에라도 실행에 옮길 듯 불타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꽤나 구체적으로 대화를 이어갔으니까. 아마 언젠가는 상상이 현실로 이뤄지지 않을까? 연구를 핑계로 전국 곳곳의 떡볶이 맛집으로 출장을 다니고, 파는 양 보다 먹는 양이 더 많아 밑지는 장사를 하게 될 테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의 소중한 떡볶이 메이트들이 한결 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을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순정 떡볶이를 좋아한다.

40대라는 나이 탓도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요새 유행하는 로제 떡볶이나 마라떡볶이와 같은 메뉴보다 청순한 버전의 일반 떡볶이를 선호한다. <Simple is the best>라는 진리는 떡볶이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하다못해 치즈떡 보다도 그냥 떡이 낫다고 본다. 평범함이 오히려 질리지 않고, 그 맛의 깊이가 더 있다고 믿는다.


둘째, 우리에게 떡볶이란 곧 '생존'이다.

단짠의 정석인 떡볶이는 알고 보면 다이어트에 최악의 음식이다. 자극적인 맛은 기본이요, 인공조미료도 첨가되고, 반조리 식품은 어찌 보면 인스턴트 음식이다 보니 건강에도 그리 좋을 건 없다. 하지만 몸 건강보다 정신 건강을 챙기려면 떡볶이는 없어서는 안 될 전투식량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날 때, 떡볶이를 어떻게든 재빨리 입에 넣어 줘야 진정이 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관리에 이 보다 더 탁월한 음식은 없다고 굳게 믿는다.


셋째, 감동파괴범인 남편은 사양한다.  

떡볶이를 경건하게 영접해도 부족할 판에, 를 치는 남편은 애초에 떡볶이 메이트로는 영 부적합하다. 이상하게도 똑같은 분식집의 똑같은 메뉴를 시켜도 언니들과 먹을 때와 남편과 먹을 때의 감흥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이게 쌀떡인지 밀떡인지도 논의해야 하고, 튀김이나 면 사리를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도 정해야 하며, 양념 재료를 분석하며 열띤 토론을 해야 함이 마땅하거늘 남편은 별 생각이 없다. 개탄할 노릇이다. 아무튼 같이 조잘거리며 맛을 비평하며 먹는 그 재미를 놓칠 수 없기에 남편은 웬만하면 떡볶이집에 동행하지 않는다. 부득이 남편과 같이 떡볶이를 먹게 되면, 그럴 때마다 '멤버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하는 바이다.




한강 공원을 달리다 보면 우르르 여럿이 함께 달리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뿐만 아니라 떼를 지어 자전거를 타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운동만큼은 혼자를 고집하는 나로서는 이해 불가한 장면이다. 떡볶이는 단체전이 맞다고 굳게 믿으면서, 왜 다른 분야에는 같은 원리를 적용하지 않았을까? '아니 개인적으로 해도 충분한 운동을 왜 굳이 저렇게 같이 모여서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던 그간의 부정적이고 편협했던 시각을 반성한다.


떡볶이야 말로 여럿이 함께 즐겨야 한다. 그래야 즐거움이 커진다. 인간의 소화량은 한정적이지 않던가? 그렇기에 볶음밥과 다양한 사이드 메뉴까지 풀코스로 제대로 먹으려면 여럿이 모일 수록 이득인 셈이다. 떡볶이를 제대로, 더 맛있게 즐기려면 필연적으로 공동체를 이뤄야 하는 이유다. 아무튼,


떡볶이 메이트들과 느끼는 '떡볶이의 즐거움', 절대 포기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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