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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깨는 현석이 Aug 25. 2019

19.08.24 - 뭘 해 먹고살아야 해요?

휴학생 짧은 일기.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


이 세 가지는 지난 2년간 끈질기게 내 머릿속을 뒤집어 놓았다가 가슴을 뛰게 했다가 다시 속을 뒤집어 놓았다가 했던 것들이다. 나는 지금 뭘 선택해야 하는 걸까. 누구를 잃었을 때처럼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이다.



나는 지금 고향에 내려와 있다. 커밍아웃 후 처음으로 가족들을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그간 나를 괴롭혀왔던 가족들 간의 관계에서 오는 분노나 죄책감에서 해방되고 싶어서 이기도 한 이번 본가 방문은 역시나 내 짧은 인생이 늘 그랬던 것처럼 내 계획대로 절대 되어가지 않고 있다. 여전히 엄마는 바위가 되어 겁을 내고 나는 계란이 되어 바위에 몸을 던진다.  역시 부서지는 건 내쪽이라고 느낀다. 모든 문제가 그렇다고 할 수 없겠지만 모든 문제가 그렇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이렇게 내 안팎의 세상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생기고 있지만 지금의 내 정신으로는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오늘은 딱 한 가지. '지난 2년 동안 했는데 안됐잖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지난 2년 동안 했는데 안됐잖아. 나의 진로. 나의 커밍아웃. 나에게 가족의 의미나 같이 보낸 시간들 같은 금기어들을 잔뜩 꺼내어 널브려 놓고 엄마와 내가 겨울철 스티로폼처럼 싸늘하고 뻑뻑하게 굳은 분위기 속에서 비수 같은 말들을 서로에게 수 없이 던지는 동안 이상하게 내 가슴에 정통으로 와서 깊게 박힌 말은 이거였다. 말의 힘이 참 대단한 게 나는 이 말을 들은 이후로 그 어떤 것에도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사실 여전히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겨우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는 건 어젯밤 혼자 '폭풍 후 엉망이 되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마음'을 조금이나마 키보드로 탈곡했기 때문이다. 분노의 쭉정이를 키보드로 두드리고, 절망의 알맹이만 나에게 남아 있어서 조금은 감정의 무더기에 덜 짓눌리는 느낌이다.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좀 충격적이다. 지금 내가 겪는 절망감은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내가 이미 '안된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있었고 끊임없이 맷돌을 굴리며 고민하고 있었고 일상적인 괴로움을 겪으면서 어떻게든 한텀씩 한텀씩 글을 쓰거나 영상을 만들고 사람들을 만나서 입을 조금씩 떼면서 계속해서 나는 노력하고 있었다. 내가 가진 마음의 병을 어떻게든 낫게 해 보려고 내가 지금 낼 수 있는 최고의 힘을 항상 내기 위해 애를 썼고 그 모든 게 절대 쉽지 않았는데. 수도 없이 강박이나 불안이 올라오려고 할 때면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인터뷰 영상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언제나 절대적으로 시작입니다!'


내 시간들은 앞으로 시작으로만 가득 차 있으며 언제나 도전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다는 자기 최면들. 그리고 자기 최면이 필요했던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시간들. 뭔가를 다짐하고 엉덩이를 떼며 혼자 걸었던 수많은 시간들.

모르겠다. 그 시간들을 어떻게 설명할까. 나는 그 시간들을 지금 설명해내지 못하겠다. 단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무엇도 되지 않았다. 되지 못했다.

내 작가의 서랍에도 카카오톡 내게쓰기에도 나이키 러닝 앱 메모에도 내 외장하드에도 지난 시간 동안 나를 연구했던 실패 자료로 가득한데 더 이상 무슨 실패의 증거가 필요할까. 나는 매일매일 실패하고 다시 '언제나 절대적으로 시작입니다!'를 수없이 외치고 또 실패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았더니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그냥 이 모든 게 헛짓이었으며 무언가 되기 위해 무언가를 했었어야 했을까. 정말 안타깝게도 '어른들'이 늘 이야기해왔던 옆에서 뛰고 있는 친구들과 그들의 보폭, 그들의 속도, 그들의 방향, 그들이 흘리는 땀과 눈빛 표정 손짓 발짓 몸짓 모든 것이 다시 눈에 띄기 시작했다. 눈에 띄기 시작하니 조급해졌다. 조급해지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조급함으로 무언가를 할 에너지 같은 건 이제 나에게 없었다. 그러지 않기로 결심했으므로. 있다고 한들 그러고 싶지 않다. 얼마나 끔찍한 기분인지 정말 잘 알고 있으니까.


이제 어쩌지. 2년의 시간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린 것 같고 자신감은 생기지 않는다. 다시 또 고민해야 하는 시작점에 놓인 기분이다. 이제 어쩌지. 그럼 이제는 어쩌지. 충분히 일탈을 즐겼으니 다시 얌전히 학교로 돌아가 어떻게든 먹고 살길을 모색하는 선택지만이 나에게 남아 있는 걸까. 어떻게든 내 박자로 춤을 추다 보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 무지렁이 같은 내가 너무 창피하고 그렇다고 마음껏 춤을 춰보지도 못했으니 너무 억울하다.


나는 그래서 그냥, 이제 잘 모르겠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수 있으며 뭘 해야 하는지.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슈퍼-어니스티(super honesty) 해지지 않는 이상 가장 알기 어려운 영역이지 않은가. 어찌 보면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가장 궁지에 몰렸다고 느낄 때 본성이 나올 것이고 가장 솔직한 마음을 스스로 알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지금은 그 무엇도 알고 싶지 않고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이쯤 되니 정말 문제의 본질은 이게 아닐까 싶다. 왜. 대체 어째서. 나에게 엄마의 말은 왜 항상 이렇게도 무겁고 크고 아플까. 내 마음은 왜 또 엄마를 죄인으로 만들고 마는 걸까. 나는 뭐가 문제라서 이렇게 생겨먹은 걸까. 회복되지 않는 상처와 분노. 그리고 늘 뒤따라 오는 죄책감과 자기혐오. 나는 이래서 그토록 항상 그와 그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던 걸지도 모른다. 이게 내 마음 탐구의 마지막 종착역일까. 아니면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일까.


유튜브나 브런치에서 혹은 어딘가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그랬듯 훌훌 털고 일어나거나 마음 굳게 먹고 다시 펜을 잡거나 하는 일이 나에게 일어나려면 얼마의 괴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또 마음이 누더기가 되어야 할까. 왜 나는 하루 종일 이런 절망감과 싸워야 할까. 나는 왜 이런 사람인 걸까.


그 아무것도 되지 못한 지나온 시간 덕분에 단 한 가지 지금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면 이 괴로운 감정을 나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 괴로운 방법을 나는 어떻게도 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겪어온 나의 메커니즘으로는 온 마음과 몸을 다해서 피하려고 발버둥 치고 도망치면서도 결국 이 모든 것을 내가 다 겪어야만, 내 마음은 그제야 나를 놔줄 것이다. 나는 그때가 되어야 내가 어떤 시간을 겪었는지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 그래서 정말 '지금'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이고 그걸 알아챈 그때의 내가 '지금' 원하는 게 무엇인지 따위들을 아주 조금. 정말 조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언제나 절대적으로 시작입니다!'같은 투지 넘치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말을 읊조려볼 수 있겠지.


나의 휴학은 이제 몇 달 남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만들던 영상의 시리즈물을 완성하기로 한 날은 더더욱 몇 달 남지 않았다. 나는 또 저따위 말을 읊조리면서 다시 일어나서 뭔가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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