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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깨는 현석이 Aug 27. 2019

19.08.27 - 같이 통과하고 있습니다.

휴학생 짧은 일기.

"Mom. We will gonna get you through this."

그레이스 & 프랭키 중에서.


나는 그냥 원래 잘 운다.

그리고 아주아주 오랜만에 또 울었다. 엊그제 그렇게 힘들 때는 눈물 한 방울 안 나오더니. 오늘은 왜 그렇게 또 울었는지.


오늘은 우리가 어떻게 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적어도 우리는 지금 함께 통과하고 있다. 나만 도망치지 않는다면.






어렵게 또 마주한 엄마와의 식사자리에서 엄마는 또 애를 썼다. 나는 또 어른스러운 누군가를 연기하며 다른 세상으로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었고. 그렇게 어색하고 불편하고 익숙한 자리가 끝이 나고, 우리는 우연히 한 치킨집을 발견했다. 아주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꾸며내는 치킨집이었다. 아주 옛날이 아니지만 나에게는 태어나기도 전이었던 시절의 노래들이 하얀 스크린을 채우고, 그 시절 내 또래 친구들이 모였을 그런 공간을 제법 재현했을법한 그런 공간. 흔하게 요즘 감성이었지만, 한 가지 새롭게 경험하는 것이 있었다면 엄마와 함께였다는 것이다. 나는 엄마와 술집에 마주 보고 앉아보는 게 소원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우리 엄마가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우리 엄마를 정말 잘 모른다. 엄마가 언제 뭐가 불편한지. 엄마가 언제 뭐 때문에 기분이 좋은지. 엄마가 언제 무서운지. 엄마가 뭘 싫어하는지. 잘 모른다. '엄마가 어떤 기분일 때 내가 어떤지'만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 기분을 어쩌지 않는 엄마였으면 좋겠다거나 내가 무섭고 불안해지지 않을 수 있는 엄마였으면 좋겠다거나 그런 생각들을 늘 했던 것 같다.



'아. 그러고 보니 엄마는 밥때가 아닌데 나와 밥을 먹으러 나왔구나. 이 글을 쓰면서 또 가슴이 철렁한다. '


엄마가 동생과 함께 있는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는 굳이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따로 나와 꽤 떨어진 시골집에 혼자 지내는 중인 나에게 밥을 사주겠다 했다. 엄마는 혹여나 내가 또 싫은 내색을 비치며 억지를 부릴까, '먹기 싫으면, 너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따로 먹던지'라는 말을 세 번 네 번이나 반복했는데 나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가 아니라 엄마가 또 내가 대답한 말을 세 번 네 번이나 넌지시 물어보듯 물어보지 않는 엄마의 말투를 들었다. 그리고 또 짜증을 냈지. 아 알았다고! 대답했잖아! 가겠다고! 엄마는 나와 밥을 먹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거절할까봐 걱정했던 것 같다.


'나는 정말 엄마를 모르는구나.'


엄마는 덥고 추운걸 잘 견디지 못한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다고 했었다. 엄마는 추석이나 설 명절에 전을 부치고 오면 다음날 지독한 몸살을 앓았고 큰집으로 가는 우리를 배웅하는 엄마의 얼굴은 흙빛이었다. 그때 엄마는 미안해했던 것 같다. 시댁에 우리를 아빠와 우리끼리만 보내는 것을. 항상 미안해했던 것 같다. 엄마는 우리를 힘에 부쳐했었다. 그리고 그래서 항상 미안해했었던 것 같다.


오늘은 아주아주 더웠다. 잠깐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달리기를 했더니 얼굴이 얼룩덜룩 탈정도로 땡볕이 뜨거웠다. 엄마는 소리 지른 나에게 밥을 사주겠다고 나왔다. 이 땡볕에 걸어서 나왔다. 그리고 굳어있는 나에게 농담도 했다. 나는 뭐했더라. 저기 아파트에 칠 새로 한다고 한마디 했었던 게 다였던 것 같다.


밥을 먹을 때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나에게 하지 못하니 동생에게 계속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에게 넌지시 동생 이야기를 했다. 나는 창밖을 봤다.



우리는 아주 배부르고 비싼 밥을 먹었다. 비싼 밥을 먹으면 비싸다고 한마디 꼭 하던 엄마는 오늘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나씩 기억이 나네. 엄마는 어딘가 정말 조심스러웠다. 눈에 띄게 말이다.


그리고는 헤어질 예정이었다. 그러다가 옛날 통닭 한 마리에 4500원 하는 그 치킨집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시골집에 돌아가서 오늘 밤을 기름지게 보낼 수단이 필요했고 그래서 그냥 치킨을 사러 들어갔다. 엄마와 동생도 같이 들어갔다. 나는 짐짓 어른 인체 주문을 하고 계산을 했다. 그리고 앉아서 치킨을 기다리는데 그때의 노래들이 나왔다. 나는 또 동생에게 짐짓 아는 체를 했다. 그런데 가만히 노래를 듣던 엄마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참, 이 노래 가사 외운다고 고생 많이 했다.


엄마 때는 가사를 받아 적었댔다. 뭐였지. 김수희의 애모? 엄마의 입에서 많이 듣던 노래였다. 그랬구나. 엄마는 그 노래를 외우다시피 하고 있었었지. 그 가사를 외우는 데 참 고생을 했었댔다. 드디어 나는 아는 체 하지 못하는 엄마만의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하던 엄마는

갑자기 기계가 무섭댔다.


엄마는 너무 많은 변화를 겪어서 기계가 무섭댔다. 전화에서 삐삐, 핸드폰, 스마트폰으로 급하게 변해오는 그 시기에 겪었던 그 기계들이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그렇게 막 변하는 게 무서웠다고. 그래서 얼마 전 셀프 주유소에 가서 주유를 하는데 그것도 무서웠댔다. 그래서 항상 주유는 아빠한테 부탁을 했는데 혼자 해야 하는 상황이라 해야만 했었다고.



그런데 나는 참 기계가 무서워.


한번 하고 나면 안 무섭잖아. 그래도 할 줄 알아야지.


알아. 그런데 아는데 안 있나. 그걸 딱 할라카면 겁이 팍 난다. 그냥. 마음속에 그런 게 있어. 무서워서 불편한 마음이 있어. 그래서 손이 안가. 겁이 나서.



엄마가 뭘 무서워한다는 이야기를 내가 들어준 적이 있었나. 기억이 안 난다. 설령, 있었다 한들 엄마가 무서워한다는 이야기를 정말 내가 들었을까. 그럴 때 나는 아는 체를 했던 것 같다. 나는 오늘 셀프 주유소에서 주유기 손잡이를 뒤로 탁 거는 걸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는 엄마에게 방법을 알려주는 게 죄스러워서 아는 체를 더 못했다.



그냥. 그렇게 하면 되지 뭐...



그리고 그때 치킨이 나왔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엄마는 아쉬워하는 표정인 것 같았다. 엄마는 술집을 싫어한다. 정말 정말. 술을 좋아하는 아빠 때문에 속상했던 기억들이 많고, 원래 체질에 술이 맞지도 않으며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술에 취한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엄마는 그 치킨집을 나서는 걸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더 듣고 갈까? 조금 더 앉았다 듣고 갈까?



그제야 다급해졌다. 다급해진 마음에 엄마에게 물어봤는데 엄마는 됐댔다.



나중에. 나중에 다시 오지 뭐. 아빠랑 여기 오면 되겠다.



아빠랑 여기 오면 되겠다는 말도 처음 들은 것 같았다.

맙소사. 나 엄마를 처음 만난 건가. 엄마는 우리한테 먹을 걸 나눠 줄 때, 본인은 맛봤으니 됐다고 할 때, 딱 그 때 짓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웃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다른 표정이 있는 것도 아닌 미묘한 표정. 나는 엄마를 몰라서 그냥 엄마가 아쉬워하는 게 아닐까 지금 그냥 추측할 뿐이다.



우리는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뒤 편 길로 걸어 내려왔다. 그 길을 물고 꺾어 내려오는 버스정류장에서 나는 버스를 타고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므로. 내가 다닌 초등학교 뒤 편 길을 다 같이 걷는 건 마치 엄청 오래돼서 어디 있었는지도 모르는 앨범을 다 같이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길은 정말 여전했다. 어릴 때의 기억을 누군가 그대로 구현해준 것 마냥 여전했다.



저 문방구가 아직 있다고?

풀하우스.. 맙소사 안에 인테리어도 여전하네. 저기서 아직도 떡볶이 파는구나.

저기 칼국수집 맛있는데. 참 많이 먹었는데.



코너를 돌아 대로변을 물고 내려오는 길은 그만치 여전하지는 않았다. 내가 무서워했던 ‘아줌마’가 운영했던 문방구는 여전히 같은 아줌마가 하고 있댔다. 다만, 초등학교 졸업할 때쯤 생긴 과일집이 문을 닫았고 내가 정말 좋아했던 떡볶이 집들은 학교에 애들이 줄면서 줄줄이 문을 닫았다고 했다. 지금은 그런 게 세상에 있었는지도 잊고 사는 비디오방은 본비빔밥인지 교촌치킨이 되었다. 그런데. 그 비디오방 건너에 내가 어렸을 적 매일 아침마다 학교를 다니던 골목길이 여전히 열려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울었다.


많이 바뀌었지만 이 동네는 여전하네. 내가 대구에 와서 하루 급하게 도둑잠을 자고 부리나케 백수 과로사하는 핑계를 대며 청주로 다시 올라가는 짓을 몇 년이나 반복하는 동안 이 동네는 많이 변했고 또 그러면서 여전했다. 그리고 내가 매일 같이 학교를 다니던 그 골목길은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 골목길은 집에서 10m나 떨어져 있나. 떨어져 있다고도 못하는 그 가까운 골목길, 그 골목길과 초등학교 뒷길을 여전하다고도 혹은 많이 변했다고도 단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을 정도로 나는 바빴나. 나는 지난 몇 년간 그 골목길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할 정도로 시간이 없었나.


이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아니 내 탓이다. 엄마를 잘 알지 못하는 것도. 그 동네가 여전한 모습과 변하는 모습을 단 하나도 알아채지 못했던 것도. 그런 사실들을 몇 년이 지난지도 모른 지금 발견한 것도. 그 모든 사실을 지금에서 새로 발견한 것 같을 정도로 우리 동네를 한번 걸어본 적 없었던 내 지난 시간들도. 그게 모두 원래 피에 흘렀듯 익숙하고 그래서 또 새삼스러운 그 감정이 생경하다는 사실이. 모두 다 내 탓이었다. 나는 집에 내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번도 엄마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마 그래서 눈물이 났다.




엄마와 동생은 먼저 들어가라는 내 만류에도 버스를 함께 기다렸다. 엄마는 나를 안지 않았다. 우리는 으레 안았는데 오늘은 엄마가 나를 안지 않았다. 엄마는 나를 정말 조심스레 대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 손을 꽉 잡았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급하게 출발하는 탓에 제대로 보지도 못한 남겨진 두 모습들이 흐려졌다. 엄마는 그때 무슨 기분이었을까.


커밍아웃. 쌓인 원망과 분노의 시간들. 혼자 외로워야 했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에게서 철저하게 무시해왔던 나의 책임을 온 눈으로 담고 돌아오는 길에 당분간 고향을 떠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비겁하게도 나는 이 사람들에게서 늘 그랬듯 도망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함께 이 고통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적어도 또 도망치지 않았으니 나에게는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새로운 단계의 선택지들이 살포시 놓였다. 더 이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괴롭지도 끔찍하지도 않게 정말 깃털처럼. 덜 괴롭고 싶다면 덜 비겁한 선택을 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주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 있다면 여기에 남겠다. 이 지독하고 지긋지긋한 가족을 용서하고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다면.

이 고통의 시간을 함께 마주 보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까. 확실한 건 엄마는 이미 예전부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나는 엄마 손을 진짜 한번 잡아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


we will gonna get us through this다. 우리는 어쩌면 한참이 지난 후에 비로소 우리를 얻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함께 겪어내서.  우리는 함께 긴 터널을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겨우 한 발짝 때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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