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19
예전에 논술 학원을 다녔었다. 엄마의 오랜 친구 분이 운영하시는 글방 같은 곳이었다. 낡은 아파트 앞 상가 2층에 있던 글방은 서당이라고 불렸다. 글방 안에서 복도 쪽에 있던 벽들은 바람 숭숭 드는 통유리들이 하나 둘 셋 넷 세워져 있고, 화장실은 차고 동그랗고 이상한 물결무늬가 그려진 철제 문손잡이를 열쇠로 따고 들어가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한문을 가르치기도 글짓기를 가르치기도 했었는데, 우리는 책을 읽고 이야기하다가 격론이 오가는 주제들에 대해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걸 했었다.
나는 글쓰기가 좋았다. 읽어오라는 이야기를 제대로 읽어가지도 않은 채 목소리 높여 떠오른 생각들을 주섬주섬 떠드는 건 좋아했던 얄팍하고 불성실한 학생이었고 매번 글은 집에 가서 써오겠다며 오늘은 빨리 수업을 마치자고 떼를 쓰곤 했었지만. 그래도 한 번 글을 쓰면 온 세상이 내 마음과 그걸 옮겨 적는 내 손을 중심으로 흐르는 것 같은 부지런한 적막함이 좋았다. 글을 다 쓰고 나서 선생님은 꼭 읽어볼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 시키셨다. 원채 뭐든 느린 나는 시간에 쫓겨 다른 친구들이 글을 읽는 동안 내 글을 숨 가쁘게 마무리 했고, 다른 친구가 글을 다 읽어내기 무섭게 손을 들고 내가 쓴 글을 힘줘서 읽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글을 잘 썼는지 자랑하고 싶어 했었다.
좋아했고, 자랑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그걸 참 사랑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이랑 상가 앞 꼬질꼬질한 플라스틱 천막으로 덮인 트럭에서 파는 떡볶이와 튀김을 먹을 때, 오늘 보낸 시간에 조금의 의심 없이 ‘나중에 돈 벌면 포장마차에서 혼자 한 만원어치를 사먹어야겠다’는 다짐을 배부르고 행복하게 할 수 있었다.
시간이 자꾸 지나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어 버린 오늘. 이슬아 작가님의 부지런한 사랑을 읽고 그 날이 생각났다. 이슬아 작가님에게 글쓰기 수업을 듣는 글 속의 아이들이 그 때의 나였기 때문에 그냥 생각났다. 나에게 그런 날이 있었다는 걸 새삼 다시 기억해낸 건 그런 날을 다시 살고 싶은 그리움일수도 있고 다른 어떤 것 일수도 있을 것이다.
약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나의 우울증을 끝낼 수 있는 방법도 그런 기미도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글을 써봤다. 혹시 내가 아직도 포장마차에서 만원어치 떡볶이와 튀김 오뎅 순대를 혼자 다 먹고 싶어 하진 않을까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