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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석이 Feb 21. 2021

21.02.21 - 억지로 쓴 글

21.02.21


나는 아르바이트를 참 많이도 했다. 고등학교 때 웨딩뷔페로 시작했던 아르바이트는 수능이 끝나고 주유소와 고깃집을 시작으로 육회집, 쭈꾸미집, 백반집, 빕스, 카페 같은 각종 요식 업종을 두루 거쳐 백화점에서 안마기와 청소기도 팔아보고 옷가게에서도 일해 봤다. 그 뿐이랴, 그 때 그 때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한 단기 알바도 끊임없이 했다. 쿠팡, 어린이날 마트, 이름도 생소한 지역 축제부터 엑스포 리셉션과 패럴림픽 보안요원까지.


대체로 돈 때문이었지만 오로지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노동들은 새로 시작할 때마다 잘 해내고 싶은 각각의 도전과제들이었다. 조금 더 빠르고 능숙하게 밥을 볶거나 옷을 개서 정리하거나 처음 겪는 유형의 손님을 당황하지 않고 응대하거나 하는 등의 새로운 크고 작은 도전과제들을 계속해서 수행해나가면서 나는 겨우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다는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그 때 느꼈던 안정감은 꽤나 숨가빴고 늘 불안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나에게 ‘남들처럼’은 하나의 사명이었다.


그래서 늘 일하면서 일하는 사람들을 관찰했었다. 같은 처지의 알바는 물론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손님들, 나를 고용한 점장님이나 사장님, 혹은 경우에 따라 매니저님이기도 했던 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고 가게 돌아가는 이치와 생리, 사람들을 대하는 그들의 표정, 그리고 그 사람들이 떠나고 나서 그들의 태도와 말 한마디도 나에게는 내가 좇는 안정감에 대한 어떤 지표였다. 그건 내가 일을 하고 있을 때도 그랬고, 내가 손님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가 보는 것들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내가 그 상황이 닥치면 흉내 내고 따라했으며 혼자 있을 때는 거울을 보고 연습하기도 했었다.


정신을 차릴 틈이 없었다. 어떻게 해도 남들처럼 되지 않거나 몸이 얼어 뚝딱거리는 모습들에 절망감 비슷한 걸 느꼈었고 그게 정말 지겨웠지만 다들 그렇게 산다길래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더 열심히. 더 많이.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그렇게 벌써 나는 이십대 후반이 되었고 뭔가를 알기도 혹은 알지 못하기도 한 채로 다시 학생이 되었다. 어떻게든 밥벌이는 해야하는데. 친구들은 다들 직장을 잡고 벌써 2년차 3년차가 되어가는 아이들도 있는데. 나만 혼자 여기서 여전히 준비생으로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걱정이 된다. 내가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지금 나는 내가 그렇게 좇고 그리던 모습이긴 할까.


그 어떤 모습도 그리지 않게 된 지금. 나는 글을 쓰고 있다. 돈도 나오지 않고 누구도 관찰할 수 없는데도.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다. 그래도 계속 숨 붙이고 살고 싶으니까 어거지로 글을 또 쓴다. 나도 모르는 뭔가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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