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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석이 Nov 04. 2022

21.04.13 김현석이는 어쩌다 한번 참지않긔.

복학생 짧은 일기.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기분이 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나 지금 앞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버티고 견디는 마음으로 돌아서는 그 순간 보통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비교적 최근에서야 해보게 되었는데, 평소에 누구든 무슨 일이든 견디는 게 당연해서 그게 아니어도 되는 경우를 겪어보지 못했던 나는 감히 이게 아니고 맞고 자시고를 따질 여유가 없었다. 그저 따라가고 그런 척 하면서 숨기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그때 내가 견뎠던 누구와 무엇의 잘못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선 정말 그럴 수도 있었겠으나, 나는 견디지 않고 받아들이거나 혹은 감내하기에는 그만치 마음이 강하지도 넓지도 않았던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나 상황들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런 것들로부터 나를 보호하지도 못해서 뒤늦게 화가 나서는 그 화가 다 풀리기도 전에 새로운 작은 일에 또 뒤늦게 화가 나서 결과적으로는 늘 연쇄적인 화가 나있었는데, 화가 나있었을 뿐 그 어떤 말과 행동도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그럴 수 있다는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 컵 안에 갇힌 벼룩 이야기처럼 말이다.


한참 후에, 상담도 받고 하면서 뒤늦게 주관 비슷한 게 생기고 나서 부터는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르곤 했다. 그런 기분을 한번 느껴버리고 나니 새로 발생하는 문제들이 '참는다vs안참는다'로 단순화 되어 느껴지기 시작했고, 안참는 선택지를 한번씩 한번씩 고르다보니 지금은 정말 싫거나 곤란할때는 어느 정도 거절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이건 아직 '과거에 비해', '예전보단 나은' 정도에 불과할 뿐이다. 나는 여전히 해야할 말을 못하거나 우물쭈물 넘어가거나, 심지어 할 말은 하는 나를 머릿속에서 망상해서 기억을 조작함으로써 상황을 모면하거나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여지껏 많이 연습하고 훈련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입을 다문채 아닌게 아닌 척 견디고 괜찮은 체 하는 나에 대한 이야기다.


정신분석 상담 내용을 찾아보니까 '전이'라는 내용이 있더라. 상담자에게 내담자가 과거에 느꼈던 억압이나 고통스러운 기억을 투사해서 상담자를 왜곡해서 본다는 내용이었는데, 대충 엄한 아버지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이 상담자를 엄한 아버지처럼 보고 느끼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나는 상담자, 그러니까 정신과 의사 선생님한테 어떤 전이를 한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생님에게 솔직한 마음이나 이야기를 제대로 털어놓지 못하고 있다. 이야기했을 때 거부당하거나 내가 너무 과하고 예민한 사람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이번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있고, 선생님에게 성소수자 이야기를 했을때 세상 사람 대다수는 아무도 나쁘게 생각안하는데 내가 겪는 일들이 내 머릿속에서 부풀려낸 환상인 것 처럼 말씀하시기도 해서 사실 이야기를 잘 꺼내지 못하겠다. 물론 그 문제에 어느정도 매몰되어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냥 듣고 그렇구나 수긍해주셨으면 좋았을텐데. 이해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단 말이다.


내가 이미 겪고 느끼는 걸 엄청 부풀리고 과장하는 사람이 되어있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도 어차피 내가 하는 이야기는 다 과장처럼 들릴거라는 걱정이 된다. 그래서 '좀 어떠셨냐'는 질문에 늘 그냥 괜찮다고 해버리린다. 구구절절 설명해서 납득시킬 자신이 없고 이해를 요구할 자신은 더 없다. 그러면 선생님은 꽤 괜찮은 나의 상태를 근거로 앞으로 더 좋아질 낙관적인 가능성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고 나는 거기다가 심지어 맞장구를 치거나 동의하는 방식으로다가 지금 좋아지고 있는 증거같은걸 막 더 얘기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진짜 이게 뭐하는거람.


그래서 또 영문도 모르는 화가 자꾸 쌓여가고 있던 와중, 오늘 학교 근로 출근을 했더니 사무실에 계시는 팀장님이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라고 말씀하시는게 갑자기 귀에 쏙 들어오더라. 그제서야 번뜩 아 이거 아니구나. 맞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왜 나는 가만히 있는거야. 가마니여?(...) 심지어 돈도 내는디! 하는 생각이 들고, 또 어차피 이건 참는다vs안참는다 문제이니 단순하게 느껴지길래 오늘 참지 않고 한번 찾아가보기로 했다. 병원은 앞으로 꽤 오랜 기간 다녀야 할 것이고 나는 요즘처럼 재활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적이 없으니 이 문제를 해결해내야만 할 것이다. 자꾸 이렇게 참지 않을 버릇을 하다가 단명하거나 사회성이 극단적으로 결여되거나 할까봐 조금 걱정이 되긴하지만, 일단 참지 않겠다. 어차피 내가 걱정한다고 오래 살 수 있거나 사회성이 유달리 발달하거나 하진 않을 거고, 참지 않는 선택을 2백번 하기 전까지는 무의미한 걱정일 뿐이다. 그러니까 그냥 가서 얘기해버릴거여. 선생님. 선생님한테 무서워서 이야기 제대로 못하겠어요. 선생님한테 얘기하면 또 별 일 아닌 것 처럼 말씀하실까봐 무서워서 이야기 제대로 못하겠어요, 아시겠어요? 이때까지 괜찮다고 했던거 다 개뻥이라구요. 사실 조금은 맞긴한데, 그건 맞는 얘기로다가 조금밖에 얘기 못해서 그런거예요. 사실 선생님이 다 떠들고 나는 얘기 거의 못했잖아요!!! 그러니까 제 이야기를 그냥 들어보세요. 난 지금 존나 안괜찮아요. 잠도 잘 못 자고 밥도 잘 못 먹고 계속 걱정되는데 뭐가 걱정되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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