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 화요일. 그날따라 굉장히 재활에 대한 의지가 강하게 불타올라서 글을 썼는데, 정말 아쉽게도 브런치에 올리지 못했다. '몇 줄만 더 고치고 올려야지.' 하는 그때. 딱. 때마침. 부득이하고 불가피하게. 근로장학 시간이 끝나 버린 탓에 퇴근을 해야 해서, 당최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원망스러운 단시간 근로... 근로 시간이 조금만 길었어도 브런치에 업로드도 하고 성실한 대학생으로서 자투리 시간을 낭비 없이 활용했을 것임에 틀림없을 뿐 아니라, 달라지는 급여에 내 사정까지 좀 나아졌을 텐데. 참. 원망스러워라. ㅎㅎ.
그러면서도 한 며칠 정도는 내심, '간만에 희망에 차서 쓴 글이니 만큼 꼭 브런치에 올려야지' 하며 업로드 각을 재고 있었는데 금요일에 공황발작이 심하게 와버렸다.
오, 공황발작. 익숙하지만 좆같은 그 감각이여.
목구멍 언저리가 불안하게 간질간질한 마음에 설마하는 그 찰나 힘줘서 잡고 있던 정신을 놓치면서 시작되는 그 순간, '아 좆됐다.' 하게 되는 그 느낌. 규정속도에 맞춰 흐르던 혈액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과속하기 시작하면서 머리, 심장, 오장육부와 다리, 손발을 거치며 몸을 감싸는 피부까지 온몸을 차례차례 과부하로 고장내고, 절대 긁을 수 없는 피부 안쪽이나 눈알 속, 뇌의 중심부 같은 곳이 막 가려워지는 것 같은 그 느낌. 뭍으로 꺼내진 물고기가 희박한 산소에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온 몸의 근육조직을 쥐어짜 내어 퍼덕일 때 느낄 것 같은 절대로 건강하지 않은 불쾌하게 힘찬 에너지에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하고,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한 내 몸을 산산이 분해해서 구석구석 짓이기고 반죽을 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은 마음에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가 벽에 전속력으로 머리를 박아버리거나 옥외 비상계단 난간을 망설임 없이 넘어 뛰어내려야만 할 것 같은 그 느낌. 그 끔찍한 느낌은 어느 정도 예고편도 있고, 약도 있으며, 그 외의 대응할 수 있는 방법도 분명히 있음에도 나는 이번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아주 순간이었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평소보다 더 관조적이지 못한 태도로 늘 하는 걱정들을 하고 있었더랬다. 손가락도 까딱 못하고 누워만 있다가 복학한 나에게는 너무 버거웠던, 이제 갓 한 달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겨우 들은 수업들과 겨우 해냈던 과제들. 그래서 도무지 감도 잡히지 않고 엄두도 나지 않는 3년 만의 중간고사. 그렇게 계속 앞으로 해내야 할 자신 없는 일들. 하루들. 그 와중 어느 수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내 또래들. 늦었다는 조바심. 초조함.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아 바닥을 긁는 내 통장과 공과금에게 미친 듯이 쫓기는 것 같은 불안한 하루의 끝없는 반복. 끝이 없을 것 같은 두려움. 아직까지 부모님 등골을 빼먹는 나. 한심한 죄책감. 지겨운 돈 걱정. 늘 서글프게 칭얼대는 우리 진수. 해주지 못하는 나. 하지 못하는 나. 그리고 이 와중에도 미련하게 포기하지 못한 것들. 미련함. 죄스러움.
그 많은 생각들을 간신히 교통정리하던 뇌가 잠깐 실수하기 시작하면서 그것들이 머릿속에서 줄줄이 충돌사고를 일으켰다. 어떤 생각은 찌그러졌고 어떤 생각은 부서졌으며, 어떤 생각은 폭발했다. 머릿속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게 시작되는 건 그렇게 아주 순간이었다.
시작되고 나서는 바람이 많이 불었는지, 날이 더웠는지, 해가 나긴 했었는지, 미세먼지가 많아서 뿌얬는지 없어서 깨끗하고 맑았는지, 정확히 몇 시쯤이었는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전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는 옥외 비상계단으로 나가서 차가웠는지 따뜻했는지 모를 바깥공기를 허겁지겁 들이 마시면서 그냥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앉아있어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다리를 메트로놈 같이 떨리는 손으로 박자 맞춰 때렸다. 막 때리는데 다리가 마취한 듯 감각이 없었다. 그래도 계속 때리면서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피우면서 전화를 했다. 누나, 엄마 도와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선생님, 저 지금 상태가 이런데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제가 약을 시간 맞춰서 못 먹었어요. 죄송해요. 도와주세요. 그러다가 막 울고 싶었는데 숨이 너무 가빠서 도무지 울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들어왔다.
다음을 약속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비겁하고 치사했다. 내가 엄마 마음을 수시로 그리고 불시에 계속 불에 달군 칼로 쑤시고 후비면서 잡아먹고 있었다. 도와달라며 전화하는 그 와중에도 가슴 아파하며 우는 엄마 마음보다 지금 이런 나이니만큼 더 관심을 주기를 원하고 바랬다. 되려 더 아파하고 더 힘들어했다. 슬퍼하는 엄마의 모습은 순간순간 날 안심하게 했다. 나는 그렇게 계속 안심하고 싶어 했다. 이런 내가 괴물 같았다. 진짜 악인인 것 같았다.
이제 여기서 더 치사하고 악랄해지고 싶지 않았다. 다음에 또다시 이게 찾아왔을 때 내가 이러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애당초 또 찾아온 이걸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아무것도 약속할 수가 없었다. 최소한 그만 상처 주고 싶었다. 멀쩡한 사람까지 수렁으로 집어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더 이상 엄마가 아니었으면 했다. 아픈 사람이 가족들을 얼마나 괴롭힐 수 있는지 더 이상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제 그게 필요하지 않고 그러지 않을 것이라 소리 내서 말했다. 그게 누가 되었든 매달리며 괴롭히는 걸로 내 결핍을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사실은 나는 알고 있었다. 진짜 치사하고 악랄하게도.
당분간 혼자 해결하기로 했다. '어차피 누구도 도움이 되지 않고 나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또 살아지더라. 더 악착같이 살아지더라'는 심진화 씨 어머님의 말씀을 들었다. 조절 능력이 없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은 혼자 있는 침묵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오은영 선생님의 말씀도 들었다. 병원 의사 선생님은 처음부터 내가 혼자 극복해야만 한다고 하셨었다. 당분간이 아니라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결국 혼자 해결해내야 할 문제라는 걸 지금 다시 한번 곱씹는다.
그래서 나는 잠시 엄마랑 헤어지기로 했다. 차라리 내가 없었으면 이럴 일이 없었을 텐데 같은 싹수없는 말을 내뱉으면서. 혹시 정말 혹시라도 또 찾아올 그걸 내가 못 이겨내면 너무 슬퍼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여전히 치사한 마음으로, 나를 그냥 지워줬으면 좋겠다는 개 같은 데다 오그라들기까지 하는 소리를 내뱉으면서. 내 걱정은 그냥 좀 잊고 마음 편히 지냈으면 좋겠다는 말 같잖은 이야기를 진심으로 하면서, 잠깐 내가 없는 듯 살자고 했다.
그만 치사하게 굴고 싶다. 나의 이 거창한 비장함이 유치하고 같잖게 보이고 들릴 수도 있겠지만 치사하고 나쁜 것보다 차라리 유치해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유치하고 비장하게 이 모든 상황들과 마음의 병을 견디고 또 견디면서 계속 버티다 보면 나도 전부 시시해지는 날이 오겠지. 내가 봐도 이 모든 게 유치하고 같잖게 시시해지는 날이 오겠지. 나는 참는 건 잘 못해도 견디고 버티는 건 잘하는 편이니까. 혼자라도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인생이 까맣고 빽빽하게 그려진 도화지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칠할 곳도 칠할 필요도 없어서 뭔가를 이어서 계속하지도 새롭게 할 마음을 먹지도 않은 채로 그냥 까맣게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버티다 보면 인생이 까만 도화지든 이면지든 습자지든 알 바 없이 정말 계속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친구 은채가 존버는 승리한다고 했다. 왜냐면 될 때까지 버티니까 그렇다고 했다. 지긋지긋하다. 그렇지만 살고 싶다. 나는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