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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깨는 현석이 Jul 13. 2022

22.07.13 - 내일은 없다.

휴학생 짧은 일기.

#1.

상처를 주고받기. 오해를 하면서 오해를 사기. 미움받으면서 미워하기. 사랑하고 싶어 하면서 사랑 같은 건 필요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기. 행복해하면서 절망하기. 안도하면서 안도가 끝나는 걸 불안해하기. 도움이 필요한데 도움받는 걸 들킬까 봐 무서워하기. 살고 싶은데 죽으려 하기. 이런 마음으로는 어디에도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내 마음은 바꾸지 않은 채 계속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매기. 지극히 개인적인 내 사생활의 역사는 온통 모순뿐이다.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내 모든 것들을 나는 더 이상 엉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엉망인 것은 없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수잔이 하늘에 구름이 끼건 말건 하늘은 늘 파랗게 그 자리에 있다고 했던 것처럼, 나는 모순으로 쓰여진 인간이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아닌 건 아니다.


#2.

다짐하고 마음먹는 건 짧은 시간 수천번을 했다. 짧은 시간에 뭐든 수천번을 먹으면 별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부작용이 생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마음을 먹는 게 별 다르게 느껴지지 않게 되어버렸다. 너무 많이 마음을 먹어서 속이 불편하지도 않게 되었고, 그렇게 많이 마음을 먹었는데 아무 효과가 없어도 실망하지도 않게 되어버렸다.

마음은 수천번 먹어봤지만 마음을 안 먹어보기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앗, 그럼 당분간 마음을 먹지 않아 봐야겠군. 그래서 당분간 마음을 먹지 않기로 했다.


#3.

마음을 안 먹으니까 별안간 공포스러울 정도로 하루가 미니멀해졌다. 여력이 안되는데 아등바등 붙잡고 있던 일이나 사람들이 너무 쉽게 마음에서 떠나가 버렸다. 대신 마음을 안 먹어도 떠나가지 않는 것들이 마음에 남았다. 그렇게 남은 절대로 작지 않은 것들이나 무사히 해낼 수 있으면 좋겠다.


#4.

그래서 마음먹고 기다릴 내일이 지금 없다. 마음을 안 먹기로 해서이기도 하고 사실 별달리 먹을 마음도 없다. 어차피 비극은 정해져 있고 희극은 마음먹는 대로 쓰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은 여전히 공포스럽다. 아마 비극을 만나면 콘크리트에 머리를 깨부수고 싶을 만큼 괴로울 거고 희극을 만나면 그게 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기쁘겠지만, 지금은 비극을 대비하는 마음도 희극을 기대하는 마음도 먹고 싶지 않다. 그냥 내일 아침에 진수 산책이나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나한테 남은 마음은 그런 거다. 쟤도 나도 안 아팠으면 좋겠다. 우리 둘이 건사하고 먹고살 수 있었으면 좋겠고 사는 게 더 이상 무섭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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