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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석이 Apr 21. 2023

21.09.30 - 지금

가진 게 나 밖에 없어서요.



9시 근로 출근,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점심시간에 학교 편의점에서 샐러드를 사 먹었다. 2800원짜리 케이준 치킨 샐러드 였는데 오래간만에 오늘 아침을 사과로 시작한 만큼 그냥 한번 먹어봤다.

늘 폭식을 해댔지만 샐러드 먹는 거에 뭐 얼마나 대단한 의지나 노력을 들이지는 않았다. 그냥 포크를 꽂아 입에 넣고 씹고 삼켰다. 고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게 막 먹고 싶거나 그렇지도 않았다. 그냥 열량을 채우고 허기지지 않는 거라면 뭐든 상관없었다.


어제 머릿속에서 '사는 목적이 뭐냐'는 가상의 인터뷰어의 질문에 '사는 목적은 계속 사는 거'라는 대답을 했었다. 사는 목적이라니. 우리는 선택해서 나온 게 아닌데 당연히 별달리 근사한 목적이 있는 게 되려 이상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오늘 지금도 겨우 살고 있는데 사는 목적이라니. 무책임한 인터뷰를 끝장내고 싶었다.

대신 인터뷰어의 뻔하고 식상하고 무책임한 질문에 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하는 망상 속 내 모습은, 갑작스럽게 화가 치밀어 오르고 모두가 증오스러워지는 마음을 삭히는데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 내 인생의 목표는 계속 사는 거다라고 다짐하면서 진수와 집에 들어왔다. 이게 모두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서 괜히 하루가 더 바쁘다. 가뜩이나 달리는 기력이 더 부족한 것 같다.


마음에 돌덩어리가 있다. 중력이 제멋대로인지 한참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게 가벼웠는데, 요 최근에 조금만 시끄러운 일이 있어도 담긴 주머니가 찢어질 것 같이 무거워서 걷는 것도 무겁고 숨 쉬는 것도 무겁다.


그래도 뭐 어찌어찌할 일들을 한다. 어찌어찌 겨우 해내는 내가 불과 몇 년 전 힘이 넘치던 나랑 너무 비교되는 마음이 들면, 옛날 대신에 앞날을 생각해 본다. 그럼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에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까지 도합 150% 정도의 마음이 되어서 허겁지겁 지금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지금은 비교적 있을만하다. 현실로 돌아오면 눈앞에 신난 진수 궁뎅이가 있거나, 근로 중에 은행 심부름 가다 껌을 밟거나, 방구 꼈는데 엄마가 "왜?"라고 대답하는 일 같은 게 일어난다. 쥐똥만큼이지만 직접 번 돈으로 밀린 관리비나 통신비를 내면 사라진 돈인데도 저금이라도 한 양 든든하다. 머릿속이나 마음이 통제가 안되고 정신이 없다가도 정말 미미하게나마 기분 좋은 지금의 순간들을 마주치면 조금씩 괜찮아진다. 그러면 진짜 있을만하다. 그럼 잠시동안은 옛날이나 앞날은 생각 안 하기로 한다. 어찌어찌 자리를 잡은 지금에서 숨이나 좀 돌리면서 있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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